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오피니언 칼럼 녹색전환칼럼

판단은 있는데, 이유가 없다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2호 입력 2026/08/06 11:09 수정 2026/08/06 11:12

박은옥 <br>녹색전환연구소 <br>지역전환팀 연구원확대
박은옥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 연구원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한 해 추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이행 상황을 점검해, 지난 5월 31일까지 광역지방정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각 지자체가 법정계획을 세운 뒤 처음 받아든 성적표였다. 정부가 2027년까지 2035년을 목표로 한 2차 탄소중립계획을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점검 결과가 궁금했다. 첫 번째 계획을 돌아보고 다음 계획을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행평가 보고서를 받아보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전국 226개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분석 시점까지 보고서를 받은 곳은 65곳뿐이었다. 대부분은 국가 기후위기대응위원회의 보고와 심의가 끝난 뒤 공개하겠다고 답했다. 이미 점검까지 끝난 자료를 시민은 아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다. 이행점검은 행정을 위한 절차인 동시에 시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65개 지자체의 보고서를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느 지역이 사업을 잘 추진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보고서를 읽을수록 다른 질문이 생겼다. 사업은 정말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는 걸까. 65개 지자체의 3964개 세부과제를 집계해 보니, 사업 이행률은 평균 74.2%, 중앙값은 78.3%였다. 숫자만 보면 대부분의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감축목표 달성률의 중앙값은 40.2%에 그쳤다. 그것도 연평균 2.2% 감축이라는 비교적 낮은 목표를 기준으로 한 결과였다.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됐다고 하는데, 온실가스는 계획만큼 줄지 않았다.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사업은 정상인데 감축은 왜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어딘가에는 적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찾기 어려웠던 건 숫자가 아니라 설명이었다.

가령 ‘정상추진’으로 분류된 708개 과제 가운데 왜 정상추진이라고 판단했는지 사유를 적은 경우는 40건도 되지 않았다. 또한 같은 수준으로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라도 어디에서는 정상추진으로, 다른 곳에서는 지연이나 미달성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평가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의 기준인데, 그 기준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판단은 있는데, 이유가 없다.

현재의 판정 기준은 법령이 아니라 한국환경관리공단의 가이드라인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정상추진을, 올해 목표는 채우지 못했지만 2030년까지는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정의한다. 문제는 그 판단 기준을 지자체의 재량에 맡겨 놓았다는 점이다. 분석을 하면서 법정계획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적어도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다음 점검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고, 시민도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예산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65개 지자체는 감축사업에 6조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는데, 부문별로 예산 대비 감축효과는 크게 엇갈렸다.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간 수송 부문이 반드시 가장 큰 감축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온실가스 1톤을 줄이는 데 595만원이 들어, 여섯 개 부문 가운데 가장 비효율적이었다. 두 번째로 예산이 큰 건물 부문도 톤당 189만원으로 평균을 웃돌았다. 예산이 가장 많이 들어간 부문이 오히려 감축효과는 가장 낮았던 셈이다.

물론 기반시설 사업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도 예산이 얼마나 투입됐는지뿐 아니라 그 예산이 실제 감축성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래야 다음 계획에서도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 확인한 문제는 세 가지로 모인다. 정상추진과 지연·미달성을 가르는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 그 판단의 근거가 대부분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 예산이 어디에 쓰였고 그것이 감축효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분석한 대상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161곳의 보고서가 남아 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결과와 이유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분석도 누가 더 잘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 과정에 가까웠다. 계획은 숫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평가는 결국 설명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 2027년이면 새로운 탄소중립계획이 만들어진다. 첫 번째 성적표가 의미 있으려면 결과만 남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행평가 보고서를 시민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정상추진이나 지연 같은 판단에는 반드시 근거를 남기도록 하며, 예산이 감축효과로 이어졌는지를 평가하는 절차를 갖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 이행점검이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