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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기부한 80평 땅 위에 피어난 공동체 정신

이상욱 기자 lsw8621@hanmail.net 1730호 입력 2026/05/07 16:13 수정 2026/05/07 16:21
우리 경로당이 최고야 [31] 안강5리 경로당
안강5리 경로당의 기적

 

안강5리 경로당 전경. <사진=안강5리 경로당>확대
안강5리 경로당 전경. <사진=안강5리 경로당>
경주시 안강읍 안강5리 경로당이 ‘기부와 감사, 소통’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한데 어우러진 지역 공동체의 살아있는 표본으로 주목받고 있다.


안강읍의 골목 깊숙이 자리한 안강5리 경로당은 단순히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는 휴식 공간이 아니다. 60여 년 전 한 남성의 숭고한 결단이 씨앗이 되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의리가 뿌리가 돼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정신의 산실이다.


한 남자의 ‘통 큰’ 헌신, 그리고 의리로 보답하는 마을


이 감동의 이야기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어르신들이 마땅히 쉬어갈 공간이 없어 불편을 겪는다는 소식을 접한 故 손진하 옹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 소유의 토지 80평을 마을에 선뜻 내놓았다. 당시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자산이었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가업의 일부였지만, 그는 주저 없이 ‘나보다 우리’를 선택했다.

 

종이 바벨탑 쌓기 놀이. <사진=안강5리 경로당>확대
종이 바벨탑 쌓기 놀이. <사진=안강5리 경로당>

그의 나눔 정신은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마을 곳곳에 깊이 새겨져 있다. 놀라운 것은 안강5리 주민들이 매년 자발적으로 故 손진하 옹을 위한 제사를 모신다는 사실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문중의 제사도 아닌, 마을 전체가 한마음으로 모여 타인의 기일을 챙기는 문화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누가 먼저 시킨 것도 아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개인 회비를 갹출하고 정성껏 제물을 준비해 고인의 뜻을 기린다. “이 땅 덕분에 우리가 비를 피하고 이웃을 만난다”는 소박하고도 깊은 감사함은 이제 안강5리만의 전통이자 공동체 정신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80평 대지에 뿌리 내린 것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대를 이어 흐르는 진심이었다.

 

내 색칠솜씨 괘안체~. <사진=안강5리 경로당>확대
내 색칠솜씨 괘안체~. <사진=안강5리 경로당>


젊은 리더십이 그린 ‘수평 소통’의 새 지평


 

윤창희 회장. <사진=안강5리 경로당>확대
윤창희 회장. <사진=안강5리 경로당>
기부자가 심어 놓은 씨앗을 무성하게 가꾼 공은 현 안강5리 경로당 윤창희 회장에게도 돌아간다. 윤 회장은 고령화 사회의 경로당을 둘러싼 통념, 즉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선입견을 정면으로 허물었다.

그의 운영 철학은 명확하다. ‘시기와 질투가 없는 수평적 소통’이 그것이다. 윤 회장은 회장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스스로 허물고 어르신들 곁으로 먼저 다가섰다.

“어르신들이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우실까”를 늘 고민하며 건강 강좌, 여가 프로그램 등 맞춤형 복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 경로당에는 ‘누가 더 잘났네, 못났네’가 없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기쁨을 내 일처럼 함께 축하해주는 것이 우리 마을의 불문율입니다.”

이 같은 화합의 분위기는 마을 안팎으로 알려지며, 경주시 안강분회에서도 ‘화합이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경로당’으로 안강5리를 주저 없이 첫손에 꼽는다.


‘행복 선생님’과 총무님이 만드는 기다림의 미학


요즘 안강5리 어르신들이 일주일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경로당 행복 선생님’이 방문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비단 행복 선생님만이 아니다. 경로당의 살림을 도맡아 온 여총무님의 헌신이 그 뒤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총무님은 이른 아침부터 회원 한 분 한 분께 직접 연락을 돌린다.

“할매, 오늘 선생님 오시는 날인 거 알지요? 얼른 준비하고 나오이소!”

이처럼 한 분이라도 더 챙기려는 세심한 배려 덕분에 안강5리 경로당의 프로그램 참여율은 매번 100%에 육박한다.

그 마음을 아는 행복선생님 역시 방문 때마다 더 열정적으로 수업을 준비해 온다. 치매 예방을 위한 종이접기 시간에는 서툰 손으로 접어 만든 카네이션 한 송이에 눈시울을 붉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신나는 트로트 가락에 맞춘 건강 체조 시간에는 굳은 몸을 펴며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흘러넘친다.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선생님이 오는 날은 마치 잔칫날 같다”고.

총무님의 섬세한 배려, 행복 선생님의 뜨거운 열정,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참여도가 삼박자를 이뤄 안강5리 경로당은 매일이 축제다.

 

사랑의 하트를 날립니다~. <사진=안강5리 경로당>확대
사랑의 하트를 날립니다~. <사진=안강5리 경로당>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람 냄새 나는 집’


안강5리 경로당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기부의 현장’, ‘화합의 메카’, ‘소통의 중심지’. 그러나 가장 정확한 표현은 아마도 ‘사람 냄새 나는 집’일 것이다.

故 손진하 옹이 뿌린 나눔의 씨앗은 윤창희 회장의 헌신이라는 거름을 먹고, 마을 주민들의 감사라는 꽃을 피워냈다. 이곳은 단순한 노인복지시설이 아니라, 속도와 경쟁 일변도의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렸던 공동체 정신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안강5리 경로당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다만, 그 문 안으로 들어서려면 한 가지 준비물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과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따뜻한 가슴이다.

오늘도 안강5리 경로당의 노란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80평 대지 위에 세워진 이 작은 기적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을의 등불로, 그리고 우리 사회 공동체 정신의 나침반으로 남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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