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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키운 억척 삶, 정으로 꽃피운 ‘행복 발전소’

최진열 기자 1711호 입력 2025/12/18 17:10 수정 2025/12/18 17:17
우리 경로당이 최고야 [12] 오류4리 경로당
노년의 새로운 활력 공간으로 주목

 

나만의 에코백을 들고 한 컷. 최진열 기자확대
나만의 에코백을 들고 한 컷. 최진열 기자
동해안 최전선 어촌마을인 경주시 감포읍 오류4리에서 해녀들의 경로당이 지역사회의 모범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감은포(甘隱浦)’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한 감포는 신라 6촌 중 하나였던 금산가리촌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이 중에서도 오류4리는 동해의 거친 파도와 함께 삶을 일궈온 해녀들의 강인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해녀 공동체


 

 

오류4리 경로당 전경. 최진열 기자확대
오류4리 경로당 전경. 최진열 기자
오류4리 마을 여성 회원 절반 이상이 나잠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칠흑같은 해수면 아래로 잠수해 미역, 전복, 해삼 등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밭을 오가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동해안 어촌 문화의 생생한 역사이자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긴 물질 시간 탓에 경로당 활동 참여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경로당,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다


 

오류4리 경로당은 김동구 전 회장 시절 일꾼들의 사랑방에서 출발해 현재는 마을 어르신들의 든든한 공동체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여성 회원들의 참여가 압도적으로 많아 해녀들의 활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우승헌 현 경로회장은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물질로 바쁜 어머니들이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회장의 부인이 중간 역할을 맡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전언이다.

한 경로당 회원은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어 쓰려는 회원들의 돈독한 정이 차디찬 바닷속에서의 고독을 녹여주는 온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선생님’ 프로그램으로 되찾은 웃음


 

팔 운동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최진열 기자확대
팔 운동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최진열 기자
최근 오류4리 경로당에는 특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치매 예방과 신체 활력 증진을 위한 ‘행복선생님’ 프로그램이 그 주인공이다.

망사천을 활용한 팔운동은 무거운 해산물을 다루며 지친 해녀들의 팔 근육을 풀어주고, 터링 게임은 어르신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게임에서 이긴 어르신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은 경로당의 일상이 됐다.

 

나만의 에코백을 색칠하는 활동은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환경보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에코백을 서로 자랑하며 나누는 모습에서 순수한 기쁨과 자부심이 엿보인다.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 만든 긍정의 순환


 

우승헌 회장. <사진=오류4리 경로당>확대
우승헌 회장. <사진=오류4리 경로당>
우승헌 회장의 리더십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 동력이다.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망설이는 회원들을 부인과 함께 따뜻하게 격려하는 그의 모습은 경로당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김모 경로당 회원은 “물질하느라 피곤해도 경로당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며 “회장님이 웃으면서 ‘잘했다’고 칭찬해주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격려와 칭찬의 문화는 경로당을 긍정적 에너지가 순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법을 배우며 품격 있는 노년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억척스러운 삶에서 행복한 노년으로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 최진열 기자확대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 최진열 기자
매일 바다와 씨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감포 오류4리 해녀들. 이들은 이제 경로당이라는 따뜻한 품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새로운 삶의 기쁨을 찾고 있다.

세찬 바람과 따가운 햇볕 속에서 굳건히 버텨온 해녀들의 강인함은 오류4리 마을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였다. 하지만 그 강인함 뒤에는 차디찬 바닷속을 홀로 견뎌야 했던 고독도 함께 있었다. 경로당은 바로 그 고독을 따뜻한 정으로 녹여내는 공간이 되고 있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해산물처럼 싱싱한 활력과 동해의 깊은 물속만큼이나 끈끈한 정으로 뭉친 오류4리 경로당. 이곳은 단순한 쉼터를 넘어 해녀 문화를 계승하고 노년의 삶에 건강과 행복을 불어넣는 ‘행복 발전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경로당이 생기를 되찾으면서 마을 전체 분위기도 밝아졌다”며 “해녀 일로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들이 이제는 경로당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오류4리 경로당 사례가 고령화 시대 농어촌 공동체 활성화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지역 특성을 살린 맞춤형 프로그램과 리더십이 결합될 때 경로당이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진정한 공동체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

동해의 푸른 바다처럼 맑고 바위처럼 굳건한 정신을 지닌 오류4리 경로당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황혼은 노년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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