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강동면 인동2리. 한적한 농촌 마을의 풍경 속에서 유독 생기가 넘치는 공간이 있다. 말끔히 정돈된 화단과 반짝이는 창틀을 갖춘 인동2리 경로당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잡초 하나 없이 가꿔진 화단이 방문객을 먼저 반긴다. 이곳은 화려한 시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어느 공간보다 짙은 ‘사람 냄새’가 배어 있다.
13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은 어르신들이 마음 편히 쉬어 갈 공간조차 없었다. 비가 내리거나 겨울 한파가 몰아치면 서로의 안부를 나눌 자리조차 마땅치 않았다. 이웃끼리 얼굴을 마주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그 시절, 마을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현 이정순 회장이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다리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집 한 칸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이 회장의 발길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작업자들에게 따뜻한 차와 새참을 건네며 공사를 살폈다. 벽돌 하나, 모래 한 줌에도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스며든 경로당은 그렇게 단순한 건물이 아닌, 인동2리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중식 매니저 사업’으로 피어나는 식구의 정
13년이 지난 지금도 이 회장의 하루는 경로당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집보다 더 애지중지 청소를 마친 뒤 어르신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회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 ‘중식 매니저 사업’은 경로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을 20여 가구 대부분의 어르신이 점심시간이면 이곳으로 모여든다. 지난 연말에는 전 회원이 함께 모여 일 년 치 김치를 직접 담갔고, 멸치·고추장·미역·다시마 등 주요 식재료는 미리 준비해 최상의 상태로 관리한다. 매일 차려지는 밥상은 영양과 맛을 두루 고려한 어르신 맞춤형 식단으로 구성되며, 정성을 들인 한 끼 한 끼가 고스란히 식탁 위에 담긴다.
“혼자 집에서 대충 물 말아 먹던 밥이 여기 오면 꿀맛이 된다”는 한 어르신의 말처럼, 이곳에서 식사는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행위가 아니다. 숟가락을 부딪치며 나누는 웃음과 소소한 이야기들은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을 지탱하는 보약이 되고 있다.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이 고독을 걷어내는 가장 확실한 처방인 셈이다.
‘늙을 틈이 없다’ 행복 선생님과의 치매 예방 시간
식사 이후에도 경로당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최근 어르신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은 ‘행복 선생님’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활동이다. 인지 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칠교 놀이와 색칠 활동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며 쑥스러워하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돋보기를 고쳐 쓰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도형 맞추기에 몰입한다. 복잡한 도형으로 뇌를 자극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색을 입히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기억력이 향상된다. 완성된 작품을 서로 자랑하고 나누는 칭찬은 어르신들에게 더없는 활력소가 된다. ‘늙을 틈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경로당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이 회장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면서 “이곳은 단순히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가장 아름답게 채워가는 교실”이라고 말했다.
인동2리 경로당은 으리으리한 시설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정순 회장의 한결같은 헌신과 회원들의 온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기쁨을 나누며 작은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 공간은,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살아있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이 시대에, 인동2리 경로당의 문은 오늘도 활짝 열려 있다.
“오늘도 인동2리 경로당은 맑음, 그리고 행복입니다.”



홈
오피니언
연재
우리경로당이최고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