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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오피니언 연재 박성철의 문화단상

젓가락질 잘만 해야 밥을 먹나요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22호 입력 2026/03/12 12:35 수정 2026/03/12 12:37


박성철 교수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
피자는 보통 포크를 사용하여 먹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피자를 손 말고 도구를 사용해 먹는 데 거부감이 있다고 한다. 한때 뉴욕 시장이 피자를 포크로 먹는 사진에 언론들이 앞장서 비판했을 정도다. 그의 이름을 딴 ‘빌 드 블라지오 피자 사건’은 어설픈 서민 흉내라고 하면서 탄핵을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포크 사용을 잘못하면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모양이다. 흔히 선거철만 되면 전통시장에서 어묵이나 떡볶이를 먹는 우리네 정치인들을 볼 수 있는데, 낯 간지러운 연출은 미국 유권자들도 반기질 않는 것 같다.


한편 돌체 앤 가바나의 패션 홍보 영상에서는 중국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장면을 연출했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피자를 먹는 영상은 즉각 중국 내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동양인을 겨냥한 명백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였다.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번에는 버거킹이 일을 냈다. 신메뉴를 홍보하면서 햄버거를 굳이 젓가락으로, 그것도 과장된 크기의 빨간색 상아 젓가락을 사용했다. 누가 봐도 중국인들을 연상케 하는 젓가락을 사용한 걸 보면 의도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아무튼 이 사건들로 드러난 건 젓가락이든 포크든 적당한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언제부터 젓가락질을 해왔을까?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중국은 대략 3,500년, 우리나라는 2,500년, 일본은 1,500년 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고된다. 반찬을 집어 드는 일반적 용도보다는 부처의 사리 등을 집는 종교적 도구로 말이다. 참고로 서양의 포크 문화가 약 300년 정도인 것을 보면 젓가락 문화는 대단한 문화유산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젓가락질이 녹록하지 않아서 문제다. “젓가락질 때문에 파혼당했어요.”라는 제목의 온라인 글에는 서툰 젓가락질로 파혼을 당한 딱한 사연이 적혀있다. 남자친구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당사자를 유심히 보면서 “젓가락을 특이하게 잡네?” 하더란다.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돼서 잘 안 고쳐진다고, 올바른(!) 젓가락질을 할 수는 있는데 버릇이 되어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단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 후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자기 엄마가 ‘기본적인 것도 못 하는’ 사람하고의 결혼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전에 카페에서 몇 번 뵈었을 때 마음에 드셨는지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내셨던 분이라는데...

다른 건 취향이라 여기면서 유독 젓가락질에는 왜 이렇게 엄격할까? 예전 우리 어른들은 ‘밥상머리 예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식구가 많은 농경 문화권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가령 ‘밥상 모서리에서 밥을 먹지 마라, 어른들이 수저를 들기 전에 미리 들지 마라, 소리를 내어 먹거나 밥그릇을 들고 먹지 마라, 음식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지 마라,’ 등이 그 좋은 사례들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하는 밥상머리는 위 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이어지는 예의범절을 배울 좋은 환경이다. 중요한 건 소위 ‘주먹 젓가락질’인데 현존하는 어느 문헌에서도 이걸 무례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젓가락이 11자여야지 x 자면 무례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예법을 특히 강조했던 조선시대 어디에도 올바른 젓가락 사용법에 대한 언급이나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禮)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다 보면 예와 무례의 경계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내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남의 자유도 존중돼야 한다. 그래서 배려와 존중이 요구되고 그 적절한 지점에 예의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타인의 젓가락질에 대한 엄격한 태도는 사실 개인적 선호일 뿐이고, 상대에게는 무례한 행동일 수 있다. 현실은 그러나 냉혹하다. 근래 어느 기업이 신입사원 공채 면접에서 젓가락질 심사를 도입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원자의 태도를 평가하겠다는 명분인데 왜 굳이 젓가락질이어야만 했는지... 한때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하는 유행가로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그저 노래일 뿐이었나 보다. 전문가에 따르면 올바른(?) 젓가락질은 1990년대 초 젓가락질을 못하는 초등학생들이 많아지자 올바른 젓가락질 방법을 교과서에 기재하면서 규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노하우였을 뿐인데 반드시 지켜야 할 예절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안타까운 파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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