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홈 오피니언 연재 우리경로당이최고야

깊은 골짜기마다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최진열 기자 1713호 입력 2026/01/02 13:26 수정 2026/01/15 17:35
우리 경로당이 최고야 [14]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
주민 자치와 공동체 정신의 살아있는 표본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컵 쌓기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서면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확대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컵 쌓기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있다. 최진열 기자

“경로당 문턱만 넘으면 내 집처럼 편안합니다. 회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가족 같지요.”


경주시 서면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을 찾은 오후, 어르신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낮 동안 농사일로 구슬땀을 흘린 이들이 해 질 무렵이면 하나둘 모여드는 이곳은 단순한 노인 여가시설을 넘어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일깨우는 특별한 공간이다.

 


천년 역사의 땅, 서면 심곡리


경주시 서면은 고려 태조 시절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 유서 깊은 지역이다. 조선시대 ‘내서면’이라 불리던 이곳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그중에서도 심곡리는 임진왜란 당시 전란을 피해 이곳을 찾은 선비 경현(慶賢) 선생이 “골짜기가 깊고 아늑하다”며 이름 붙인 ‘심곡(深谷)’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깊고 평화로운 이 골짜기에 자리한 지현동 경로당은 마을 주민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끈끈한 정이 녹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건빵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사진=서면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확대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건빵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최진열 기자

‘십시일반’으로 일군 우리의 보금자리


지현동 경로당의 탄생 비화는 유독 남다르다. 현재 심곡리에는 4개의 경로당이 운영 중이지만, 지현동 경로당만큼 주민 자치의 정신이 뚜렷한 곳도 드물다.


과거 마을에 경로당이 단 한 곳뿐이던 시절, 연로한 어르신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지현동 주민들은 2012년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자금을 모아 현재의 경로당을 직접 설립한 것이다.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힘을 합쳐 일궈낸 보금자리이기에, 이곳 회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은 그 어느 곳보다 강하다. 우리 손으로 직접 세운 곳이라는 자긍심은 경로당 운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웃 간 정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운영


지현동 경로당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활기가 넘친다. 각자의 논밭에서 하루를 보낸 어르신들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 경로당으로 모여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의 피로를 나눈다.


주목할 점은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공적 운영비에만 의존하기보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각출해 운영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 없이 즐겁게 동참하는 모습에서 지현동 특유의 높은 공동체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나누어 먹는 밥 한 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야말로 지현동 경로당의 진정한 자산이다.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한 ‘청춘 교실’


지현동 어르신들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왕성한 학구열이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에서 파견하는 ‘경로당 행복선생님’의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경로당은 이내 배움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외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대단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지현동 어르신들은 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한 예우가 깍듯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가르치는 이에게 늘 감사함을 표하는 어르신들의 따뜻한 매너 덕분에, 이곳은 행복선생님들 사이에서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경로당’으로 손꼽힌다.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디지털 화상 시스템을 이용해 프로그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서면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확대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에서 디지털 화상 시스템을 이용해 프로그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진열 기자



“웃음꽃 피는 행복 발전소로”


현재 지현동 경로당을 이끄는 윤규식 회장은 경로당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발로 뛰는 ‘살림꾼’이다. 윤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맞물려 지현동 경로당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윤규식 회장은 “회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어 늘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지현동 경로당이 마을 어르신들의 든든한 쉼터이자, 웃음꽃이 피어나는 행복 발전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깊은 골짜기 심곡리에서 피어난 지현동 경로당의 이야기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 진정한 ‘이웃 사촌’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지현동 어르신들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앞으로도 심곡리 산자락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윤규식 회장 <사진=서면 심곡리 지현동 경로당>
확대
윤규식 회장. 최진열 기자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