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한 성건동, 그리고 성건본동경로당 성건동 중앙시장 맞은편 골목 안쪽에 위치한 성건본동경로당(회장 윤수문)은 2층으로 도심에 있는 경로당으로서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과거 성건동사무소로 사용하던 건물이었지만 동국대네거리방면 금성로와 북문로가 연결되는 네거리 인근에 동사무소를 이전하면서 주위의 어르신들의 요청으로 현재 경로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건본동경로당 바로 옆에는 안심사가 있으며 동리생가와 삼랑사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삼랑사터 일대를 영말(북성건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경주부의 진영이 있었다고 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랑사는 신라 진평왕 19년(1597)에 창건된 절인데 폐사되고 보물 제127호로 지정된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거북받침돌의 비가 있었다고 하나 그 후 비는 없어지고 1919년까지 귀부만 남아 있다가 모두 없어져 버렸다. 비의 글은 박거물(朴居勿)이 짓고 글씨는 요극일(姚克一)이 썼다고 전해진다.<경주풍물지리지> 2층 건물인 성건본동경로당은 1층은 어르신들의 쉼터로, 마을회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모 단체에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경로당에는 연초 총회를 할 때는 90여 명의 어르신들이 모이지만 여느 경로당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들보다 할머니들이 주로 쉬시는 쉼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성건본동경로당 전체를 이끄는 분이 윤수문 회장이라면 이 일대 할머니들을 규합하고 경로당을 잘 꾸려가고 있는 분은 박석순(91) 할머니다. 아흔이 넘은 박 할머니는 건강해 보이신다는 표현보다는 정정하시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할머니들은 “우리들을 이끌고 경로당의 모든 것을 챙겨온 분이 박석순 할머니다. 우리 동네의 산증인이자 든든한 후원자”라고 입을 모았다. #손길이 필요한 쉼터 처음부터 성건본동경로당을 이용하신 할머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20여 명의 할머니들이 경로당에 나오시면서 점차 경로당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지난달 30일 오후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들은 TV리모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가스작동기가 타이머를 설치해 오래 쓰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불편을 토로했다. 사소하지만 관심 있는 손길이 아쉬워 보였다. 또 넓은 경로당에 연로하신 할머니들만 계시다보니 청소 또한 큰 문제였다. 올해 성건본동경로당 할머니들은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백세청춘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정하게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건강프로그램을 희망했다. 작년에 성건본동경로당은 경주시로부터 모범경로당으로 지정됐다. 박석순 할머니는 “우리들끼리 서로 사이도 좋고 경로당 운영도 잘되고 있어 경주시에서 작년에 모범경로당으로 지정해 주었다. 상금도 받았고.....”라며 자랑했다. 성건본동경로당은 점점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이 줄어들고 있는 다른 경로당과는 달리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새로운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지척에 볼거리 많은 중앙시장이 있고 시끌벅적한 시내권과 맞닿아 있지만 성건본동경로당은 어르신들의 편안한 쉼터로서는 더 없이 좋았다. 글=이성주 편집국장 / 사진=이필혁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풍요속의 빈곤 경주지역 최대 인구밀집지역인 황성동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1986년 11월 준공한 주공2차아파트는 지역에서 오래된 서민아파트 중 하나로 저층아파트지만 22개 동에 848여세대가 사는 대규모 단지다. 황성동 계림고 뒤편에 있는 주공2차아파트 인근에는 경주시민들의 자랑인 황성공원이 있고, 북서쪽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있어 주위환경이 비교적 좋지만 황성동 일대가 팽창하면서 지금은 지역에서 교통이 혼잡한 대표지역으로 바뀌어 심각한 주차문제와 교통사고 등이 우려되는 지역이다. 경주지역 대규모 아파트마다 대부분 노인회관이나 경로당이 있으며, 주공2차 노인회관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관리사무소와 함께 만들었지만 10평 남짓한 공간은 어르신들의 쉼터라고 하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하나 들여놓은 오래된 작은 냉장고, 조그마한 TV 등이 전부다. 10평이 조금 넘는 노인회관은 처음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쉬시는 방으로 구분해 놓았으나 지금은 할아버지들은 거의 나오시지 않아 할머니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많지만 환경이 좋지 못해 30여 명의 할머니들만 노인회관에서 오후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9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성자향(80·인물사진) 회장은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살다가 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이 지역에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외부에서 아파트를 몇 채씩 사들여 세를 놓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쉽지 않다”면서 “현재 회원은 34명인데 나이가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관심 좀 가져주면 좋으련만..... 주공2차 노인회관은 황성동 요지에 있으면서도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경로당에서 흔히 다닌다는 야외나들이도 잘 없다고 했다. 한 할머니는 “황성동에 많은 경로당이 있는데 어떤 경로당에는 동에 있는 단체들이 자주 방문해 후원도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봉사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경로당은 거의 없는 편이다. 아마도 아파트에 있는 경로당이다 보니 관심이 적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또 “경주시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가스비와 전기료 등 매월 18만원 정도 들어가는 유지비는 큰 부담이다”고 말했다. #텃밭이 없어져서 어쩌노? 형산강을 끼고 있는 주공2차아파트 어르신들의 소일거리 중에 가장 큰 일은 하천부지에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경주시가 형산강정비사업을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경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 할머니는 “오랫동안 하천에 땅을 일구어 여러가지 농작물을 많이 심어 그런대로 심심치도 않았고 수입도 조금 생겨 용돈이라도 벌어 쓸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면서 “올해가 마지막 수확이 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경주시는 하천마다 정비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주공2차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형산강은 경주시와 포항시가 형산강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하천부지에서의 농작물 경작은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또 아파트 앞과 주위에 교통량이 많아 늘 위험을 느낀다고 했다. 한 할머니는 “황성동 북쪽(현진에버빌 쪽)에서 현곡 나원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있으면 차들도 훨씬 적게 다닐텐데 선거 때마다 다리를 놓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뿐이다. 다리를 놓기는 놓느냐”면서 “우리야 늙어 다리를 놓을 때까지 살겠느냐마는 황성동이 더 살기 좋으려면 다리는 꼭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이성주 편집국장 / 사진=이재욱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 이재욱 기자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좁고 불편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쉼터 13평 남짓한 좁은 곳. 경로당을 찾는 데에도 한참을 돌아다녀야할 만큼 외진 장소. 경로당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마당도, 운동기구도 하나 없고, 좁은 주방에 불편한 화장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쉼터 황오동 선덕경로당. 경주고등학교 서편 한옥주택가 한 구석에 있는 선덕경로당은 원래 텃밭이 있었던 자리였다고 한다. 경로당이 생기기 전에는 일반 가정에 방 한 칸을 마련해 동네어르신들이 쉬곤 했다고 한다. 지금의 선덕경로당이 생기게 된 것은 이종락 할머니(전 회장)의 열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의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 이웃과 뜻있는 후원자 등으로부터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지금의 선덕경로당을 마련했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할머니들에겐 ‘선덕여왕’의 이름을 딴 ‘선덕’이라는 이름을 붙인 선덕경로당이 자랑스럽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40여명의 할머니들의 쉼터인 선덕경로당은 4년여 전에 경주시에 등록했다. 