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뉴스 피플

‘경주 최부잣집’ 정신 알린 최염 명예회장 별세

이상욱 기자 lsw8621@hanmail.net 1747호 입력 2026/09/17 10:46 수정 2026/09/17 10:49
향년 93세
나눔과 교육 정신 알리는 데 헌신

‘경주 최부잣집’의 최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최부잣집>확대
‘경주 최부잣집’의 최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경주최씨 중앙종친회>
‘경주 최부잣집’의 최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33년 경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대(현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심계원(현 감사원)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이후 대구대 사무국장·이사, 선경산업 대표, 성남병원 이사장을 지냈다. 1986~2015년 세 차례 중앙종친회장을 맡았고 이후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다.

‘경주 최부잣집’은 최치원의 후손으로, 병자호란 때 활약한 최진립 장군의 셋째 아들 최동량 대부터 부를 쌓았다. 원래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있던 가옥은 8대 최기영 대에 지금의 교동으로 옮겨졌으며, 이조리 옛 가옥은 ‘충의당’이란 이름으로 199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가문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육훈을 대대로 실천하며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조부 최준 선생은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바쳐 대구대 전신인 계림학숙을 세웠다. 고인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대구대 운영권을 정부에 넘긴 데 항의하다 1970년대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은 가문의 역사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 1998년 ‘교동의 얼’ 발간에 참여했고, 2006년 고택이 복원됐다. 2007·2012년에는 학술대회가 열렸고, 2014년 ‘최부자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으며, 2018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관련 내용이 실렸다.

고인은 2024년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이사장으로 국사편찬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자료 2만여 점을 전자사료관을 통해 공개하기로 하는 등 가문의 유산을 나누는 데 힘썼다.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