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시작은 맥도날드 광고영상이다.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는 포장지를 벗기며 연신 맛깔스러운 단어와 달콤한 표현들을 쏟아낸다. 신제품에 대한 기대감은 충분히 유발된 듯했다. 자, 이제 쾅! 하고 터트리기만 하면 되는데, 어라? 먹는 둥 마는 둥 작은 한입으로 오물대며 딱 그 정도의 텐션으로 눈을 감고 음미(?)하는 그의 모습에 일제히 경악했다. “햄버거를 먹을 줄 모르나 봐”, “진짜 CEO 맞아? 경쟁사에서 보낸 거 아니겠지?”
그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면 촬영 직전 뭔가를 먹어 배가 부를 수 있다. 체질적으로 햄버거가 안 맞을 수도 있고, 입을 작게 벌리는 게 오랜 습관일 수도 있다. 공교롭겠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건, 해당 영상이 글자 그대로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고, 명색이 그는 햄버거 왕국의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사장님이 햄버거를 그토록 무미건조하게 ‘제품’이라고 반복적으로 부른단 말인가. 나를 포함한 세상 햄버거 애호가들이 분개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영상을 보며 문득 칼 융의 금구(金口)가 떠올랐다. “말에 집중하지 마라. 그 행동을 보라.” 살짝 의역하자면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들킨 행동으로부터 배운다”는 뜻이다. 이 격언은 우리 집에서도 어김없이 통한다. 공부 중이라던 아들 녀석 책 사이로 태블릿이 슬쩍 보이길래 아빠로서 또 사자후를 토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언제까지 유튜브만 볼 거야!” 목소리를 여러 번 높였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 손에도 핸드폰이 들려 있어서다. ‘왜 지금 공부하라고 해? 나도 한일전이 궁금하다고!’ 아들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행동은 말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영어 속담도 있다던데, 서양 아빠들도 나처럼 자식한테 뭘 잘 들키나 보다.
감언이설로 상대를 속일 수는 있어도, 무심결에 드러나는 행동은 좀처럼 감추기 어렵다. 행동에는 속마음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상 속 맥도날드 CEO의 ‘한입’에는 진정성이 살짝, 아니, 꽤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 공백을 수많은 밈이 채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패러디 영상들은 하나같이 ‘누가 더 크게 베어 무나’ 식의 경쟁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햄버거 왕국을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라이벌 회사는 전광석화처럼 맞불 광고를 찍어 올렸다. 컨셉은 그대로인데 유일한 차이라면 ‘버거킹’의 CEO는 볼이 터져라 햄버거를 베어 물고는 옆 사람과 눈을 맞춘다. 입가에 드레싱이 묻은 채 우물대면서 마치 ‘너도 이 맛 알지? 이게 햄버거거든!’ 하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공감을 전제로 했을 때 대화는 가장 그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어가 먹이를 낚아채듯 눈을 뒤집으며 베어 무는데, 목에 힘줄마저 선명한 걸 보니(설마 힘줄까지도 연출한 건 아니겠지?) 고객들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피자도 그렇고 짜장면도 예외 없다. 첫 한입에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문제의 영상에서는 ‘아, 이거 먹기 싫은데...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아참 내가 사장이었지!’ 하는 마음 저 깊은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다. 무슨 근거로 그러냐고? 우린 남이 뭘 먹는 것만 봐도 내 입에 침이 고이는 존재들이다. ‘먹방’이라는 전대미문의 장르를 개척한 민족이 아니던가. 공감(共感)이 밥만큼이나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먼저 가는 사람보다 잘 따라가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강하지만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시장을 장악하는 케이스도 제법 많다. 경제학에서는 이걸 ‘세컨드 무버 어드밴티지’라고 한다고. 버거킹이 후발주자로 누린 이점이라면 햄버거에 대한 솔직한 태도였다. 게걸스러워 보일지언정, 복스럽게 베어 무는 그 한입에는 진심(眞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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