할머니들이 경로당운영비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덕경로당은 ‘건강경로당’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아흔일곱의 황두리 할머니를 비롯해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들이 정정하게 활동하고 계셨다. 할머니들은 황 할머니께서 아직 병원에도 잘 가시지 않으실 정도로 정정하시다고 입을 모았다. 선덕경로당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회원들이 서로 위하고 단합도 잘해서 경주시보건소를 비롯한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종 건강프로그램을 자주하고 있었다. #시내권에 있지만 오지나 다름없는 선덕경로당 선덕경로당(황오동 양정로 84번길 2-1)은 경주 도심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선덕경로당 인근에는 시내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경주시는 당초 경주고등학교 사거리에서 북천강변도로까지 도로 개설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인근에 사적지(성동동 전랑지)가 있어, 왕복 4차선 도로를 개설하다가 중단해 주민들이 오랫동안 불편을 겪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덕경로당 인근에 있는 성동동 전랑지는 1937년 북천 제방공사를 하다가 2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건물터와 복도터널 등이 발견되었는데 1993년 경주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후 현재 8000여 평을 사적지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아직 전체에 대한 발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할머니들은 “시내버스를 타려면 선덕여고 앞까지 가야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택시를 타거나 누가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외출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며 “여기가 말이 시내지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했다. 선덕경로당에서 시내버스를 타려면 할머니들이 불편한 몸으로 족히 300m는 걸어가야만 했다. 또 “경로당이 작고 눈에 띄지도 않아 손님들이 우리 경로당을 오려면 한참을 헤매야 할 정도”라며 “경주시에서 골목입구에 조그마한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덕경로당 할머니들의 가장 큰 애로도 다른 경로당과 마찬가지로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이득조(78·인물사진) 부회장은 “경로당에 나오시는 할머니들 대부분 나이가 많고 몸도 불편한 분들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라도 경로당에 와서 청소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은 할머니들이 모일 수 있고 분위기도 좋아 질 것 같다”고 했다. 글=이성주 편집국장 / 사진=이필혁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 이필혁 기자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동천동 소금강경로당은 2013년 시가 주택을 매입해 노유자시설로 리모델링해 경로당으로 꾸민 곳이다. 이곳 이름이 소금강인 이유는 동천동에 위치한 소금강산이 있어서다. 소금강은 동천동과 용강동, 천북면 경계에 있는 높이 170여 미터에 이르는 나지막한 산을 지칭한다. 소금강산은 금산, 금강산 등으로 불리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6촌 중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里村)에서의 금산이 ‘지금의 금강산으로 백률사 북쪽에 있는 산이다’라는 기록과 ‘6촌 중 하나인 명활산 고야 촌장인 호진(虎珍)이 처음에 금강산으로 내려왔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금강산은 신라 수도의 중심지에서 아주 가까우므로 삼국사기 이외에도 많은 기록이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 이후 강원도의 금강산이 알려지며 경주의 금강산은 소금강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설이 있다. 소금강이 동천동을 비롯해 용강동에 인접해‘소금강경로당’ 명이 용강동에도 쓰이고 있다. 경주풍물지리지에는 신라 시대부터 나라의 큰 일이 생길 때 소금강산에서 회의를 열면 반드시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탈해왕릉이 있고 서쪽 기슭에는 굴불사터 사면석불이 있다. 산허리에는 백률사가 있는데 신라 때에는 북악이라 해 신성시하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놀이터가 되어 주는 소금강경로당 동천동에는 많은 경로당이 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경로당이 멀리 있어 걸어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 소금강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도 이곳이 생기기 전에는 경로당에 갈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경로당 대신 가까운 공터나 놀이터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제는 이곳 경로당이 있어 좋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나이가 들면 걷기가 힘들어. 특히 꼬부라져 가까운 거리도 우리에겐 힘이 들어. 이렇게 경로당이 생기니 친구들도 자주 만날 수 있고 즐겁게 여가를 보낼 수 있어 정말 좋아” 이곳 소금강경로당의 위치는 좋지 않다. 경로당이 외부에선 잘 보이지 않는 곳이 있어서다. 주민이 거주하던 주택을 시가 매입해 경로당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라 말한다. 소금강경로당 김헌자(80·인물사진) 회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우리에겐 조용해 아주 좋다. 우리만의 공간이니까”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필요해 소금강 경로당은 어르신 60여 명이 등록돼 평균 30여 명 정도가 이용하는 그리 작지 않은 경로당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할아버지는 한명도 없이 오로지 할머니들만 있는 금남(?) 경로당이 되고 말았다. 이곳 경로당의 최대 화두는 단연 할아버지 관련 이야기다. “이곳 경로당이 음기가 강해 할배들이 없어. 영감 하나씩 데려와. 다른 거는 필요 없어” 인근 경로당을 다녀보면 공통적으로 할아버지의 비중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장수하는 할머니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경제적 이유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들은 나이가 들어 경로당을 이용하기보다 시에서 시행하는 일자리 사업이나 일용직 등에 나가 경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상대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우리도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 #교육프로그램이 많아지길 처음 경로당이 생겼을 때 많은 곳에서 경로당을 찾아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해주었다. 하지만 최근에 교육프로그램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곳 경로당은 심심해. 최근에는 교육프로그램이 거의 없어. 할머니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프로그램도 많아졌으면 좋겠어” 글·사진=이필혁 기자 진행=엄태권 대리/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갓뒤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갓뒤, 유림, 고성을 합해 천북면 황성리로 불리우다 1955년 시제 실시에 의해 법정동인 황성동으로 고쳐 불렀다. 이후 1973년 법정동인 황성동과 용강동을 묶어 행정동인 용황동으로 운영하다 1996년 동천동 일부를 황성동에 편입했다. 1998년에 행정동인 용황동(용강동, 황성동)을 분리해 각각 행정동인 용강동과 황성동으로 운영했다.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황성동 갓뒤마을은 말림갓인 고성숲의 뒤에 있는 마을로, 약 700년 전부터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고성숲 뒤에 숲을 지(枝)로, 뒤를 북쪽으로 보고‘지북(枝北)’이라고도 불렀다. 갓뒤마을은 수령 100여 년의 측백나무가 있어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한고작 앞에서 앞각단과 뒷각단의 두 패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했다. 앞각단은 시내쪽 성건·북천·성동·동천 주민들이고, 뒷각단은 현곡·천북· 쪽 주민들로 나원·청령·신당·신리·승삼·광중 사람들이었다. 줄다리기는 3, 4일 내지 일주일간 계속됐다고 전해진다. 잘 사는 집에서는 국을 끓이고 술을 빚고, 이 때 동제를 지냈다. 1998년 이후부터는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황성(갓뒤)경로당은 ? 5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있는 황성(갓뒤)경로당은 2001년에 준공되었다. 회장, 총무, 운영위원회의 임원들이 구성돼 살림을 맡아오고 있으며, 모든 일들은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고 한다. 또한 경로당은 현재 보건소에서 나오는 마사지 프로그램과 건강검진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연회비 1만원으로 1년에 2회 정도 회식과 야유회를 다니면서 지내고 있다. 경로당 어르신들에 따르면 경로당이라는 이름이 생기기전부터 어르신들은 자주 모이며 마을의 행사가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헤쳐 나왔다고 했다. 이상택(80·인물사진) 회장은 “우리 경로당은 오래된 역사와 풍악이 자랑”이라며 “경로당이란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치자면 100년은 더 된 역사를 자랑한다”고 했다. 