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곳곳에서 묵묵히 기업을 이끌어가는 여성 CEO들을 조명합니다. 경주신문은 2026년 특별기획 ‘경주를 움직이는 힘, 여성기업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진솔한 경영 철학을 기록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섬세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기업인들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주신문은 지역 여성 기업인들의 제보와 추천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농협 주유소가 들어오던 날
안강에서 주유소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손님이 오면 맞췄고, 그렇게 쌓아온 자리였다. 지역에서 알아주는 단골도 생겼다. 평생 직장이라 여겼다. 그런데 인근에 농협 주유소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손님이 줄었다. 버텨봤지만 타격이 너무 컸다.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따로 소유하고 있던 땅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그 자리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에 뭘 하면 될까. 마침 친정 식구들이 가설 일을 하고 있었다. 와서 보더니 위치가 괜찮다고 했다. 가설자재업을 해보라고 권했다. 친정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사업이었다. 남편이 친정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왔다. 비계, 아시바. 기본 단어조차 몰랐던 상태였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건설 경기가 어렵다고 했다. 김 대표는 개의치 않았다.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였습니다.” 믿을 구석이 있었고, 위치도 괜찮았다.
그렇게 6년 전, 럭키가설산업이 문을 열었다. 비계설치, 가설자재 임대·판매, 철물, 합판, 목재. 경주·포항·안강은 물론 입소문이 나면서 부산, 울진 등 찾아오는 곳이 늘었다.
처음엔 수급 문제로 적지 않은 돈을 날리기도 했다. 모르는 채로 부딪히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또 기대가 생겼다. 사고 없이 하루가 끝나면 그게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6년이 됐다.
현장 사람들이 다시 찾는 이유
자재를 가지러 오는 손님은 대부분 현장에서 온다. 한여름 땡볕을 달리고 오기도 하고, 한겨울 손이 언 채로 오기도 한다. 김 대표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음료수를 내놓고, 여름엔 시원한 과일을 챙긴다. 식사 시간이 되면 같이 먹자고 한다. 럭키가설산업 한켠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다. 항상 채워져 있다.
주유소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장사는 손님 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몸으로 익혀왔다. 건설 현장 손님들도 다르지 않았다. 가설 업종 특성상 고객 대부분이 남성이다. 처음엔 여성 대표를 보는 시선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 사람들의 고단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함께 현장에도 나갔다. 한겨울 다리 밑,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말로만 듣던 현장이었다. 직접 보니 달랐다. “이 시대 아버지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남편한테도 새삼 감사하다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고요.”
직접 몸을 쓰는 건 남편 몫이지만, 김 대표도 옆에서 함께 뛴다. 해봐야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했다. 회계사가 찾아왔다가 기름때 묻은 옷을 보고 물었다. 직접 일하시냐고. “직접 해봐야 직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죠. 그래야 뭘 챙겨줄 수 있는지도 보이고요.” 점심시간에라도 허리를 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나왔다.
건설 현장은 팍팍하고 고된 곳이다. 그 안에서 김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었다. 자재를 가지러 온 사람에게 건네는 음료 한 잔,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말 한마디. 거칠고 투박한 현장에 작은 온기를 들이는 일이었다. 그게 그들이 다시 찾아오는 이유가 됐다.
자재는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체크하고 내보낸다. 초창기에 외국인 인력을 썼을 때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클레임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직접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가설자재는 안전과 직결된 물건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이기 때문에 더 정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결국 남는 건 신뢰입니다.”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들
열심히 달려오다 어느 날 거울을 봤다. 너무 많이 늙어 있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무의미하게 일만 한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때부터 몸과 마음을 챙기기로 했다. 라인댄스를 시작했고, 명상 모임도 찾아다녔다. 하다 보니 일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한테 내 눈높이를 들이밀던 것도 그때 내려놨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아이들로 키웠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스스로 찾게 했다. 아들은 지금 곁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부산에서 직장을 다닌다. 개업할 때 휴가를 내고 달려와 옆을 지켰던 딸은 지금도 수시로 도울 일이 없는지 먼저 연락을 해온다. 엄마가 헷갈려할 것 같은 컴퓨터 사용법을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 보내온 적도 있었다. 멀리 있어도 늘 곁에 있는 방식이었다. “애들한테 참 미안했어요. 맨날 바쁜 엄마라서. 그래도 이렇게 든든하게 커줘서 고맙죠.”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가 달라졌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이 있다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현장을 지키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걸로 충분합니다.”
후배 여성 기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어떤 일이든 상대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결국 돌아오더라고요. 힘든 감정은 그날 털어내야 해요. 그래야 다음 날 또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비계는 완성된 건물에 남지 않는다. 쓰이고 나면 사라진다. 그래도 그게 없으면 건물은 올라가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지탱하는 자리. 김화영 대표가 이 일을 6년째 하는 이유이자,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와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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