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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기획특집 2025 무장애도시

‘우수 사례’로 불리지만 여전히 불편한 진실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04호 입력 2025/10/16 14:54 수정 2025/10/16 15:03
③ 천년의 문턱에서, 보존과 향유의 균형을 묻다
전국 무장애 관광 선도도시들이 안고있는 또 다른 과제

 

전통 건축 원형을 유지하면서 휠체어, 유모차 이용객을 위한 나무경사로. 오선아 기자.확대
전통 건축 원형을 유지하면서 휠체어, 유모차 이용객을 위한 나무경사로. 오선아 기자.
천년고도 경주는 지금 ‘무장애 도시’를 향해 걷고 있다. 그러나 보존과 향유의 경계에서 멈춘 길은 여전히 많다. 세계유산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규제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국가유산의 보존은 당연한 책무이지만 그 보존이 시민의 발길을 가로막을 때 유산은 더 이상 살아 있는 공간이라 부르기 어렵다.


이 갈등은 경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수원, 전주, 제주 등 전국의 문화도시들 모두가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보존의 명분이 향유의 권리를 막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문화유산 관광이 마주한 아이러니다.

 

무장애 여행을 돕는 전문 인력이 무장애 여행의 큰 힘이 되고 있다. 이필혁 기자.확대
무장애 여행을 돕는 전문 인력이 무장애 여행의 큰 힘이 되고 있다. 이필혁 기자.


“시설보다 서비스, 인프라보다 정보가 중요합니다”
-제주 무장애 관광의 현실- 두리함께 이은실 대표


 

두리함께 이은실 대표. 이필혁 기자.확대
두리함께 이은실 대표. 이필혁 기자.
제주도는 국내 최대 관광지로 친 무장애 도시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관광을 즐길수 있는 여건들이 하나둘 마련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에게 관광은 쉽지 않은 도전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인프라 확충에서 벗어나 장애인들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이 부족하다. 


제주도 기업 ‘두리함께’는 2014년 사회적기업으로 ‘장애인도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창업한 곳이다. 창업 전부터 관광업에 종사하던 이은실 대표<인물사진>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복지 관광을 접하며 이 분야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았다. 당시 국내에는 ‘무장애 관광’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했고 개인이 비용을 내고 즐기는 여행시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두리함께는 제주에서 리프트 버스를 도입하며 지체장애인 중심의 여행 상품을 기획했다. 버스가 리프트를 올리고 내리는 모습은 당시 관광객들에게 신기한 장면이었다. 장애인들도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였다. 이후 발달장애, 시각·청각장애, 노인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며 사업은 조금씩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은실 대표는 시장을 “묘하다”고 표현했다. 무장애 여행은 가격 경쟁이 아닌 서비스의 전문성이 핵심인데 실제로는 이 점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은실 대표는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이지만 정작 호텔 객실 중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객실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된 자료가 없다. 한복 대여점 중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도 단 한 곳뿐이다”면서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경주는 역사도시로 세계적 행사를 준비하는 도시라면 인프라뿐 아니라 장애인과 노인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정보부터 체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무장애 산업의 성장은 더디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은 열린 관광지 조성 등 물리적 인프라 확충에 치중, 복지 대상으로만 접근하면 여행 서비스 제공자는 수익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 그는 “소비자를 ‘돈을 쓰는 주체’로 인정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장애 여행 매니저들의 대상자들의 여행을 돕고 있다. 이필혁 기자.확대
무장애 여행 매니저들의 대상자들의 여행을 돕고 있다. 이필혁 기자.

특히 경주시가 최근 ‘무장애 도시 조례’를 준비 중이라는 점을 두고도 그는 쓴소리를 했다. 그는 “사업비를 따내기 위한 조례라면 의미가 없다. 물리적 접근은 기본값일 뿐이고, 청각·시각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위한 콘텐츠와 서비스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면서 “경주시가 조례를 통해 무장애 도시를 표방하려면 수어 해설사, 촉각 체험형 프로그램, 이동지원 서비스 같은 구체적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실제 무장애 여행 상품은 일반 여행사 상품보다 높은 비용이 필요하다. 휠체어 이용자의 경우 동반자 비용까지 포함하면 1인당 60만원이 넘어간다. 그러나 여행사에 남는 수익은 2~3만원에 불과하다. 서비스 준비와 인력 투입에 따른 가치는 제대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은실 대표는 경주가 무장애 도시를 실질적으로 추진하려면 전국적 관광 정책과 연결해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지라는 위상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인이 모이는 행사에서 무장애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경주가 아시아 무장애 관광의 모델 도시가 될 수 있다. 지자체의 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이용객도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곡선형 데크길. 오선아 기자.확대
이용객도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곡선형 데크길. 오선아 기자.