예로부터 이곳 갓뒤마을은 풍악과 풍물놀이가 유명해 아직도 경로당 어르신들은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 회장은 “갓뒤마을 풍물과 풍악은 유명했고, 어렸을 적부터 마을 풍물단과 풍악을 보며 자랐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 지금까지 풍물과 풍악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며 “우리가 솜씨가 제법 있어 여기저기 굵직한 행사에는 아직도 초청받고 있다”며 “20년쯤 전에는 전국대회에서 풍물, 농악으로 2등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황성(갓뒤)경로당은 풍물과 농악을 다시 살려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불편사항은 황성(갓뒤)마을 경로당은 남자 어르신과 여자 어르신의 두 개의 방과 하나의 거실, 2층엔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곳 경로당의 문제는 바로 청소와 2층의 운동기구들이라고 했다. 2층엔 운동기구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이 어느정도의 근력을 요구하는 기구들이라 어르신들의 건강상태상 이용할 만한 운동기구들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은 “운동기구는 종류별로 많이 있지만, 정작 우리들이 할 만한 쉬운 운동기구가 없다”며 “그리고 전기를 사용하는 것들도 많아서 잘 쓰지 않게 된다. 간단히 할 수 있으며 건강을 지키는 운동기구가 몇 가지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방이 나뉘어져 있지만 청소는 한 번에 해야한다. 우리 경로당 사람들이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 청소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며 “일주일에 한 두 번 이라도 청소를 해주는 사람들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이재욱 기자, 진행=엄태권 대리/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능남경로당은? 선도9통에 위치한 능남경로당은 노하와 능남 두 개의 마을에서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경로당이다. 노하마을은 장산의 북동쪽 마을로 주민들이 노인을 공경한다고 해 노하(老賀)라 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소티고개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해 노하(路下)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능남마을은 무열왕릉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넘이라고도 한다. 능남경로당은 마을어르신들이 행사나 잔치를 위해 새마을회관을 이용하다가 지난 1995년도에 도로를 가운데 두고 지어졌다. 현재는 50여 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1년 회비 1만원에 1~2회 정도 소풍이나 외식을 다니며 이용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건강공단에서 나오는 요가프로그램을 즐기고, 월요일과 금요일은 경로당 어르신들이 자체적으로 나와서 요가와 건강 체조를 즐기고, 그 밖에 간단히 방에서 즐기는 놀이들로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능남경로당의 자랑은 역시나 ‘단합’이라고 했다. 어느 경로당이든 어르신들은 단합이 잘됐다. 하지만 이 능남경로당의 단합은 조금 특별하다. 두 마을의 어르신들이 이용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의견충돌이 잦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동환(67) 통장은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분들이라 이름만 노하, 능남마을 일뿐 한 마을이나 마찬가지이다. 의견이 엇갈릴 것도 없이 다들 협조적으로 잘지내신다”고 했다. #불편합니다. 능남경로당은 노하와 능남 두 마을의 공동 경로당이지만 실제로는 노하마을 어르신들은 이용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한다. 문제는 건천에서 효현교를 거쳐 태경로를 이용하는 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다보니 어르신들의 걸음속도로는 차들을 피해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 길은 신호등과 방지턱, 과속단속카메라가 없는 도로가 되다보니 화물트럭이나 일반 자가용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막 달린다는 것. 특히나 해가지고 어두워지면서 차들은 더욱 위험하게 달린다. 때문에 사고가 유독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현장에는 사고위험 표지판도 없었고, 어르신들의 안전에 관련된 안전장치들이 부족했다. 어르신들은 “경로당 앞 이 도로가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사망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 걸음걸이로 저 차들을 어떻게 피해 다닐 수 있냐”며 “신호등도 무열왕릉 주차장 앞에나 있지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차들이 너무 많다. 노하마을 사람들은 도로 건너기가 겁이 나서 경로당에 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며 입을 모았다. 또 다른 불편한 점은 경로당에서 나와 무열왕릉까지는 인도가 있지만, 무열왕릉에서부터 시내 초입(터미널)까지는 인도가 없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서천교를 건너 마을까지는 왕복2차선 도로다. 차들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선 침범도 서슴치 않는다. 어르신들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한 어르신은 “차가없으면 다니기가 힘든 곳이다. 자전거는 마을에서만 타고, 시내까지는 갈 수가 없다”며 “서천교 까지만이라도 인도를 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불편사항은 더 있었다. 경로당 옆 식당입구에 불법주차 된 차들로 인해 어르신들이 차를 피해 차도로 침범해서 다니는 점과, 경로당에 운동기구가 필요하다는 것. 어르신들은 “마사지 의자도 예전에 지원받은 것이 있지만 고장이 났다. 시에 수리의뢰를 했지만 수리도 안되고, 처치곤란이 되어버렸다”며 “경로당에 있는 기구들도 경로당이 생긴 당시에 지원받은 것들이라 낡고 오래됐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운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운동기구는 필요하다”라고 했다. 또한 선도동주민센터의 이전으로 민원업무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지만 갈 수 있고, 주민센터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도착해서도 업무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며 “우리마을은 교통에 관련된 부분들이 너무 열악하다”고 했다. 글·사진=이재욱 기자 진행=엄태권 대리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성건동 서천경로당은? 경주시 성건동 동국대 경주캠퍼스 일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주거단지가 조성되고 1980년대 초반 대학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는 업종들이 많이 생겨 주거환경이 급격하게 변모한 지역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주민들의 주거환경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서천경로당의 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건동은 주거인구와 넓은 면적에 비해 등록된 경로당은 서천경로당을 비롯해 9개소에 불과하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네거리 인근,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많이 활동하는 곳에 위치한 서천경로당은 지난 2002년에 문을 열었다. 주변에 식당, 술집 등이 즐비한 서천경로당에는 현재 할아버지 15명, 할머니 40여 명이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여가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현재 서천경로당은 서종두(남·86) 회장과 김계선(여·82) 부회장, 이만화(여·81) 총무를 중심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매년 1월 정기총회를 열어 한해의 경로당 운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1년에 2~3차례 야유회를 가지면서 회원들 간에 친목을 다지고 있다. 현재 서천경로당의 최고 어르신은 이귀순(93·인물사진) 할머니. 서천경로당이 다른 경로당과 달리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2층에 할아버지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장소에 10여 명이 바둑을 둘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눈이 띈다. 이종두 회장은 “우리 경로당에는 남자 회원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바둑판을 갖다 놓았는데 잘 두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보내는 데는 그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서천경로당은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일부 경로당에서 많이 진행하고 있는 건강프로그램 등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는 경주신문에서 하는 행사가 전부였다고 반겼다. 한 할머니는 “황남동에 있는 한 경로당에는 여러 프로그램을 하는 등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우리도 같이 하고 싶어 말을 했더니 다른 지역에 있는 회원들은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운했다”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몇 번이라도 건강프로그램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편합니다 서천경로당은 좁은 공간 때문에 어르신들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주위의 환경이 여가시간을 보내는데 많은 불편이 있어 보였다. 