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불을 비롯해 석굴 내 55곳에서 균열, 박리, 변색, 누수, 백화현상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지난 3년 동안 석굴암의 문화재 보존·관리와 관련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석굴암(石窟庵)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약 80년이 지나 왕권이 안정되고 외부로부터 침입이 없어 평화를 구가하던 시대에 조성됐다. 당나라와 인도로 갔던 많은 구법승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와 새로운 사상과 문화, 그리고 불상양식을 유입하는 등 신라불교문화가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석굴암은 불국사의 일개 암자로 격하되고 여러 번의 중수(重修)과정을 거치며 무리한 해체와 복원과정은 원래의 모습을 크게 훼손하고 만다.
그 동안의 축적된 많은 연구로 구조나 윤곽 등 석굴의 형식적 결과물들은 밝혀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걸음이 더디다. 학계에서는 아직 본존불의 이름[尊名]도, 어떠한 사상적 토대에 근거해 조성됐는지도 통일되지 않은 상황이다.
본존불에 대한 질적 연구를 다각도에서 전개하고 있는데, 그 중 시대상황, 역할관계, 및 수인(手印)에 대한 검토가 대표적이다. 삼국유사나 그 당시 유행했던 종파와 경전을 살펴서 당시 시대상황을 유추해 본다거나, 석굴암 내 38구의 불상을 연구해 본존불과의 역할관계를 따져보거나, 취하고 있는 손 모양에 힌트를 얻어 본존불이 누구인지 그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 등이 그것이다.
복잡하지만 살짝 살펴보면 이런 식이다. 먼저 본존불이 아미타불이라고 보는 측. 석굴암 하나만 보지 말고 불국사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화엄정토에 입각한 아미타불로 보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석굴암 조성에 영향을 준 다양한 사상을 배제하고 오직 화엄사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존불이 동향(東向)으로 앉아있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한다.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도 동향으로 앉고 부석사의 본존불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굴암의 원형인 인도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의 석가불도 동향이며 중국도 그런 예들이 있어 비판받는다.
두 번째로 석가불이라고 주장하는 측. 마하보리사의 성도상(成道像)의 수인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바른 깨달음’을 상징하기에 본존불이 석가불이라는 주장이다. 문수와 보현보살과 더불어 10대 제자를 그 근거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군위의 삼존석굴은 아미타불인데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구체적인 호칭보다 글자 그대로 ‘본존불’로만 보자는 측도 있다. 삼신불(三身佛)의 개념으로 볼 때 석가불, 미륵불, 비로자나불을 같은 부처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저 알쏭달쏭한 말 뿐이다.
뭔가 허전하다. 그래, 이 논쟁에는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 빠져있다. 그건 바로 ‘우리’다. 만약 이가 아픈 내가 어떤 부처님한테 매달리겠는가? 의사의 역할을 해주는 약사여래불(대구의 갓바위 부처님)이 제일 반갑다. 토끼같은 처자식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 아비라면 영원한 생명의 무량수불(無量壽佛)을 간절히 불렀을 것이다.
중생이 처한 상황에 따라 부처가 구체화 된다. 중생이 먼저고, 그 다음이 부처란 말이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듯이 부처는 반드시 중생에 근거한다는 게 불교논리니까, 중생의 바람[感]에 따라 부처의 권능이 구체화[應]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감응(感應)이라고 하는 거다.
우리에겐 선조로부터 받은 소중한 국보를 후손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다. 지키고 물려줄 것이 단순히 ‘돌덩어리’가 아니라 그 속의 ‘생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두 번 다시 못 고치는 석굴암 본존불은 석가모니불(현세불)이고, 아미타불(서방 극락정토의 부처)이며, 동시에 미륵불(미래불)이다. 본존불뿐 아니라 우리 세상사람의 염원도 온전히 담겨있는 석굴암은, 그래서 더 이상 아프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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