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곳곳에서 묵묵히 기업을 이끌어가는 여성 CEO들을 조명합니다. 경주신문은 2026년 특별기획 ‘경주를 움직이는 힘, 여성기업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진솔한 경영 철학을 기록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섬세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기업인들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주신문은 지역 여성 기업인들의 제보와 추천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23살의 꽃집
23살에 꽃집 문을 열었다. 겁이 없었다. 그때는 어버이날, 스승의날이면 꽃을 드리는 문화가 당연했다. 꽃바구니 100개를 만들어두면 하루에 다 나갔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그때는 그냥 만들어두면 됐어요. 꽃을 드리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문화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잭팟이었죠.”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꽃을 주고받는 문화가 달라졌고, 경쟁도 달라졌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시장이 됐다. 김수영 대표는 그 변화 앞에서 배움을 선택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화훼장식기사와 도시농업관리사 국가자격을 취득했다. 대학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현장을 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36년이 흘렀다. 지금 김수영 대표는 경주 시내 꽃길93을 운영한다. 생화와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함께 취급하는 판매처다. 동국대 산학협력단 안에 가공 공장이 있고, 경산에 판매처 하나를 더 두고 있다. 자재를 수입해 직접 가공·제작하고, 클로리스꽃예술전문학원에서는 국비 교육 과정도 운영한다. 교육, 제조, 판매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구조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먼저 꺼내는 말은 학위도 자격증도 아니다.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해내는 거예요. 그게 없었으면 못 왔어요.”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다
클로리스가 주력으로 삼는 것은 프리저브드 플라워, 즉 가공화다. 생화를 특수 처리해 시들지 않게 만든 꽃이다. 국내 화훼농가에서 생산된 생화의 30% 이상이 폐기처분된다. 김수영 대표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다.
“꽃이 시든다는 아쉬움 때문에 선물받고도 금방 버려야 하잖아요. 그 아쉬움을 없애는 게 가공화예요. 오래 곁에 두는 꽃이죠.”
생화와 가공화를 함께 갖추면 손님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 기념일엔 생화를, 오래 두고 싶은 선물엔 가공화를 딱 적시 적소에 필요한 것을 제안하고 같이 고민하는 게 이 일의 재미라고 했다.
클로리스가 꿈꾸는 그림은 꽃을 파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화훼 가공을 2차 산업으로, 교육과 체험을 3차 서비스 산업으로 연결하는 6차 산업화가 방향이다. 경주 화훼농가에서 생산된 생화를 매입해 가공품을 만들고, 경주의 도시 이미지에 걸맞은 디자인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구체적인 그림이다. 인테리어 장식품, 기념품, 선물용 가공품, 공간 장식품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지역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농촌 인구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바탕에 있다.
“꽃 하나로 이렇게까지 연결될 수 있어요. 농가도 살고, 교육도 되고, 지역도 살릴 수 있죠”
24시간이 모자라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그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정리한다. 현장 일정, 손님 주문, 수업 준비 등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꽃집 한다고 꽃만 만지는 줄 알잖아요. 매일 사진 찍고, 공부하고, 블로그 쓰고. 24시간이 모자라요.”
경주 스마트플레이스 플라워 분야 1위. 한 달여 만에 달성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을 물었더니 단순했다. 매일 찍고, 매일 올리고, 손님 입장에서 생각했다.
“매일매일 사진 찍고, 공부하고, 블로그 쓰고. 그냥 꾸준히 한 거예요.”
이번 벚꽃 시즌 프리마켓에서 준비한 물량을 3일도 안 되어 완판했다. 과감하게 많이 깔았다.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손실이지만, 그 과감함이 30년 넘게 버텨온 방식이기도 하다.
“3일도 안 됐어요. 경주 오는 사람들이 꽃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손님들이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그 SNS에서 다시 연락이 온다. 경주가 핫해진 만큼 꽃도 같이 뜨고 있다는 걸 현장에서 매번 확인한다고 했다.
“꽃 하나 들고 있는 게 뭔가 달라요. 둘이 나란히 찍는 것보다 꽃 한 송이 들고 있는 사진이 더 감성적이잖아요. 사람들이 그 느낌을 좋아하더라고요.”
제자가 문을 닫을 때
경주에서만 화훼장식 자격증을 취득한 제자가 100명에 육박한다. 한창 많을 때는 1년에 수십명씩 배출했다. 그 중 가게 문을 닫은 제자도 있다. 손실을 보고 문을 닫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
“제자가 문 닫는 걸 보면서 가슴이 좋지 않았어요. 그전까지는 하고 싶으면 해라 했는데, 요즘은 약간 움츠러들어요.”
지금은 창업을 권할 때 반드시 한마디를 덧붙인다.
“3년은 준비하고 시작해라. 좋아하면 할 수 있어요. 근데 반드시 배우고 하라고. 제자들 보면서 그 말을 꼭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창업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50대에 처음 시작해 잘 해나가는 제자도 있다. 꽃이 좋아서, 준비하고 문을 연 사람이었다.
“작품을 더 잘 만드는 사람이 문을 닫는 경우도 봤어요.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업이 참 어려워요. 저도 아직 다 모르겠어요.”
젊은 창업자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경주 시내에만 관련 업체가 일곱여덟 곳으로 늘었다. 릴스를 올리고, 새로운 기술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젊은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면 저도 긴장돼요. 그래서 계속 투자하고, 계속 배워요. 쫓기는 느낌이 있어야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그게 사업하는 사람의 본능인 것 같아요.”
소속된 경주여성기업인 모임에서 여러 대표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고도 했다. 공장을 견학하고, 시스템을 보고, 자신의 사업에 적용할 것들을 찾는다.
“대표님들 만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분야는 달라도 사업을 끌고 가는 방식은 비슷하더라고요.”
누군가를 바라보는 꽃
김수영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해바라기다.
“항상 해를 보고 자라잖아요. 누군가를 바라보는 꽃. 보면 의욕이 생겨요.”
꽃집에는 늘 해바라기를 들여놓는다. 수요가 많지 않아도 해바라기를 찾는 손님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공장도, 판매처도, 교육도 다 따로 있어요. 그걸 한 곳에 모으고 싶어요. 경주에서요. 여기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꽃은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손님이 꽃을 들고 나가는 순간 얼굴에 번지는 표정, 그걸 36년째 매번 새로 확인한다고 했다.
“제가 감사해야 하는데, 손님들이 먼저 감사하다고 해요.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36년째 그 기쁨을 팔고 있는 김수영 대표, 그러니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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