경로당 주변에 술집과 식당 등이 많고, 비교적 구석진 곳에 있는 경로당 앞에는 각종 오물이 쌓여 있어 어르신들이 항상 청소를 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김계선 부회장은 “도로변과 경로당 입구가 바로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버린 쓰레기와 각종 오물 때문에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주변에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장소가 많아 이해는 하지만 공중도덕을 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어르신들은 또 주변에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종두 회장은 “회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을 자주하는 것인데 특히 수영 등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까이에 국민체육센터 수영장이 있지만 가기에는 너무 멀뿐만 아니라 교통이 불편하고 또 시간이 맞지 않아 그림에 떡이다. 성건동주민센터 체육시설도 거리가 멀어 연세가 높은 회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경로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청소문제였다. 고령자가 많은 서천경로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소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한 할머니는 “지금 대부분 경로당에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청소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주일에 한번 정도는 경로당에서 청소봉사를 하는 방법을 강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이성주 편집국장·사진=엄태권 대리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 엄태권 대리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고 있는 것! 지난 17일 오후 경주신문이 소금강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옷을 곱게 차려입고 기자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입구까지 들렸다. 소금강 경로당은 지금까지 찾은 경로당 중 가장 젊게 사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소금강 경로당 김두란 회장은<인물사진> 경로당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회장에 뽑혀 열심히 활동 중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경로당이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모이고 집에서 모이고 했는데, 지난해 경로당이 생기면서 모이기도 쉽고, 회원 모두가 너무 즐거워해 회장으로서 경로당을 운영하는데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소금강 경로당 어르신들은 당신들을 ‘우리는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다’고 했다. 그 말처럼 경로당에서 가장 고령에 속하신 김순희(87), 이금녀(86) 할머니 두 분도 젊어 보인다. 옷을 너무 곱고 젊게 입어서 연세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어르신들은 “우리 회원들 옷 입고 나온 거 보세요, 애들 같지요? 하하하하”라며 “긍정적인 생각에 늙어갈 시간도 없다”고 했다. 경로당 자랑을 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어르신들은 “우리 경로당은 단합, 단결이 잘되고, 무엇보다 경로당을 아끼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 자랑이다. 또 같은 달의 생일인 사람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외식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는 것이 자랑이다”고 했다. 경로당이 생기기 전 어르신들은 모일 곳이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컨테이너에 잠시 모였다가 헤어지고, 가정집에 잠시 모였다가 헤어지고 그래서인지 경로당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어르신들은 “경로당이 있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소금강 경로당은 지난해 4월에 생겨 이제 갓 1년이 조금 넘은 경로당이지만 여느 경로당과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의 불편사항들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이 바로 ‘청소’였다. 지금까지 다녀본 대부분의 경로당들도 동일한 문제를 제시했었던 것처럼 소금강 경로당도 마찬가지였다. 소금강 경로당 어르신들이 젊게 사셔서 기자가 못 느꼈을 뿐, 소금강 경로당의 어르신들은 70-80대 분들이시다. 소금강 경로당은 60평이 넘는 가정집을 경로당으로 변경한 것이라 어르신들이 청소를 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5천원씩 거두어 청소하는 사람을 두었지만, 경로당이 넓어서 그런지 청소하는 사람들도 일을 오래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직접 하기에도 넓은 경로당이라 조금 벅차다.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으로 꼽은 것이 살림살이나 운동기구는 없는데 경로당이 커서 너무 휑하다는 것. 생긴지 1년이 조금 더 된 경로당이다 보니 운동기구 하나 없고, 부실한 가전제품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나이가 있다 보니 거창한 운동기구 보다는 건강프로그램이나 요가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일주일에 한 번 보건소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을 빼면, 경로당에서 윷놀이와 고스톱밖에는 즐길 문화가 없다. 프로그램이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경로당 입구 주변에 쓰레기와 벌레가 많다는 것. 소금강 경로당 입구 좌측의 담을 경계로 치워지지 않고 쌓여있는 쓰레기들로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았다. 쓰레기들이 치워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벌레가 많이 꼬인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글·사진=이재욱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엄태권 대리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천북면 동산리는?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동산리는 본래 경주군 천북면의 지역으로, 동산 밑이 되므로 동산, 동산동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덮밑, 중마을, 새터를 병합해 동산리로 했다. 주 농작물은 벼와 부추가 있다. 통·폐합 이전의 ‘동산’은 최신익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했다는데, 당시 마을 가운데로 개울물이 흘러 늪을 이루고 있었다. 약 280년 전 유한야란 이가 늪 아래쪽에 다시 마을을 개척해 ‘들마을’이라 부르다가, 1914년경부터 ‘동산’, ‘동산동’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동산마을은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동산마을 위쪽에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이다. 예부터 제물은 마을유지비로 마련해 제관은 이장·새마을지도자가 된다. 이 동제는 동산 1리, 2리 주민 모두가 함께 지낸다. ‘새터’는 조선 중기에 대홍수로 말미암아 마을이 폐허가 됐는데, 조선 현종 때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새로 마을을 개척해 ‘새터’ 또는 ‘신기’, ‘새각단’이라 하였다한다. 이 마을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이 되면 동제를 지내는데 마찬가지로 동산1리, 2리가 함께 지낸다. 마지막으로 ‘중마을’은 동산에서 조금 떨어져 새로 생긴 마을이다. #대부분이 80대 이상인 건강 경로당 “오늘 신문사에서 기자님들 온다고 다들 옷 갈아입고 모였습니다. 하하하” 지난 11일 방문한 동산2리경로당은 할머니들의 웃음으로 가득찼다.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들. 풍성한 검은 머리와 힘 있는 웃음소리로 나이를 가늠해봤지만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대부분 80이 넘으신 고령이었던 것. 그야말로 건강경로당이다. 동산2리경로당 손태순(75·인물사진) 회장은 “보건소에서도 건강프로그램을 많이 나와 주고, 간호과 대학생들이 실습으로 마을을 찾아 건강을 살펴줘서 건강하다”며 “식사를 제때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고 했다. 경로당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은 ‘금산댁’이라 불리는 김정님(94) 할머니로 슬하에 6형제를 둔 경로당에서 유명한 ‘다산의 상징’ 이라고 한다. 동산2리 경로당은 난방비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운영비는 경로당을 이용하는 회원들이 조금씩 모으거나, 할머니들의 자식들이 찾아와 조금씩 후원한 후원비로 운영이 된다. 이경화(74·인물사진) 총무는 “경로당을 운영하는 최소의 비용은 비축이 되어 있고, 무엇보다 우리 경로당은 단합이 잘되기 때문에 경로당 운영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고 했다. 동산2리경로당은 규모에 비해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다. 평균적으로 모이는 인원만 30~40여 명, 많게는 50~60여 명까지도 모인다고 했다. 인원이 많아서 경로당을 청소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고 했다. 