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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와주신 비가 한없이 반갑다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5호 입력 2026/09/03 14:00 수정 2026/09/03 14:01
경주 아주망 고람수다[103]

이승미 경주 아주망확대
이승미 경주 아주망
거실 책상 너머 논의 푸르름이 반짝인다. 가뭄에 잠시 잃었던 빛을 찾은 것처럼 벼의 연둣빛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너머 산의 녹음을 책임지는 소나무는 군데군데 갈색빛이 돈다. 코로나 때 소나무재선충 사업비가 줄고, 작업을 제대로 못 해서 이제는 손을 쓸 수 없는 단계라더니 경주시를 향하는 길목에도 포항을 가는 길목에서도 푸르른 산새의 녹음은 갈색으로 변질되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큰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기후변화, 우리나라 산들의 수목도 결국엔 변할 것이다. 귤과 한라봉이 제주도가 아닌 남부지방에서 재배되고, 대구 사과 아가씨의 명맥은 이제는 청송에서도 올라가 사과 재배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겨울 방어는 제주도였는데 이제는 동해에서 더 많이 잡히고 참치는 우리나라 어획량을 넘어서 더 잡히는 통에 그냥 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기후변화인지,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서 그러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줌마의 지난 나날들과 비교가 되는 현재다.

제주 비바리가 경주 아주망이 된 지 16년.

가뭄이다.

평소에도 강우량이 적은 아줌마 동네는, 그래도 위쪽에 못이 하나 있어서 물 걱정 없이 보냈다. 우리 지역에는 비나 눈이 적어도 윗동네에서는 비나 눈이 제때 와줬는지 못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했다. 그 넓은 못이 넘칠까 봐 오히려 걱정될 정도였다. 십육 년 동안 칠평천이 넘칠 듯, 두어 번 찰랑찰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왔다.

간만에 보는 따실못(하곡지)에는 바닥이 보였다. 집 앞 칠평천에는 누가 봐도 농업용수를 위한 파란 용수 라인 두 개가 길게 늘어져 있다. 아줌마가 시집오고 나서 처음 겪어보는 가뭄이다. 아이들에게 물을 아껴 쓰자고 말하고, 다른 지역의 가뭄 뉴스를 함께 시청했다.

드디어 비가 왔다.

이틀 동안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비님을 맞았다. 다음 날 우리는 기대하며 칠평천을 바라봤다. 보통 비가 내리고 나면 칠평천이 물이 늘고, 물이 늘어난 양을 보며, 비가 이만큼 왔구나 확인하고, 높아진 수위에 칠평천 오리들은 잘 피했나, 왜가리와 백로들이 사냥터는 어디로 잡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좀 해갈이 됐을까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창가로 모였다.

칠평천의 수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가 오고 나면 언제나 수량이 늘어서, 기존의 물줄기가 더 굵어지거나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던 곳에도 물줄기가 생기곤 했는데, 전혀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비가 모두 땅을 적시는 정도밖에 되지 못한 것이다.

하루가 지나니 몇몇 곳에는 시간당 100mm 넘게 물폭탄을 맞았다. 산사태가 생기고 지반이 약해져 도로가 유실되고 차량들이 침수됐다. 시간당 50mm가 넘으면 하수가 감당이 안 된다는데 그 두 배가 넘는 양이 쏟아진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들은 말한다.

‘그 비, 반만 이쪽으로 좀 와주지.’

일주일이 지났다.

경주에도 비가 와주셨다. 안강 들녘이 물을 머금은 초록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며칠에 걸쳐 조금씩 내린 비는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흙먼지 날리던 공기에서 미세먼지는 사라졌고, 흙 색깔도 다시 돌아왔다. 이름 모를 꽃들이 하천변을 알록달록 물들었다.

이 비로 지하수도 좀 차지 않았을까?

땅이 젖고 지하수가 찼으니 다음 비는 칠평천을 채우고 따실못을 가득 채우리라.

모처럼 와주신 비가 한없이 반갑다.

땅을 적셔주고, 폭염의 기승을 풀어줬으니 감사하다.

덕택에, 평소에 당연하게 쓰던 물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아이들은 목욕할 때 설거지할 때 물을 아껴야겠다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 준 가뭄도, 오랜만에 찾아와 준 비도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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