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는 자사고 설립 계획이 2013년 4월 한수원 이사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1월 중저준위 방폐장 착공식에서 자사고 설립을 약속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2015년 9월 기획재정부는 한수원에 공문을 보내 자사고 설립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그 이유로는 자사고 설립이 한수원의 목적 외 사업이라는 점, 경주 지역 내 고교 입학자원 감소, 정부의 자사고 축소 방침 등을 들었다.
한수원 자사고 설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2013년 말부터 간간이 제기되었다. 자사고 설립 무산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나, 직접적인 원인은 공기업의 목적 외 사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2013년 2월 출범)의 방침이었다. 그렇다면 설립 무산의 보다 근본적인 제1 원인은 무엇일까.
한수원은 2013년 6월 내부적으로 자사고 부지를 선정하였다. 당시 한수원 사장이 공석이어서 후임 사장 취임 이후 이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임 사장 취임 이후에도 부지 예정지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는 신임 이사장 취임을 전후로 정부의 정책 기류가 변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수원이 본사 사옥 준공 후 본사를 경주로 이전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만약 본사 사옥 준공 시기가 몇 년만 앞당겨졌더라면 자사고 개교 예정 시기 또한 함께 앞당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수원 본사 사옥 위치를 둘러싸고 경주 도심권과 동경주권 간 유치 경쟁과 갈등이 장기간 이어졌다. 사옥 위치는 2006년 12월 문무대왕면 장항리로 결정됐지만, 이후에도 도심권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아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한수원 사옥 부지의 경주 도심 이전을 공약한 후보가 당선되어 사옥 위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었고, 2009년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된 후보가 도심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한 끝에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부지를 장항리로 재확정했다. 이로써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옥 위치 문제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2011년 3월에는 경주시장이 다시 도심권 이전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는 2010년 10월 양남면과 감포읍 주민대표들이 “한수원 본사 도심권 이전에 동의하며 대안으로 다른 인센티브를 요청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한 데다, 도심권의 강한 이전 요구가 지속된 데 따른 대응이었다. “한수원 본사가 탐이 나면 방폐장과 함께 갖고 가라”는 동경주권의 항변이 있었다. 동경주권의 동의없이는 이전이 어려웠다. 2012년 2월 경주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도심권 재배치 논의 포기를 선언한 이후에야 비로소 본사 사옥 기공이 이뤄졌다.
자사고 설립이 무산된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한수원 본사 사옥 위치를 둘러싼 경주 지역 내부의 오랜 갈등으로 인해 본사 사옥 기공이 지연된 데 있다. 본사 기공이 늦어지면서 학교 설립 절차 또한 함께 지연됐다. 사옥 준공 지연으로 본사 이전이 미뤄질 경우 자사고 설립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전임자가 약속한 사안을 후임자가 외면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본사 사옥과 자사고 건물 착공은 자사고 설립을 약속한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뤄졌어야 하며, 늦어도 이명박 정부 시기(2008~2013)에는 추진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사고 설립 무산의 제1 원인은 특정 고교와 중등 교육계의 반대에 있기보다, 자사고 설립을 약속한 이후 대통령이 두 차례나 교체되는 동안 설립 절차를 진척시키지 못한 지역사회와 지역 정치권의 무신경과 무능에 있다.
본사 사옥 위치를 둘러싼 장기간의 지역 갈등으로 경주는 중등 교육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도시 발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원칙과 공론이 중시되어야 한다. 지역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가 표심과 기득권 유지에만 집착한다면, 경주의 발전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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