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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기획특집 2025 무장애도시

천년고도 경주, 그러나 길 앞에서 멈춘다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03호 입력 2025/10/02 14:48 수정 2025/10/02 14:53
② 관광도시의 품격, 환대의 기준은 접근성
관광도시 품격 가르는 무장애 접근성

 

불국사 정문 옆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접근성 향상을 위해 배치됐지만 경사와 보조 공간 부족으로 실제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여전하다. 오선아 기자.확대
불국사 정문 옆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접근성 향상을 위해 배치됐지만 경사와 보조 공간 부족으로 실제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여전하다. 오선아 기자.
세계유산 불국사 주차장.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내리는 순간, 쉽지 않은 현실이 드러난다. 주차면이 경사진 상태여서 휠체어가 흘러내릴 위험이 있고, 보조인이 없으면 균형을 잃기 쉽다.


측면 보조공간은 표시선만 넓을 뿐 별도로 마련되지 않아, 나란히 차량이 들어서면 휠체어 이동이 불편해진다. 입구로 이어지는 안전 동선도 없어, 주차 후 곧바로 차도를 따라야 한다. 차량 진입을 막는 차단봉은 보행자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불국사 주차장에서 드러난 장면은 특정 시설의 문제라기보다 경주 주요 관광지 전반에서 반복되는 이동약자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주가 국제 관광도시를 표방하며 연간 5000만 관광객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 접근성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관광도시의 진짜 품격은 유적의 화려함이 아니라, 누구나 편히 다가올 수 있는 길에 있습니다.” 경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다섯 명은 본지와의 그룹인터뷰에서 이렇게 입을 모았다.


불국사, 대릉원, 황룡사지 등 세계유산이 즐비한 도시지만 그 문턱은 의외로 낮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끊긴 동선, 점자블록 위에 놓인 화분, 외곽으로 갈수록 적어지는 저상버스 등 그들의 경험담은 관광도시 경주의 화려한 간판 뒤에 가려진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확대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


“장애인 주차장에서부터 이미 막힌다”


지체장애인 해설사 전종찬 씨는 관광의 첫 순간부터 좌절을 겪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석과 배수구 덮개가 휠체어 바퀴를 막아섭니다. 인도로 못 올라가니 차도를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지칩니다.”


그는 불국사·대릉원 같은 대표 관광지조차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동선이 단절돼 있다고 했다.


“시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실제로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해설사로 일하면서도 관광객을 안내할 때 절반 이상은 우회해야 합니다. 관광을 왔다가 오히려 장애를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경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들. 오선아 기자.확대
경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들. 오선아 기자.


“외출은 늘 두려움으로 시작됩니다.”


10여년 년 전 시력을 잃어 희미한 윤곽만 구분할 수 있는 중도 시각장애인 황주태 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더 힘겹다고 말했다.

 
작은 글씨 메뉴판 앞에서는 주문조차 쉽지 않고, 화장실은 위치 안내가 없어 찾기조차 어렵다. 출입문이 미닫이나 회전식일 경우 혼자 열기도 힘들어 이용을 포기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는 “관광은 누구에게나 권리인데, 여전히 특별한 배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분위기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황주태 씨는 점자블록 문제도 지적했다. “점자블록은 끊김 없이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데, 중간에서 뚝 끊기거나 화분과 가판대가 막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내가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거죠.”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확대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


“울산·부산에선 가능했던 이동이, 경주에선 막힙니다.”


울산에서 40년을 살다 8년 전 경주로 이주한 최심해 씨는 교통 환경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울산이나 부산에서는 저상버스를 타는 게 당연했는데, 경주에서는 특히 외곽 노선은 저상버스가 드물어 고령자들이 계단식 버스에서 뒤로 내려야 하는 위험한 상황도 반복됩니다. 관광도시라면 가장 먼저 교통 접근성이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생활권 공원의 불편도 덧붙였다. “황성공원만 해도 밤이면 조명이 부족해 발을 헛디딜까 두렵습니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해 휠체어 바퀴가 걸려 멈추기 일쑤예요. 시민의 길이 불편하다면, 그 길을 따라오는 관광객 역시 같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호자의 피로도는 또 다른 장벽입니다”


지체장애인이면서 동시에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김외자 씨는 무장애 문제를 ‘동반자의 시선’에서 설명했다.


“장애인 본인만 힘든 게 아니에요. 가족이나 보호자는 늘 발밑을 살피며 이동해야 하고, 동선이 끊기면 예상치 못한 우회를 반복해야 합니다. 휠체어를 밀고 경사로를 오르내리다 보면 금세 지치고, 잠시 앉아 쉴 공간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관광은 즐거움보다 피로로 남게 되고, 우리 가족 전체가 도시에서 소외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는 관광지마다 안내 체계가 제각각인 것도 문제로 꼽았다. “어떤 유적지는 화장실이나 출입로 안내가 잘 돼 있지만, 다른 곳은 전혀 표시가 없고, 음성 안내가 있는 곳도 드뭅니다. 관광객은 매번 새로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죠. 접근성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값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관광도시의 품격이 살아납니다.”


결국 작은 배려가 도시 전체의 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해설의 속도와 눈높이도 무장애의 일부입니다.”


문화관광해설사 김동한 씨는 무장애를 시설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유적을 설명할 때 지식 전달도 중요하지만 관광객이 따라올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분들은 이동 속도가 느린데, 해설이 앞서가 버리면 좋은 설명도 공중에 흩어지고 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사례도 전했다.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아이를 돌보다 뒤처지거나 시각장애인 분들이 안내판을 읽지 못해 해설사의 말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내판 글씨 크기와 위치가 적절치 않으면 불편은 더 커지죠.” 김 씨는 “해설사의 배려와 안내 체계가 함께 맞물려야 진짜 ‘무장애 해설’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경주에 필요한 해법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꼽았다. “다른 도시에서는 촉각 지도를 활용하거나, 이어폰을 통해 개별 음성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앱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처럼 문화재 하나하나에 개별 안내를 제공하는 방식이죠. 경주에도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관광객이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기본적인 편의여야 합니다.”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확대
대릉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 하지만 배수로 틈과 그물망 보행로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된다. 오선아 기자.


끊기지 않는 길, 그것이 해답이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정류장에서 차량까지의 이 짧은 구간이 이어질 때, 경주는 비로소 ‘모두를 위한 환대’를 증명할 수 있다.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지적한 문제는 거대한 것이 아닌 작은 보도블록, 안내판의 글씨 크기 같은 세부적인 것이였다. 그러나 그 세부가 모여 관광도시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경주는 지금 국제관광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유산의 문턱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곧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다. 환대는 길 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문제는 예산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는 늘 “국가유산이라 손댈 수 없다”는 규제가 벽처럼 가로막는다. 국가유산청의 엄격한 보존 원칙은 분명 소중한 자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오늘의 시민과 관광객이 향유할 권리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과제는 보존과 향유의 균형, 두 가치를 함께 지켜내는 창의적인 해법을 찾는 일이다.


무장애 접근성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주시의 행정 노력뿐 아니라, 국가유산청의 제도 개선과 협의가 필수적이다. 작은 구간이라도 끊김 없이 이어질 때, 경주는 진정한 의미의 국제관광도시로 완성될 수 있다.


본지는 다음 편에서 ‘천년의 문턱에서, 보존과 향유의 균형을 묻다’라는 주제로, 국가유산 보존 규제가 어떻게 무장애 접근성의 발목을 잡는지, 또 그 한계를 넘어설 대안은 무엇인지 다룰 예정이다. 천년고도의 품격은 결국, 지켜야 할 것과 열어야 할 것 사이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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