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곳곳에서 묵묵히 기업을 이끌어가는 여성 CEO들을 조명합니다. 경주신문은 2026년 특별기획 ‘경주를 움직이는 힘, 여성기업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진솔한 경영 철학을 기록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섬세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기업인들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주신문은 지역 여성 기업인들의 제보와 추천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쫄깃한 만두피 속에 육즙 가득한 소가 꽉 찬 만두, 누구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친숙한 국민 간식이라지만 그 작은 만두 하나를 빚어내고 지켜내기 위해 30년이 넘는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쳐 온 여성이 있다. 대기업의 저가 물량 공세 속에서도 깐깐한 원재료 고집으로 프리미엄 만두 시장의 틈새를 개척하고, 식당 직거래 납품을 통해 탄탄한 신뢰를 쌓아온 ‘다원푸드’의 조윤옥 대표(66)가 그 주인공이다. 한때 대출 이자율 18.5%에 달하던 IMF의 살인적인 파고와 전국을 휩쓸었던 ‘쓰레기 만두 파동’마저 묵묵한 정직함으로 이겨낸 그녀의 삶은 차가운 냉동 창고 속에서도 결코 식지 않았던 뜨거운 열정 그 자체였다. 이제는 든든한 아들들과 함께 종합 식품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조윤옥 대표를 만났다.
아이스크림 비수기를 극복하려 시작한 만두, ‘쓰레기 만두 파동’ 정면 돌파하다
조윤옥 대표가 처음부터 만두 제조업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6년에 결혼한 그녀의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자격증까지 갖춘 인재였지만, 얽매이는 조직 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자영업을 원했다. 부부는 초창기 아이스크림 창고 용역업을 운영했는데, 한여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뚝 끊기는 극심한 비수기를 겪어야만 했다.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부부는 지인이 운영하던 식당의 맛있는 만두에 주목했다. 그리고 부부가 직접 레시피 연구와 개발에 매달리며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두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순탄할 것 같았던 사업은 2004년 무렵,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불량 단무지(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사람들이 만두 자체를 불신하며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주눅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불량 재료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으니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좋다”며 오히려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였다. 공무원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조사하고 단무지 사용 여부를 캐물었지만, 다원푸드의 만두 공정은 결백했다. 세상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품질을 속이지 않았던 그 정직함 덕분에 그들은 깊은 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직원의 밥을 지어 먹이며 맨몸으로 버틴 수작업의 눈물
만두 파동 못지않게 그녀의 목을 옥죄었던 것은 1997년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였다. 은행 대출 이자율이 무려 18.5%까지 치솟으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하루하루가 경매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적자가 쌓이는 만두 공장을 포기할 법도 했지만, 조 대표는 여름철 아이스크림 창고 용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고스란히 만두 공장의 적자를 메우는 데 쏟아부으며 악착같이 돌렸다.
자동화 설비가 부족했던 당시 만두 공정은 거의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10명 가까운 직원들이 일일이 밀가루 반죽을 밀어 피를 만들고 손으로 주름을 잡아가며 만두를 빚어냈다. 빚어놓은 만두가 행여 바람에 말라 모양이 흐트러질까봐 한여름에도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켜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조 대표는 몰려드는 밀면집, 냉면집의 여름 주문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과 똑같이 밤낮없이 만두를 빚었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건비와 식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 많은 직원의 삼시 세끼를 직접 밥솥에 밥을 지어 먹여가며 회사를 이끌었다.
“주인이 지친 기색을 보이면 직원들도 덩달아 지치기 때문에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었다”는 그녀의 회고에는 남모를 눈물과 고단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대기업과 맞서는 유일한 무기는 ‘품질’, 경주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깐깐한 고집
대규모 자본과 설비로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과의 치열한 단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원푸드가 선택한 전략은 철저한 고급화와 직거래였다. 대형 마트는 잦은 클레임과 막대한 유통 마진의 압박 때문에 과감히 입점을 포기하고, 대신 맛의 가치를 알아주는 식당 전문점들에 직접 납품하는 B2B 방식을 택해 생존의 활로를 뚫었다.
조 대표의 원재료에 대한 고집은 유별나다. 원가 절감을 위해 흔히 쓰는 수입산 돼지고기나 저렴한 냉동 채소를 일절 배제한다. 100% 국내산 생돈육만을 고집하며, 기름기가 많은 돼지 지방 부분은 공장에서 직접 손으로 일일이 다 떼어내어 다듬는다. 야채 역시 건조 무말랭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선한 생채소를 직접 구매해 씻고 손질해 쓴다. 심지어 음식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 참기름을 아낌없이 넣고, 경주 지역 특산품인 송화고 버섯을 활용한 프리미엄 버섯 만두를 개발해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수익 모델까지 창출해 냈다. 상품의 외관이 조금 부족해 경매에 넘기기 힘든 지역 농가의 버섯을 제값에 매입해 직접 손질해 만두소로 쓰니, 농가도 살고 다원푸드 만두의 맛과 향도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내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좋은 상품을 만든다”는 명확한 철학이 다원푸드만의 독보적인 무기인 것이다.
기계화로 찾은 60대의 여유, 든든한 아들들과 함께 그리는 ‘종합 프랜차이즈’의 꿈
평생을 고된 수작업과 빚에서 그녀의 일상에 마침내 따뜻한 볕이 들기 시작한 건, 전면적인 기계화와 자동화 설비를 완비하면서부터다. 과거 17명이 땀 흘리며 매달려야 했던 생산량을 이제는 단 5명의 직원이 쾌적하게 소화해 낸다. 불량률이 크게 줄고 단가 경쟁력까지 생기자 거래처 식당들의 만족도도 훨씬 높아졌다. 수작업 시절에는 물량이 부족해 팔지 못했던 밀려드는 주문을 이제는 모두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서 조 대표는 비로소 거친 현장 작업에서 한발 물러나 서류 작업과 경영 관리에 집중하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편안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현재 다원푸드는 든든한 두 아들의 합류로 완전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손이 빠르고 명석한 둘째 아들이 공장 생산 실무를 든든하게 총괄하며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덜었고, 친화력이 좋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할 줄 아는 막내아들은 기존의 밀면과 만두를 하나로 엮은 외식 프랜차이즈 체인 사업을 기획하며 사세를 확장할 준비를 마쳤다. 남편이 오랫동안 운영해 온 다미식품과 부부의 힘을 합쳐 육수, 소스, 면, 만두를 아우르는 종합 식품 기업으로 굳건히 성장하겠다는 확고한 청사진이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 여성 후배들에게 조 대표는 “내 사업을 결심했다면 사장으로서 얄팍한 체면이나 핑계는 다 버리고 끈기 있게 버텨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단 용기 내어 부딪히고 버텨보는 게 훨씬 낫잖아요.”라고 했다.
남들이 다 포기하던 그 지독한 절망의 겨울 속에서, 원칙과 끈기로 묵묵히 혹독한 시간을 이겨낸 조윤옥 대표. 오랜 시간 정성껏 빚어낸 따끈한 만두처럼, 이제 막 가장 풍성하고 단단하게 완성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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