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재선충병이 경주의 산하를 잠식하고 있다. 시민의 휴식처이자 역사 도시의 품격을 떠받쳐 온 송화산과 옥녀봉 일대는 고사목과 벌채의 흔적으로 뒤덮인 채, 더 이상 예전의 푸른 능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주가 ‘소나무재선충병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분류가 아니다. 그것은 경주 산림이 위기의 임계점에 다가섰다는 엄중한 경고다.
이러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인 것은 경주시의회 김동해 의원이다. 김 의원은 제296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집행부의 미온적 대응을 정면으로 지적하며 ‘경주형 대체 수종 모델’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2024년에도 수차례 같은 문제를 촉구했으나 현장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 의원의 반복된 문제 제기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주 산림 행정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문제는 병해 그 자체만이 아니다. 고사목은 강풍과 폭설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벌채 후 노출된 사면은 집중호우 때마다 토사 유출의 위험을 키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산마저 재선충병 확산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방제 중심의 반복적 행정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욱 아쉬운 것은,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경북도는 포항·안동 등지에서 수종 전환 방제를 추진하며 경주를 포함한 8개 시·군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제주도는 과학적 예찰과 맞춤형 방제를 통해 피해목을 54만 그루에서 2만 그루 수준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웃 지자체들이 이미 변화를 실증하고 있는 동안, 경주의 현장에는 여전히 베어낸 자리만 남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송화산·옥녀봉을 ‘소나무재선충병 대응 시범지역’으로 지정하고, 감염목 제거부터 예방 나무주사, 정밀 예찰, 수종 전환, 사후관리까지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경주형 대체 수종 모델’의 구축이다. 이 일대는 시민 접근성과 상징성이 높은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데이터로 축적해 감포·양남·남산 등 피해 확산 지역에 신속히 적용하는 거점이 돼야 한다. 산림은 한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주의 숲은 천년 고도의 경관을 완성하는 유산이자, 다음 세대에 온전히 넘겨줘야 할 자산이다. 행정의 속도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그 회복에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경주시는 방제에서 복원으로, 반응에서 예방으로 산림 행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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