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방황을 이야기할 때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 사춘기 때 조용히 지나가면 서른쯤(결혼 전후에) 미친 짓을 한다고. 즉, 다 커서 이상한 짓 하는 것보다는, 사춘기 때 하는 게 낫다는 엄마들의 위로다.
아이들의 그릇도 동일하다. 아이들이 평생 공부하는 그릇, 마음(정서)을 키우는 그릇, 옳고 그름을 배우는 그릇, 배려를 배우는 그릇 등. 다양한 그릇이 우리 모두에게 있고, 그 그릇을 채우고 비우는 것은, 각자들의 역량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적에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었고, 고등학생 때는 철학이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시대는 어떤가? 모든 교육과정에서 입시만을 위한 교육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되었다. 그래서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과 수업은 천대시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그것이 중학교, 초등학교로 간다고 완화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까지 시험은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른 기관을 통해 매번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점수에 엄마들은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그 점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선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려운 과목을 미리 하면 반복해서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선행의 학년을 낮췄다. 아이들의 공부그릇만 챙기느라 다른 그릇들은 방치되는 것이 아닌가, 아줌마의 걱정이 크다. 모든 공부에는 ‘적정 시기’가 있는데 말이다.
혹시 아는가?
외국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정말 놀라운 부분에서 우리 국민의 높은 도덕성이라는 것을. 높은 도덕성은 높은 교육열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하는 세대들은 어린 시절 도덕 교육을 받았고, 고등학교 진학률은 99%, 졸업률은 95%가 넘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진학률이 50~75%다(주마다 편차가 크다). 물론 대한민국의 높은 도덕성은 곳곳에 설치된 CCTV와 높은 범죄 검거율도 한몫한다. 하지만 아줌마가 생각하기에 일상에서 느끼는 우리 문화의 힘이 크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나 공공장소에서 공공질서를 헤치는 사람을 향해 대한민국 사람은 무언의 질타를 날린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구인 대한민국에서 캡처라도 되면, 한순간에 인생 나락 행이다. 즉 모든 국민이 높은 도덕관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태에 대해서는 혼쭐을 낸다. 반대로 올바른 행동으로 사회에 감동을 주면, 돈줄도 낼 줄 아는 아주 훌륭한 국민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까?”
이 질문에 대한 아줌마의 답은 ‘글쎄’다. 여전히 높은 교육열과 계속 설치되는 CCTV, 대한민국 문화의 힘은 지금 최절정이다.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아줌마의 답은 다를까?
높은 교육열의 질이, 기준이 달라졌다. 좋은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는 곳이라는 진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하지만 점수의 질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높은 점수만 받는 교육을 받게 되었고, 아는 것보다는 문제의 답만 알뿐이다. 무슨 소리냐? 문제는 푸는데 아는 것이 없다? 답은 아는데, 어떻게 아는 것이 없을 수 있을까? 있다! 시험에 나오는 유형의 문제에 익숙해져서 그런 류의 문제를 풀고 답은 알지만, 그 단원을 다룬 새로운 유형의 문제는 못 풀 것이라는 소리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문제를 만들 수 없다.”,
“질문에 답할 수는 있지만 질문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지금 대한민국의 문화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너무 자랑스럽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할까라는 질문에 아줌마는 답한다.
“하는 거 봐서.”
세계가 지금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다. 우리 아이들이 기회와 위기 사이에서, 우리 엄마들은 공부그릇으로만 이것을 기회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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