손 회장은 “처음엔 경로당을 청소하는 사람에게 월급을 줬는데, 그러다보니 서로 청소를 하려해서 분란이 있었다. 그 뒤로는 청소를 닥치는 대로 하고 있다. 인원이 많다보니 한 사람이 한 번씩만 움직여도 금방 된다”고 했다. #불편한 점? 동산리 경로당은 그 흔한 운동기구가 하나도 없었다. 손 회장은 “예전에 모 시의원이 건강기구를 준다고 했지만 아직 깜깜무소식이다(웃음)”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운동기구정도는 경로당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경로당을 방문한 서기태 천북면장은 “어르신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지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적극지원 하겠다”고 했다. 경로당의 또 다른 불편사항은 바로 화장실. 모이는 인원은 많은데 화장실은 하나뿐이어서 사용에 많은 불편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 총무는 “아무리 적게 모여도 30여 명은 모이는 경로당인데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화장실 한 번 이용하려면 세월아 네월아다”라며 “화장실을 하나 더 늘려서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들의 불편사항은 바로 자동차였다. 동산리를 통해 다니는 차량들이 많고, 천북공단에서 넘어오는 대형트럭들이 많다보니 걸음이 느린 할머니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글·사진=이재욱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이만재 북부지사장 엄태권 대리 /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동천경로당은? 동천동은 구획정리로 개발된 동북쪽(현 삼성아파트와 70번 버스노선 도로)과 과거 주민들이 모여 살았던 서쪽(북천강변 북편과 우주로얄아파트 일대)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두지역의 생활권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천경로당은 경주신문에서 10여 년 전 어르신들의 일거리를 나누어주기 위해 방문했던 조그마한 경로당의 모습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시작한 동천경로당은 그동안 많은 어르신들에 비해 공간이 좁아 큰 불편을 겪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최양식 시장이 연두순시를 하면서 지역 어르신들의 건의로 경로당과 인접해 있는 부지를 매입한 후 면적을 넓혔으며 2013년 11월 건물을 수리하고 할머니들이 사용하는 건물을 새로 지어 지금은 어르신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현재 동천경로당 회원은 할아버지 15명, 할머니 50여 명이다. 여느 경로당과 마찬가지로 경로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분들은 할머니들이다. 동천경로당은 김태식(76) 노인회장과 김순란 부회장을 중심으로 매년 3월 15일과 경로당 창립일인 9월 15일에도 총회를 갖고 경로당 운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건강한 삶과 즐거움은 우리 스스로 찾는다 지난 10일 오후 경주신문이 동천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건강 체조강사의 리더로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경로당 울타리 밖까지 울려 퍼졌다. 매주 월, 목요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지사에서 준비한 건강 체조프로그램을 신청해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한다. 동천경로당 김순란 부회장은<인물사진> “우리 건강은 우리가 지켜야지. 바깥양반들은 건강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 않고 있어. 그래도 우리 경로당이 회원들이 많이 모이고 단결이 잘되어서 다른 곳보다 혜택을 더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천경로당 어르신들은 사비를 털어 1년에 네 차례 단합을 위해 야유회도 갖는데 봄, 가을에는 관광을, 여름과 겨울철에는 간단하게 갖는다고 한다. 지금 동천경로당에는 지역에서 경로잔치를 하더라도 어르신들이 직접 찬조를 할 정도로 단합이 잘된다고 한다. 동천경로당 할머니들은 아직도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기자에게 우리들에게 맞는 일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김순란 부회장은 “여성회원들 중에는 아직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 소일거리라도 하고 싶지만 마땅한 것이 없다. 적당히 일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작은 수입이라도 생기는 데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불편합니다 동천동 지역 중에 구 지역으로 구분되는 동천경로당 주변에는 골목이 복잡하고 소방도로가 마무리되지 않은 곳이 많다. 김태식 노인회장<인물사진>은 “우리 지역에는 소방도로 계획만 있고 아직 개설되지 않은 곳이 많아 골목마다 차가 넘쳐난다. 예를 들면 우주로얄아파트 뒤편에는 소방도로가 계획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땅 주인이 가로막아 놓아 다니는데도 불편한 곳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경주교~북천철교~알천교를 잇는 알천북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교통흐름은 원활하지만 어르신들이 다니시는 데에는 적잖은 불편이 있다고 했다. 김태식 회장은 “경주교와 북천철교 밑으로 인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경사가 너무 심해 노인들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많이 불편하다”면서 “특히 겨울에 눈이 오면 길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날까 걱정된다. 철길 때문에 경사를 많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사를 조금만 완만하게 처리하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글=이성주 편집국장/사진=이필혁 기자 진행=이성주 편집국장·엄태권 대리 이원조 전문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북천마을은 동천동 북천교 북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경로당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북천마을경로당은 동천동주민센터로 사용했던 시유지를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매입해 창고로 사용하다가 경로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2005년 경로당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환 노인회장은 북천마을이 예부터 빈촌이었고 북천마을경로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형편이 어려워 경로당 자체의 활성화도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전까지는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이 몇 분 안 된다고 했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행복교실을 운영하며,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모두와 함께 머리를 모았다. 경로당 운영비도 잘 아껴서 사용한 덕에 모범경로당이 됐다”며 “우리 경로당은 단합 말고는 내세울게 없어. 누구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낸 사람들만 남아서 단합이 최고로 잘되는 경로당이지”라고 입을 모았다. 이렇듯 단합이 잘되지만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경로당을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첫째로 넉넉하지 못한 경로당 살림. 박정환 노인회장은 “우리 경로당은 1년 2~3회 정도 회원들끼리 회비를 걷어 외식을 한 번씩 하거나, 소풍을 갈 때가 있다. 하지만 다들 형편이 고만고만 하다보니 그것조차 부담이 돼서 경로당을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음 같아선 경로당 운영비용으로 부담을 안주고 싶지만, 그렇지도 못한 형편이니 안타까울 뿐이다”고 했다. 둘째로 경로당 청소와 시설관리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다고 어르신들이 입을 모았다. 북천마을 경로당이 넓고 공간이 많아서 청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어르신들은 “당번제로 경로당 청소를 하고 있지만, 여기가 넓고 방도 많고, 한번 쓸고 닦기가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청소하다가 기운 다빠진다. 평소에는 경로당에 잘나오다가 자기 당번차례부터 경로당에 발길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몇 년 전에는 일자리사업 정책으로 경로당을 청소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책이 바뀌면서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같은 독거노인들은 집보다 경로당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집으로 사람을 2명씩 보내지 말고 경로당으로 1명, 집으로 1명 보내주면 얼마나 좋냐”라고 했다. 처음 경로당을 지어 이용할 때만 해도 제법 많은 어르신들이 있었지만, 한 분, 두 분 발걸음을 끊으면서 현재는 많이 모여도 20~30여명 정도라고 한다. 어르신들은 청소문제만 해결되면 경로당을 찾는 부담이 많이 줄어들어 발길을 끊었던 사람들도 다시 경로당을 찾을거라 했다.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청소하는 것이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경로당은 건강프로그램도 자주하고, 안마도 해주러오는 사람도 있고,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감사한 분들이 있다. 