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관광의 오늘을 돌아보는 데 36년 전의 기록만큼 선명한 거울은 드물다.
창간 37주년을 맞아 본지가 다시 꺼내든 1990년 5월 11일자 제22호에는, 경주지역발전연구회 창립기념 세미나에서 이봉석 교수가 발표한 ‘경주지역 관광 현황과 발전과제’가 담겨 있다.
숫자와 지표로 분석된 당시의 제언은 경주 관광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1989년 한 해 동안 경주를 찾은 관광객은 외국인 55만5571명, 국민관광객 482만3916명으로 모두 ‘537만9487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7% 늘어난 수치로, 이미 1980년대 말 경주는 국내 대표 관광도시로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관광산업이 지역경제의 핵심축으로 부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36년이 흐른 현재, 한국관광데이터랩 집계에 따르면 2025년 경주를 방문한 외지인 관광객은 5020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300만명 이상 증가한 수치로, 1989년과 비교하면 약 10배에 달하는 성장이다. 단순 방문객 수만 놓고 보면 경주 관광은 비약적인 외형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는 그대로, 심리적 거리는 단축
1990년 당시 경주는 서울에서 약 400㎞ 떨어져 있었고, 이동 시간은 4시간 30분 안팎이 소요됐다. 부산과는 79㎞(60분), 대구 66.4㎞(50분), 포항 30㎞(30분), 울산 45.7㎞(60분) 거리였지만, 항공편은 인접 도시를 경유해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랐다. 접근성은 관광 경쟁력의 한계로 지적되곤 했다.
현재도 물리적 거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KTX 개통과 고속도로망 확충으로 체감 이동 시간은 크게 단축됐다. ‘멀다’는 인식 대신 ‘당일치기와 1박 여행이 가능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교통 인프라 개선은 경주 관광 저변 확대의 가장 확실한 동력이 됐다.
수용성 확대 속 드러난 질적 한계
1990년 기준 경주지역 관광사업체는 숙박시설 293곳, 여행업 14곳, 종합휴양업 1곳에 불과했다. 관광객 증가 속도에 비해 레크리에이션 시설과 체험형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했고, 관광의 형태 역시 유적 관람 중심의 정적 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1989년 외래객 여론조사에서 제기된 불편사항은 언어소통 문제, 교통혼잡, 택시운전사의 서비스 태도, 상품 강매, 음식점 위생 등 관광 전반의 기초 서비스와 직결된 사안들이었다. 개선 과제로도 택시 불친절과 부당요금, 교통체증, 관광종사원의 불친절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36년이 지난 지금, 숙박시설과 관광 인프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그러나 관광객 수가 10배로 늘어난 만큼 새로운 부담도 뒤따랐다. 오버투어리즘에 따른 주차난과 교통 체증, 일부 관광지의 과도한 상업화, 지역 주민의 생활 불편과 피로감은 양적 성장의 그늘로 나타나고 있다. 성장 속도가 성숙의 속도를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36년 전 발전과제, 얼마나 실현됐나?
당시 제안된 관광지 분산 전략은 보문관광단지 중심 구조의 한계를 정확히 짚은 대목이었다. 보문관광단지의 수용 한계에 대비해 관광단지 확대와 국민관광지 개발을 통한 관광객 분산이 필요하다는 진단이었다. 현재 경주는 황리단길, 동궁과 월지 야간 개장, 도심 문화공간 조성 등 새로운 관광 거점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특정 지역으로 관광객이 집중되는 현상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관광 이미지 강화를 위해 제안됐던 문화관광해설사 배치와 홍보 강화는 제도적으로 정착됐고, 스마트 관광 서비스로 진화했다. 다만 지역 주민을 관광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이른바 ‘관광 요원화’는 아직도 진행형 과제로 남아 있다.
관광코스 개발 측면에서도 경주의 정적인 역사 관광과 감포지역을 연계한 복합형 코스, 포항·울산과의 산업관광 연계가 제시됐고, 2026년 현재 동해안 해양관광과 K-컬처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확장이 시도되고 있다.
비수기 해법과 국제회의 도시의 도약
1990년 제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대목은 컨벤션 관광 강화였다. 국제회의 유치는 관광 비수기를 극복할 핵심 전략으로 꼽혔고, 이는 2025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현실이 됐다. 경주는 이제 역사문화도시를 넘어 국제회의와 마이스(MICE) 산업을 겸비한 도시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했다.
신라문화제는 경주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재원 마련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온천 관광 역시 시설 확충을 넘어 경주만의 차별화된 온천 문화 콘텐츠 개발이 요구된다.
여전히 유효한 과제들
관광토산품과 향토음식, 체험형 레크리에이션 시설 확충에 대한 지적은 36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특산품과 음식이 대표성을 확보했지만, 새로운 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혁신은 계속 필요하다. ‘경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과 상품’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과제다.
특히 다양한 동적 활동을 원하는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지적은 3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문화유산 관람을 넘어, 체험과 참여 중심의 콘텐츠 확대 없이는 관광의 질적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관광객 6000만 시대, 진짜 시험대
경주시는 연간 관광객 5000만명을 넘어 6000만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2025 APEC 정상회의 이후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전략과 함께, 관광 정책의 중심축을 ‘양’에서 ‘질’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1990년 이봉석 교수가 강조했던 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경주는 한국 최고의 문화유적 도시이며, 일회성이 아닌 영구적 관광목적지로서 내·외국인의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관광도시다. 관광의 본질이 문화라고 할 때, 외래객에게 한국의 역사적 문화를 가치 있게 인식시킬 수 있는 곳이 경주다.”
그는 “이와 같은 좋은 위치에 거주하는 지역인들의 삶은 자연히 관광현상에 따르는 제반 영향이 긍정적으로 확대될 때 생활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및 관광개발인의 의욕 찬 투자와 더불어 지역인의 관심 있는 호응이 지역발전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6년 전의 제언은 숫자로 증명된 성장 뒤에 남은 질문을 다시 꺼내 보게 한다. 관광객 증가를 넘어, 방문객과 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가. 6000만 시대를 앞둔 경주가 마주한 진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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