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였던 꽃
이창윤
왕이 숨을 거두는 날
그 곁에, 말없이 따라 누운 사람들이 있었다
눈을 감은 순서까지 권력이었고
침묵조차 예법이었다
덧널 깊숙이
팔을 가지런히 모은 채
살아 있던 때의 신분으로
그들은 서로의 옆자리를 지켰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것이었다
자연은 무릎 꿇지 않았다
빗방울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떨어지고
흙은 아무도 구별하지 않은 채 포개진다
햇살은 무덤 위 풀잎에
고르게 내려앉는다
고분은 말 없는 평등의 방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안식을 품었다
비틀려 누운 뼈 하나조차 고요하다
천오백 년 시간의 무게 아래
슬픔은 점점 사그라지고
형체를 지운 이름들은
흙과 한 몸이 되어 서로를 품는다
역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쉰다
고통이 삭아 내린 자리에서
말을 멈췄던 육신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가진다
빛마저 꺼진 덧널 속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따라간 자여
이제는 누구의 것도 아닌
너 자신으로 태어나거라
다시 살거든
어떤 목숨으로든 오라
어느 곳이든 좋으니
그 자리에 꽃처럼 피어라
이름 없는 흙이
너를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차별없는 삶을 보는 하나의 시선
순장(殉葬)의 현장. 왕이 죽자 그의 뒤를 따라 “살아 있던 때의 신분으로” 주변의 인물들이 “서로의 옆자리를 지”킨다. “눈을 감은 순서까지 권력이” 되는 그 현실이 시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것이” 되는 사람들. 그러나 자연만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떨어”지는 빗방울, “아무도 구별하지 않은 채 포개”지는 흙, “풀잎에/고르게 내려앉는” 햇빛들 말이다.
차별이 없는 빗방울, 흙, 햇빛 때문에 고분 속 인물들은 살 벗고 뼈까지 삭아 “서로를 품”고, 마침내 역사도 “조용히 숨을” 쉬게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를 “말을 멈췄던 육신이/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가”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결국 무덤의 세계에서는 왕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다독이는 자연이 진정한 통치자라는 것을 슬몃 밝혀낸다. 이런 맥락에서 시인은 무덤 속의 넋들에게 “이제는/너 자신으로 태어나거라”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 까닭 없이 무릎 꿇지 말 일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그것이 어찌 인간만이랴.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가 차별 없이 존재하며 똑같이 자기 삶의 주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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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의 詩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