항상 우리 경로당을 찾아주는 분들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글=이재욱 기자 / 사진=엄태권 대리 /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엄태권 대리 / 이원조 전문강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송선리는 경주군 서면 지역에 편입돼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송전리, 선동리, 사동리, 창리, 우중리를 통합해 송전리와 선동의 머릿 글자를 딴 선동리라 정했다. 이후 1973년 건천읍에 편입됐으며 송전과 선동, 달래창, 선성을 송선1리로 절골과 우중골을 송선2리로 정했다. 송선리에는 마애불상군이 유명하다. 산89번지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돼있다. 통일신라 이전의 작품으로 높이가 약 12m의 암석이 ‘ㄷ’자 형으로 솟아 거대한 자연석실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 바위의 여래상을 중심으로 동쪽 바위에는 보살상, 남쪽 바위에는 보살상과 명문이 조각돼 있으며 삼존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송선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처음 이곳 경로당을 찾았을 때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들로 가득할 줄 알았던 경로당에는 한 두 분의 어르신만이 경로당을 지키고 있었다. 이기축 이장<인물사진>은 “날이 좋아 어르신들이 다들 일하러 갔다”며 이곳 어르신들은 할 일이 많아 바쁘다고 귀띔했다.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건천의 특산물 중 하나인 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도 많고 논농사 등도 많아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거리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이 이장은 “비가 오는 날에 다시오면 경로당에 어르신들이 많을 겁니다. 아니면 매월 1일은 온 동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다 함께 식사하고 회의하는 날이니 그때 오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이장의 말에 따라 다시 찾은 지난 1일 송선1리 경로당은 거하게 점심을 마친 온 동네 어르신들로 작은 경로당은 엉덩이 하나 붙일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마무리 설거지까지 나눠서 하고 있었다. 할아버님들은 다른 방 한쪽에서 여유롭게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맡아야만 하는 요즘 남자들로선 여간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송선리 어르신들은 옹기종기 둘러 앉아 동네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 동네는 장수촌이야! 내가 91세인데 아직 위에 형이랑 누나가 있으니 말이야. 송선리는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 그런지 다들 오래 사는 것 같아” 어느 할아버지의 말처럼 송선리는 예로부터 물이 맑은 곳이었다. 이곳의 물은 상수원으로 건천 지역민의 식수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단석산 밑자락에 자리해 공기 또한 맑다. “예로부터 선녀가 사는 동네라고 불렀어. 그래서 지금도 선녀들이 많이 있다구”라는 어느 할머니의 말에 “선녀들 다 죽었구먼”이라 받아치는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경로당은 한바탕 웃음이 넘쳐났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경로당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자 어느새 환하던 웃음은 원망과 분노로 변하고 있었다. 누가 이처럼 순박한 어르신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을까? “똥 공장은 막았지만 가슴 속 억울함은 뚫리지 않아” 2011년 송선리 어르신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선동리 주택 10m 앞에 분뇨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당시 이장이라는 사람이 신재생에너지 공장이 들어설 거라며 보상해준다고 말해 그대로 믿었지. 똥 공장인 줄 알았으면 누가 허락했겠어”라고 말했다. 마을 앞에 들어설 분뇨처리공장을 막기 위해 어르신들이 나서야만 했다. 처음 건천 주민들의 도움으로 비용을 마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송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송선리 주민들은 조상들이 마련해 놓은 마을소유의 땅을 팔아 소송비용을 마련했다. “그 땅은 대대로 내려온 마을 공동의 땅이었지. 그 땅에서 생산된 작물을 팔아 온 동네 주민들이 다 함께 일 년에 한 번씩 여행 다녀오고 했어. 하지만 소송비용이 부족해 두 필지 중 하나를 매각해야만 했지. 똥 공장이 들어와 마을을 망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어” 어르신들은 이제 일 년에 한 번 가던 여행을 자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을을 지켰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쓴웃음을 보였다. 송선리 분뇨공장을 둘러싸고 지루하게 이어온 소송은 결국 대법원이 송선리 주민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 된듯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이 서려 있었다. “상수원이 흐르는 곳에 똥 공장을 설치하려는 업자는 물론 그것을 허락해준 시도 명백한 잘못이 있다. 결국 소송에서 이겨 마을을 지켜냈지만 남은 건 소송에 들어간 빚뿐이다” “아무도 죄송하다 사죄하지 않아” 송선리 어르신들의 분노에는 단지 소송비용 등의 금전적 손해가 아니다. 시 차원에서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실수는 할 수 있다. 실수했다면 진심 어린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와 시장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송선리에 폐기물 공장을 허가내 주었다. 똥 공장에 이어 폐기물 공장까지 시가 송선리 주민을 무시하고 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던 기자가 그들을 대신해 ‘죄송합니다’라는 건넸다. 아무런 관련없는 이의 사과였지만 그토록 화를 토해내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금세 밝은 미소가 번졌다. 죽은 이들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송선리 주민들에게 그토록 필요한 ‘진심 어린 사죄’는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씁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글=이필혁 기자 / 사진=엄태권 대리 /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이종백 서부지사장, 엄태권 대리 / 이원조 전문강사 / 자료참조=경주풍물지리지(김기문 편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황남동 분란경로당은? 경주공고 앞 골목에 위치한 황남동 분란경로당은 주위에 한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름만큼 사연이 있는 경로당이다. 현재 30여 명의 할머니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며 소통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분란경로당은 한눈에 여성스러운 외벽 치장에다 내부도 깨끗하게 정리된 ‘여성전용 경로당’ ‘금남의 공간’으로 보였다. 분란경로당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다른 경로당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임분란 여사 공덕비’다. 이 비석은 1978년 1월 5일 (사)대한노인회 경북도지부 경주시 중앙지회(회장 조경규)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당부지와 건물을 내놓은 임분란 여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경로당 이름도 임분란 여사의 이름을 따 ‘분란경로당’으로 지었다. 고 임분란 여사는 과거 지역에서 기생을 하면서 어렵게 마련한 집을 지역 어르신들에게 선뜻 내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건물이 오래되어 할머니들이 불편을 겪자 최근 경주시에서 건물을 신축했다. 분란경로당에는 다른 경로당에서 찾아보기 드문 아름다운 벽화가 눈에 띤다. 지역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나서 할머니들만의 공간을 위해 벽화를 그려 주었다고 한다. 지난해 모범경로당으로 지정되었다는 분란경로당은 경주시에서 실시한 건강백세 프로그램이나 기관에서 진행한 강수강좌 프로그램 등 할머니들의 건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할머니들의 검소한 생활이 경로당 곳곳에 고스란히 배여 있었다. 최기연(87·인물사진) 회장은 “회원들 모두 여성들이어서 깨끗하고 검소하게 잘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 부산광역시에서 우리 경로당이 다른 경로당과 다르게 잘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견학을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스스로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 어르신들 분란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그러다보니 금연은 기본, 경로당 안팎이 쾌적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할머니들의 수다도 넘쳐난다. 분란경로당은 아흔을 바라보는 어르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기연 회장을 중심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최옥주(80) 총무는 “회장님이 워낙 적극적이고 부지런하셔서 우리 경로당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면서 “회원들에게 우리 회장님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분란경로당 할머니들은 경로당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로당에서 시끄러우면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최기연 회장은 “노래방기기가 있는 경로당도 많이 있는데 우리는 주택지 중심에 있어 시끄러우면 주민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분란경로당 할머니들은 경로당에 소소하게 들어가는 비용은 월 회비를 내어 충당하고 있다. 