 

순천만국가정원 입구 장애인 주차장. 오선아 기자.확대
순천만국가정원 입구 장애인 주차장. 오선아 기자.


정원의 문턱을 낮춘 서울과 순천, 현대형 무장애 공간의 실험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서울식물원은 도심 속에서 생태 보존과 접근성을 동시에 실험하는 공간이다. 온실과 전시실, 주제원 등 주요 구간은 평탄하게 설계됐으며, 점자 안내판·촉각 유도 블록·수어 영상 서비스 등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 있다. 지하철과 직접 연결된 접근성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24년에는 한국공항공사 후원으로 무장애 모두 텃밭이 조성됐다. 단차를 없애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올해는 온실과 야외정원의 노후 시설 정비와 더불어 어린이용 물놀이터가 개장해 모두의 식물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한 관광객은 “공간이 워낙 넓은 데다 이정표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아이와 함께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설은 훌륭하지만 이용자 중심의 안내 체계가 조금 더 세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의 순천만국가정원은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무장애 생태도시를 실험하는 공간이다. 넓은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 평탄한 데크길, 쉼터와 안내표지가 곳곳에 설치돼 휠체어 이용자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또한 테라피가든, 스카이큐브, 드림호 등 체험형 콘텐츠를 무장애 기준으로 재설계하며 접근 가능한 관광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제약은 분명하다.


“길은 잘 돼 있지만, 워낙 넓어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만 해도 체력 소모가 큽니다.”


일부 자갈길과 흙길은 여전히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성수기에는 인력 부족으로 긴급 지원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순천만국가정원은 자연과 접근성의 공존을 향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무의미한 경복궁 매표소 진입구 점자블록. 오선아 기자.확대
무의미한 경복궁 매표소 진입구 점자블록. 오선아 기자.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접근성을 묻다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은 오랜 세월의 시간 속에서도 열린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경복궁은 흥례문에서 근정전, 경회루, 교태전까지 무장애 동선을 확보했고, 점자 지도와 수어 영상 안내 등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정보 접근성도 개선됐다.

 
창덕궁 역시 주요 출입구와 관람지원센터에 무장애 시설을 도입하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과 대여소를 확충했다. 하지만 전통 건축의 한계는 여전하다. 계단과 돌길이 많은 전각 내부, 후원 구역은 여전히 볼 수 없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두 궁궐의 시도는 보존과 향유의 권리를 대립이 아닌 조율의 관계로 바꾸는 일, 그것이 두 궁이 보여주는 변화의 방향이다.

 

전주한옥마을 대표 보행로. 오선아 기자.확대
전주한옥마을 대표 보행로. 오선아 기자.


전통의 길 위에서, 모두를 위한 문을 열다

수원화성과 전주한옥마을의 무장애 실험


수원화성은 2024년 이후 무장애 관광도시로의 변화를 본격화했다. 화성행궁 신풍루 출입구에는 완만한 경사로가 설치됐고, 주요 건물 대부분이 낮은 문턱과 데크길로 연결됐다.


열린관광지 사업으로 전문 안내 인력과 정보 서비스가 강화됐으며, 화성어차와 같은 대체 이동수단이 도입돼 관람 편의가 한층 높아졌다. 다만 성곽 특유의 경사와 돌길, 그리고 성수기 혼잡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전주의 한옥마을 역시 전통미를 보존하면서도 접근성을 확장하고 있다. 전주시가 추진 중인 열린관광지 사업을 통해 단차 제거, 경사로 설치, 점자블록 확충 등 환경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납작한 돌길과 징검다리는 여전히 휠체어나 유모차 이동에 불편을 준다.


전주시는 무장애 객실과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지만, 전통의 물리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켜야 할 것과 열어야 할 것 사이에서


무장애 도시는 시설 개선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국가유산을 지키는 일과 모두에게 여는 일은 결코 반대가 아니다. 그 둘을 조율하는 도시만이 진정한 문화유산의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다음 4편에서는 노후 도시가 어떻게 제도와 인식의 전환을 통해 함께 사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다룰 예정이다.

 

 

오선아 기자, 이필혁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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