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이 뭐 대단한 거라고, 경주에서 여섯 개나 발견된 것인데 싶지만, 그 자체로 정말 대단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발견된 금관은 총 13~14개다. 숫자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보존 상태, 학계의 반응, 금관으로 따로 인정할지 하나로 봐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 여섯 개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고, 그 여섯 개 모두가 신라의 도시 경주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박물관의 핫이슈는 또 있다. 최근에 유물 하나로만 박물관을 지어, 세계적인 박물관들에 충격파를 안긴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대향로관>이다. 국보인 ‘백제금동대향로’를 컨셉으로 박물관을 지었다. 온전히 그 유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유의 방에는 넓은 공간에 국보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적절한 조명과 넓은 공간에서 주는 여백, 그리고 두 국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색에 잠기는 것이 필연이다. 많은 전시물을 다닥다닥 모아놓은 해외 박물관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매력이다. 거기에 나아가서 유물 하나를 가지고 온전히 박물관을 하나 지은 셈이다. 아줌마도 이미 소문은 들어서 자료를 찾고 아이들과 가보려고 계획 중이다.
그런데 왜 안강읍에는 박물관이 없을까? 대단한 유물이 없어서??
유물의 의미가 무엇인가? 역사적 가치다. 그리고 거기에 그럴 듯한 스토리텔링이 주어진다면 그 가치는 무한대다. 생전 보다 사후에 이름을 날리게 되는 화가들의 경우, 스토리텔링의 전폭적인 힘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반 고흐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림들만이 아니다. 각종 유물이나 세계적인 관광지에는 언제나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안강에는 없을까?
아줌마가 정말 입 아프게 외친다. 있다, 그것도 아주 철철 넘치게!!!
삼국사기는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그 원본이 안강에 있다. 옥산서원 수장고에 실물이. 그곳에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 철철 넘치게 모셔져 있다. 만인소라고 들어봤나? 만 명(숫자적인 의미보다는 많다는 의미)이 연명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다. 조선시대 만인소는 총 일곱 번이 올려졌는데, 그중 두 개가 현존한다. 도산 서원과 옥산 서원에 하나씩 보존되었다가, 더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졌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독락당. 그들을 잇는 인물인 회재 이언적 선생님은 우리나라 화폐에 올라가 있는 조선시대 이황과 이이의 대표 학문인 성리학의 기틀을 만든 분이다. 그런데 이분을 통해 엄청난 스토리텔링이 있다. 이분이 유배를 가서 강계(평안북도)에서 돌아가신 후, 아들 이전인은 나무에 아버지의 관을 얹고 아버지의 역작들을 짊어지고 100일 동안 모진 고생 끝에 고향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부가 벗겨지고 피와 땀을 닦은 작은 수건이 여전히 남아있고,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시신을 얹고 끌고 왔던 대나무도 있다. 아버지의 역작을 이황에게 전하며 아버지의 문집에 서문을 부탁했다. 그때 이황은 단 한 번도 이언적을 본 적이 없지만, 이언적의 글들을 읽고 큰 학문적 깨달음을 얻는다. 이황은 서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이언적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글을 따로 남겼다. 그걸 종이가 아니라, 나무에 남김으로써 그 의미를 더한다. 그 유물 또한 안강에 있다. 옥산서원 수장고, 양동마을과 독락당에 넘치는 유물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박물관이 없으니 알지 못한다. 아줌마도 스스로 마을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어떤가? 안강에 국립박물관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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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아주망 고람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