물론 연료비 등 운영비는 기관에서 지원되지만 월 회비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단합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 회장의 주도하에 4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 야유회 회식을 즐기면서 단합하는 멋쟁이들이다. 동분서주하는 최 회장의 역할로 인해 기관이나 주위에서도 분란경로당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이 처럼 할머니들의 긍정마인드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경로당에서 여가를 보내시는 어르신들 모두 할머니들이고 또한 연로하셔서 힘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문이 고장 나거나 전기를 손볼 때 등 힘든 일이 닥칠 때 간혹 남자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분란경로당 어르신들은 모두 ‘꽃할매’다. 경로당이란 삶의 공간에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고, 마음을 모으면서 자매들처럼 지내는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단구리는? 단구리는 본래 안강현의 지역으로, 붉은더기 밑이 되므로 붉은더기, 붉은디기, 단구, 달성이라 부르며, 혹은 다산리의 하단구 위쪽이 된다 하여 상단구라고도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의하여 천서리(川西里) 일부 지역을 병합해 강동면 단구리로 했다. 이곳은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마을 중앙에 벽계저수지가 위치해 있고, 마을 남쪽으로 벽계천이 유입해 들어온다.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단구리는 12마을로 이뤄져있다. 12마을은 자연을 배경으로 붉은 등성이와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했는데, 압실, 벽계, 갈미, 새각단, 달성, 이문안, 손골, 내서, 삼괴정, 말골, 오정리, 초감 등이다. 현재 단구리는 140세대 350-400 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역사의 흔적 단구서원과 단구리절터(추정) 혜숙사지 단구리에는 단구서원이 있다. 단구서원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서원으로 조선시대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택이다. 단구서원은 이세기 선생을 주벽으로 문효공 이천선생, 송와 이종윤을 향사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선 1962년에 송와 이종윤을 재향하는 모현서당이었다가 흥선 대원군때 서원 훼철령으로 1868년에 훼철돼 1983년에 중창했다. 매년 3월 초경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단구절터는 강동면 단구리 64번지 일원의 대명공원묘원 내 9지구 인근의 가건물과 그 앞쪽으로 계곡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경작지 일대가 단구리절터이다. 사명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혜숙사로 전한다고 한다. 혜숙사는 신라의 신승 혜숙이 주석했던 절이다. 삼국유사와 고려사, 고려사절요 충렬왕 26년의 기록 등에는 ‘혜숙사’라는 절이 ‘안강현의 북쪽’이라는 단편적인 위치의 언급만 있어 단구리절터를 혜숙사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의 자랑은 단합 !! 단구2리는 근래에 보기드문 집성촌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월성 이씨로 구성돼있다. 그래서 마을의 자랑은 바로 ‘단합’이 잘된다는 것이다. 이태우(59) 이장은 “마을간 거리가 멀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한 번을 모이더라도 단합이 잘 된다”며 “더욱이 월성 이씨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주민들 모두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는 면민체육대회에서 우승도 했다”고 자랑했다. 특히 단구2리 경로당을 짓고 나서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아 경로당에 필요한 비품등을 직접 준비했다. 단구2리 경로당 입구에는 특이하게도 족자에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기록해 놨다. 어르신들은 “마을 주민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가족같이 지내다 보니 소통과 단합이 잘되고 자발적으로 마을일에 힘을 모은다”며 “옛부터 단구마을은 아름다운 경관이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가꾸겠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간 거리가 멀어 이동 불편, 버스 승강장 없어 불편, 돼지축사의 악취문제 심각 단구리 어르신들의 불편사항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마을간의 거리가 멀고, 도로를 가운데로 두고 1리와 2리 두 마을로 구분되어져 한번 모이기가 힘들다는 것. 거기다 버스 승강장이 없어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기위해 인도에서 그냥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시에서는 승강장을 위해 지원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승강장이 들어설 부지가 없다는 것. 또한 어르신들의 불편사항으로는 인근 돈사의 악취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인근 돈사에 돼지가 2000마리 정도 있다. 그 악취가 심각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마을에 땅을 보러 왔다가도 그냥 간다. 아침에 집밖을 나서면 악취가 코를 훅 찌른다”고 했다.
율동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초마을은 신라 시대 경주에서 남으로 길을 따라 나오면 풀이 있는 곳이 처음으로 보인다 하여 불려진 곳이다.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마을이 산의 베개와 같은 모양이라 하여 ‘뒷침이마을’로 불리우다가, 조선 초기부터 ‘뒷초(草)’로 고쳐 불렀으며, 일제 때 ‘도초’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두 그루의 포구나무로, 제관은 복(服)을 입지 않은 마을사람 중에서 정한다. 제물은 거두어서 마련한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톨게이트를 지나 100미터 즈음에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이 곳 도초마을은 복합영농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토마토와 벼가 주 작물이라고 한다. 도초마을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거닐다 보면 시원하게 트인 전경과 형산강 물줄기가 나온다. 최근 이곳은 시원한 경치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은 100세대(250-300여명)가 살고있으며, 마을 주민들간의 단합이 자랑이다. 노인회장의 연락 한 통이면 언제든지 모이고 마을잔치나 행사가 있으면 참여도가 높다. #가장 시급한 것은 마을을 오가는 교통문제, 작년 10월 24일부터 버스노선이 너무 길어져 도초마을 어르신들의 가장 큰 민원사항은 바로 마을로 들어올 때의 교통문제라고 했다.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4일부터 버스의 노선이 바뀌어 시내에서 마을까지 들어오는 시간이 대략 한 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최병조(83) 노인회장<인물사진>은 “마을입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출입구 근처에 있다 보니 버스가 유턴 하기가 어려워져 노선이 바뀌었다. 바뀐 노선이 너무나 멀어져 노인들이 시내 다녀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도초마을의 입구는 경주톨게이트의 하이패스차량의 출입구라인과 일직선으로, 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니기 때문에 버스가 유턴을 해서 마을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경주시에 민원을 많이 제기했다고 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도초마을의 입구는 톨게이트 출입구와 인접해 경주로 들어오는 차량의 교통정체를 막기 위해 신호등을 달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에 따라 버스노선은 180도로 바뀌었다. 우선순번이던 도초마을이 노선의 마지막 종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어르신은 “노인대학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항상 걱정한다. 바뀐 노선으로 인해 중간에 내려서 걸어올 경우,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최근 폭염으로 인해 조금만 걸어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위험하다. 마을주민들과 여러 번 민원을 넣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며 토로했다. 현재 도초마을로 쉽게 진입하기 위해 톨게이트 주변에서 도로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언제 완공될지 몰라 마을 어르신들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피해, 방범용 CCTV도 없어 마을 어르신들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들었다. 