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홈 기획특집 2025 무장애도시

포용과 혁신으로 천년고도의 품격을 완성하다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06호 입력 2025/10/30 13:51 수정 2025/10/30 13:55
⑤ 지속가능한 무장애도시 경주, 미래를 향한 과제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 ‘작동하는 무장애’로 보여준 도시의 미래

 

월지관 내 2차 경사로를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박물관>확대
월지관 내 2차 경사로를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박물관>
경주가 무장애 도시를 향해 걷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행정의 선언이 현실이 되려면 시설의 수보다 작동하는 연속성, 즉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번 5회차 마지막편에서는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의 리뉴얼 사례를 중심으로 무장애 도시의 미래를 위한 공학적 전환과 문화적 확장의 방향을 짚는다.


월지관, 계단을 지우고 경사를 낮추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월지관이 1년 6개월의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김수근 건축 특유의 스킵플로어 구조로 인해 이동이 제한됐던 전시동은 이번 리뉴얼을 통해 이용 장벽 없는 전시관으로 거듭났다.

 
핵심은 2층을 철거해 단층화한 것이다. 법적 최소 기준을 넘어 권장 경사값을 반영했고, 바닥 미끄럼 저항성까지 정밀하게 계산했다. 출입부터 관람, 휴게, 화장실, 출구까지 동선이 하나로 이어져 휠체어 이용자, 노약자, 유모차 사용자, 발달장애인 가족 모두가 보조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월지관 리노베이션은 관람객의 이동권을 설계한 일”이라며 “누구나 도움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월지관의 변화는 이동편의와 함께 정보 접근성(인지적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유물 나열 중심의 전시에서 미디어아트, 설명 영상, 3D 와이어 재현을 도입했다. 텍스트 해석 없이도 형태와 쓰임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감각적 전시로 전환한 것이다. 경사로가 이동의 문을 열었다면, 미디어로 이해의 문을 열어 관람자를 섬세하게 배려한 것이다.

 

<바뀌기 전> 월지관 들어설때 만나는 경사로와 계단. <사진=국립경주박물관>확대
<바뀌기 전> 월지관 들어설때 만나는 경사로와 계단. <사진=국립경주박물관>

 

<바뀐 후> 경사로와 휴게공간으로 바뀐 계단. <사진=국립경주박물관>확대
<바뀐 후> 경사로와 휴게공간으로 바뀐 계단. <사진=국립경주박물관>


행정의 선언에서 작동하는 현장으로


경주시가 지난해 제정한 ‘무장애 도시 조성 조례’는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와 현장의 거리는 멀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성과를 설치 수가 아닌 작동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헌덕 경주시무장애도시조성위원회 부위원장은 “경주의 무장애 평가는 설치 건수가 아니라 연속 이동거리, 신호 적합률, 민원 감소율 같은 지표로 전환돼야 한다”며 “시설을 늘리는 것보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행정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도로·공원 등 도시계획시설의 기획 단계부터 장애 당사자와 전문가가 함께 도면을 검토하는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또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같은 핵심 동선은 ‘이동권 핵심설비 우선 심의제’를 통해 신속히 처리하도록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경주시 조례 제15조는 관계 기관 및 단체와의 협력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도면 단계에서의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


도시계획 설계 초반부터 장애 당사자, 건축·도시 전문가가 함께 검토하는 사전 자문 제도를 제도화하고, 사후 보정보다 사전 예방형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 인식의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 소상공인과 운수 종사자, 청소년,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현장 동선 예의 교육을 정례화하고, 휠체어·유모차 체험, 큰 글자 메뉴, 응대 멘트 키트 등 60분 시뮬레이션형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한다는 제안이다.


문화유산 보호와 접근의 균형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국가유산청 협의 체계 내에서 가설 경사로, 착탈식 손잡이, 저충격 포장 등 가역적 보완책을 표준화하고, 촉각 지도와 수어 영상 같은 대체 경험 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진다.

 

<바뀐 후> 월지관 입구. <사진=국립경주박물관>확대
<바뀐 후> 월지관 입구.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상시 점검 체계로 보이는 행정구축


조례 제7조는 시민 제안 및 모니터링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실행 단계로 옮기기 위해 경주시는 장애 당사자, 보호자, 활동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시민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정례 점검에 나선다. 예약·교통·보조기기·해설·현장 요청을 하나로 묶는 원스톱 콜센터 및 챗봇 시스템도 추진 중이다.


경주시 무장애도시 조성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도출된 실질적인 실행 방안 및 단계별 로드맵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실태조사 결과는 구글 기반 지도로 시각화돼 있으며, 향후 통합 무장애 정보 앱으로 발전해 휠체어 경로, 장애인 화장실, 저상버스 운행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보도 단차, 맨홀 융기, 음성유도기 고장 등은 QR코드 기반의 즉시 신고 체계 도입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으며, 점자블록과 횡단보도 접근로의 정기 점검 주기(월 1회), 입간판·플랜터 등 장애물의 상시 정비 체계(주 1회) 마련 또한 향후 행정 운영의 기준 방향으로 제시됐다.


또 경주시는 향후 5년간의 기본계획 안에서 즉시 체감 가능한 변화와 장기 시스템 전환을 병행하는 3단계 로드맵의 윤곽을 제시했다.


1단계는 시민이 바로 느낄 수 있는 구간 정비를 중심으로 구상됐다. 점자블록 위 입간판·플랜터·자전거 거치대 철거, 횡단보도 음성유도기 전방 1m 무장애 공간 확보, 박물관·대릉원 등 주요 거점의 리프트 차량 전용 승하차 공간 확보 방안, 행사·성수기용 모듈러 램프 비치 및 대체 동선 문자 안내 등이 단기 조치의 예시로 제안됐다.


2단계(3개월 집중 개선기)는 소규모 물리적 개선을 중심으로 한다. 점자블록의 표준 재시공 필요성, 불국사·대릉원 주요 동선의 평탄화, 경사로 기준(≤1:12) 적용과 휴식 벤치 배치, 전시장 통로 폭 1.8m 이상 확장 등은 현장 의견을 반영한 개선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3단계(6~12개월 제도·시스템 전환기)는 저상버스 도입률을 전국 평균(38.9%)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향, 외곽 노선의 접근성 확보 기준 설정, 국가유산 보호구역 내 가역적·비침습적 보조 동선 도입 필요성 등을 포함한다.

 

<바뀐 후> 월지관 내 1차 경사로. <사진=국립경주박물관>확대
<바뀐 후> 월지관 내 1차 경사로. <사진=국립경주박물관>


37.4%, 예외 아닌 표준


경주는 인구의 37.4%가 이동약자다. 이제 배려의 도시에서 접근의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월지관의 변화는 도시가 사람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를 재설계한 사례다.


배예경 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장애를 둔 아이에게 필요한 건 특별 대우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라며 “조용한 시간, 명확한 동선, 쉬운 안내만으로도 불안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통이나 시설보다 더 힘든 건 사회의 시선”이라며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것이 무장애 도시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경주의 무장애 도시 구상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인프라이며, 지속가능한 문화정책의 핵심이다. 화려한 시설보다 사람의 이동권이 존중되는 운영의 품격이 진짜 경쟁력이다. 계단을 지우고, 경사를 낮춘 월지관처럼 천년고도의 품격은 이제 모두의 접근성 위에서 완성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