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주에 일시적인 영광을 안겨준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된다. 국제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그 유산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느냐야말로, 이 도시가 앞으로 수십 년을 두고 증명해야 할 진짜 과제다.
경주시가 최근 국회를 찾아 포스트APEC 핵심사업에 대한 국비 지원을 건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행보다. △(가칭)APEC 외교문화원 설립 △세계경주포럼 정례화 △APEC AI센터 유치로 이어지는 세 축은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이는 천년고도가 국제 외교·지식·기술의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설계도다.
총사업비 430억원 규모의 APEC 외교문화원 구상은 특히 눈길을 끈다. 싱크탱크 기능과 국제회의 플랫폼을 결합한 이 기관이 제대로 뿌리를 내린다면, 경주는 역사유산을 관광 자원으로만 소비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공공외교의 실질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역사문화도시라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 강력한 소프트파워다. 문제는 그것을 21세기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제도화하는 의지와 역량이다.
세계경주포럼의 정례화 역시 단순한 행사의 반복이 되어선 곤란하다. ‘경주선언’이 담은 포용적 성장과 디지털 혁신의 가치가 매년의 포럼을 통해 구체적 의제로 심화될 때, 비로소 이 포럼은 국제사회에서 고유한 브랜드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다보스포럼처럼 개최 도시의 이름이 곧 지향점을 상징하는 포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
APEC AI센터 유치는 미래세대를 향한 포석이다. 회원국 간 AI 기술 협력의 허브로 기능하면서 지역 청년에게 글로벌 수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구상은, 지방소멸이라는 시대적 위기에 맞선 가장 현실적인 응전이기도 하다.
물론 국비 확보는 건의로 끝나지 않는다. 사업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할 치밀한 논거, 중앙부처와의 끈질긴 협의, 그리고 지역사회의 폭넓은 공감대가 함께 갖춰질 때 예산은 움직인다. 경주가 회의장의 화려함 너머에서 얼마나 단단한 미래를 구축해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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