너구리와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자주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야생동물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포획할 수도 없고,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다 보니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산과 형산강을 끼고 있는 도초마을의 자연환경 특성상 야생동물의 피해가 잦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마을은 CCTV도 없어서 인근 마을 청년회에서 방범순찰을 돌아주고 있다. 시에서 대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도초마을 자랑은 오도화 할머니의 자식농사라고 한다. 오도화 할머니의 아들인 김형천 씨는 현재 부산에서 부장판사, 손자 김현재 씨는 변호사를 하고 있다. 마을어르신들은 모두 입을 모아 오도화 할머니의 자식농사를 자랑하며 부러워했다.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상구리 현곡면 상구리는 구미산(龜尾山해발 594m) 자락 동쪽에 자리 잡아 아늑한 벼농사 중심의 농촌마을이다. 구미산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상구리는 구무들 위가 되므로 웃구무, 웃구미라 하고 혹은 구미산 위가 되므로 상구미, 상굼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면 구평리와 가막골을 병합해 상구리로 불렀다. 그 후 상구리를 상구1리, 구평리를 상구2리, 가막골을 상구3리로 했다. 상구 3리인 가막골(마을)은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목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또 신라시대에는 이곳에서 궁성(宮城)의 말을 사육하고 훈련시키던 곳이라 하여 ‘가막골’ ‘가목(佳牧) ’가목골‘이라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말을 사육하고 승마를 체험하는 곳이 있다. 달리 이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감옥안처럼 되어 있어 ‘가목(감옥)골’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구평(龜坪)은 김해김씨 성을 가진 이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들판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 형상이라 해 ‘구평’ ‘구미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구’는 신라시대 경주김씨가 정착해 이룬 마을로 지금도 주민들 중 절반이 넘는 경주김씨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상구3리 가막골(마을) 앞산 기슭에는 갑(甲)바우가 있는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고려 중엽 어느 날 폭풍우가 일고 천둥이 쳐 바위가 갈라지며 바위 속에서 장군의 갑옷이 나왔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갑바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갈라진 두 바위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상구리에는 정석(鄭惜)묘비가 있는데 정석은 고려 의종 때 한림학사와 추밀원 주지사를 역임한 오천정씨 중시조인 습명(襲明)의 21세손이며 대군(大君)의 사부였던 극후(克後)의 현손으로 조선 영조 때 사람이다. 향리인 소현리에 살면서 후학의 교육과 적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상구리 가막골에서 충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양쪽의 산이 마치 대문처럼 솟아 있다고 해서 대문(大門)재라고 부른다. #현곡면 하구리~충효동 잇는 도로 위험천만 현곡면 상구1리(노인회장 정동술<인물사진>. 이장 이찬호)는 70여 호의 농가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몇몇 축산농가도 눈에 띄었다. 지난 23일 방문한 상구1리경로당에는 때마침 배진석 도의원과 이동은 시의원이 방문했고, 현곡농협 이종권 조합장과 농협직원들이 중복을 맞아 어르신들에게 안부를 묻고 준비한 수박과 보리떡을 대접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쉼터인 상구1리 경로당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시설은 잘 관리를 해서인지 깨끗했다. 상구1리는 현곡면 하구리에서 충효동으로 넘어가는 도로 우측에 형성된 마을로 어르신들의 바람은 한결같이 계획만 새워놓고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곡면 하구리~충효동 간 도로확장을 서둘러 주길 바랐다. 현재 이 도로로 노선버스가 다니고 차량통행이 잦지만 마주 오는 차들이 교차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군도 겸 도시계획도로인 이 구간은 편도 1차선으로 차량교차가 가능하도록 사업이 계획돼 있다. 총 구간은 3.8km이며 현재 현곡면 하구리 쪽과 충효동에서 넘어오는 1.5km구간은 공사를 했지만 나머지 2.3km(소요예산 23억원)는 예산부족으로 마무리 하지 못했다. 경주시 도로과는 이 구간의 사업을 완료하기 위해 도비와 시비 확보에 최선을 다 한다는 방침이다. 이찬호(61·인물사진) 이장은 “어르신들은 농사철 경운기 등 농기계가 많이 다니고 차량통행이 많지만 차들이 피할 수 있는 공간도 없다”면서 “무엇보다 마을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도로 확장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 이장은 또 “마을에는 여성 어르신들이 많고 이분들이 농사를 지으러 보행기에 농기구나 비료를 싣고 논밭으로 나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마을입구부터 들어오는 포장된 길이 오래되다 보니 길이 울퉁불퉁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포장을 다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이동은 시의원은 “현곡~충효간 도로 확장 공사는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시에서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노선을 따라 우선 마을 입구나 주요 장소에 차들이 교차할 수 있도록 부지를 확보해 추진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의 바람은 경주시나 기관에서 건강프로그램을 자주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지금 이 나이에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 아니겠느냐. 경주시 보건소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건강강의나 건강체조 등의 혜택을 받고 싶어도 마을이 작고 주민들 수도 많지 않아 제외되는 것 같다”면서 “요즈음은 자원봉사자나 사회복지사들도 많은 데 1년에 몇 차례라도 와서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구미산을 뒤에 두고 있어 야생동물들의 피해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마을 위쪽에 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멧돼지, 노루, 고라니, 너구리 등이 많아 늘 피해를 보고 있다. 시에서 대책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신문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진행하는 ‘지역공동체캠페인-어르신은 지역사회의 힘’은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사회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 어르신들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고 그분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삶의 자원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번에는 안강읍 사방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활기 넘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민원과 마을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갑산리는 본래 경주군 강서면 지역으로 신라 때의 절 갑산사가 있어 갑산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산전리 일부와 강도면 호명리, 모시리 일부를 병합해 갑산리가 됐다. 갑산리는 맴산과 못안마을, 대마을이 갑산 1리와 사들, 마늘밭 마을이 갑산 2리로 나뉜다. 갑산 2리는 사들과 마늘밭 마을 주민들이 사는 농촌 마을이다. ‘사들’은 사평沙坪, 사평동沙坪洞이라고도 하는데 갑산리에서 제일 큰 마을로 마을 앞에 있는 큰 들을 부르는 말이다. 사들이란 지명은 조금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 마을에 모래가 많이 쌓인다 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마늘밭’은 예로부터 마늘 재배가 많은 곳이라 마늘밭이라 불렸다. 이곳은 동네 어귀에 넓은 평지인 사들이 펼쳐져 있다. 예전부터 들에서 논농사를 주로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사들에 도로와 철도가 생기면서 넓은 논이 대부분 매각됐다. 논에 길이 나면서 갑산2리 주민들은 삶을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많은 주민이 외지로 떠나며 이제는 60여 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동네,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농촌 마을, 갑산2리 결로당이 유일한 어르신들의 쉼터다.
경주신문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진행하는 ‘지역공동체캠페인-어르신은 지역사회(경주)의 힘’은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사회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고 그분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삶의 자원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6개월 여 동안 진행되는 이 사업은 지난 5일 안강읍 강교1리 마을회관을 시작으로 경주지역 곳곳을 찾아가면서 특강과 민원과 마을이야기를 듣는 방법으로 진행되며 경주신문은 취재내용을 지면에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