지금까지 발표된 투자계획을 보면 AI 데이터센터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전남 해남 ‘솔라시도 AI 데이터센터 파크’, 경북 포항 ‘AI 글로벌 컴퓨팅센터’, 울산 남구 ‘AI 데이터센터 연합지구’. 이 세 곳만 최종 목표대로 건설될 경우 그 규모는 원자력발전소 3기가 생산하는 전력과 맞먹는다. 여러 제약이 있기에 투자 계획대로 모두 실현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단일 사업의 규모를 보았을 때는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수도권은 송전망 제약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비수도권에서 지어질 확률이 높다. 실제로 3월 기준 10MW급 이상 대형 데이터센터에만 적용되는 전력계통영향평가 현황을 보면 비수도권이 67%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국가AI컴퓨팅센터를 놓고 광주광역시와 전남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가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면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 사실 데이터센터는 입지하는 지역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위험도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전자파와 같은 인체 유해성을 우려한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금천구, 경기 김포시 등 각지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큰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이미 많이 지어진 미국은 더욱 갈등이 심한데, 쟁점 사항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바로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과 물이다.
전력 문제를 예로 들면, 미국은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최대 전력 도매시장(PJM)의 가격이 52% 이상 뛰었다. 게다가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의 40% 이상은 천연가스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보니 미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동부 메인주에서는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면 금지했다. 주정부는 금지 기간 데이터센터 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데이터센터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가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면서, 주정부에서는 이를 조정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국가와 지자체가 사전에 얼마나 제도와 정책을 잘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갈등을 방지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 있다. 갈등이 있었지만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낸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 안양시가 좋은 예이다. 2021년 LG유플러스는 안양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며 특고압선을 땅에 묻는 공사를 진행했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전자파로 인한 피해를 크게 우려했다. 하지만 여섯 번의 기나긴 대화 끝에 기업과 주민은 합의점을 찾았다. 전선 주변에 전자파를 막는 차폐판을 설치하고, 공인 기관을 통해 2026년까지 일곱 번에 걸쳐 전자파를 측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합의한 기준치는 10mG였다. 법적 기준인 833mG의 약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엄격했다. 만약 이 수치를 넘기면 차폐판을 고치는 등 즉각 조치를 취하기로도 약속했다. 갈등을 넘어 시민과 기업, 지자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다.
이 가운데 AI 데이터센터 진흥특별법은 이제 법제사법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은 ‘우선 공급’에만 방점을 찍은 채, 지역사회와의 협의와 기후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기본적인 논의는 부재한 상태다. 투명한 정보공개,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 주민 참여 절차들이 선행되어야 AI 산업도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는 다른 산업의 탈탄소화에도 똑같이 필요한 전기다. 어느 한 산업에 먼저 몰아주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법이 제대로 설계되려면 투명한 논의가 우선 진행되어야 하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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