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곳곳에서 묵묵히 기업을 이끌어가는 여성 CEO들을 조명합니다. 경주신문은 2026년 특별기획 ‘경주를 움직이는 힘, 여성기업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진솔한 경영 철학을 기록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섬세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기업인들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주신문은 지역 여성 기업인들의 제보와 추천을 기다립니다./편집자 주
강동면, 건축자재가 쌓인 야적장 한쪽에서 지게차가 움직인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지앤비하우징의 박강민 대표, 올해 서른셋이다. 벽돌과 기와, 각종 건축자재를 다루는 이 회사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무심하게 지게차를 몰고 와 자재를 내려놓는 모습에서 10년차의 여유가 보였다.
엄마 좀 도와줘, 에서 시작된 10년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건축자재 일을 해오고 있었다. 원래 경주에서 친지분들과 함께 하시다가 독립해 포항에서 가게를 열었고, 사업을 키우면서 강동면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아버지는 기와 공사부터 시작해 자재 판매로 영역을 넓혀오신 분이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여기 와서 엄마 좀 도와줘” 한마디가 계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올해로 10년 차가 됐다.
처음에 부모님은 사무 위주로 생각하셨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사무실에만 앉아서는 안 되는 게 이 업이었다. 남자 직원들이 빠지면 자재를 실어줄 사람이 없었다. 직접 짐을 날라야 했고, 지게차도 타야 했다. 입사 2년 차에 아예 지게차 자격증을 땄다. 원래 현장에서 먼저 익혔기 때문에 시험 자체는 수월했다. 자격증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다른 수강생들에게 박 대표를 시범 운전자로 세울 정도였다. 어릴 때 평창에서 언니와 ATV를 타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이미 박 대표가 이런 일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버지, 동생과 셋이서 일한다. 동생은 최근 합류했다. 배달이나 무거운 현장 작업은 아버지 몫이지만, 전반적인 운영과 고객 응대, 자재 선정과 제안은 박 대표가 맡고 있다. 자재 판매뿐 아니라 시공, 하자 점검까지 직접 현장에 나간다.
“너는 잘 모르니까 딴 사람 바꿔라”
건축자재 업계는 대부분 남성 중심이다. 초반에는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면 기본적으로 말이 거칠었고, 같은 내용을 설명해도 아버지에게 할 때와 박 대표에게 할 때 톤이 달랐다. “너는 잘 모르니까 딴 사람 바꿔라.” 여자라는 이유로 먼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충분히 알고 설명을 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었다. 상처도 받았다. 그래서 더 많이 알려고 했다. 현장에 나가고, 책자를 보고, 거래처가 오면 질문을 쏟아냈다. 유튜브 자료 조사도 빠지지 않았다. 현장 흐름을 알게 되니 달라지는 게 있었다. 물받이를 사러 온 고객에게 “이것도 필요하실 거예요” 하고 부속 자재를 먼저 챙겨드리면, 돌아오는 반응이 확실히 달랐다.
자재에 하자가 생기거나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은 다르다.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맞추되, 어려운 부분은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10년이 만들어준 단단함이다.
“요즘에는 진짜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오히려 아버지 말고 저를 먼저 찾아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능력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오는 것, 그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보상이라고 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고객에게 자재를 제안했다가 나중에 “말 듣길 잘했다”는 전화가 올 때,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전공한 무역도 나름 살리고 있다. 한때 해외에서 건축자재를 직수입한 적도 있다. 수입 대행사를 거치긴 했지만 제품 선정부터 발주까지 직접 챙겼다.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쉬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하고 싶은 영역이다.
서럽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외로운 순간도 있었다. 사무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고, 주변에 밥 먹을 곳도 마땅치 않다. 점심을 데우다 손님이 오면 급하게 뛰어나가야 한다. 한번은 그러다 밥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되게 서럽더라고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이 스치는 날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머니와 함께 고택을 펜션으로 새로 지어본 적도 있다. 자재 선정부터 시공까지 직접 연구하고, 통창을 넣어 전망이 바로 보이게 설계했다. “완성되니까 정말 애착이 가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대로 지은 거니까요.” 건축자재를 파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공간을 만들어본 시간이었다.
온라인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벽돌과 원통형 화로를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상품을 직접 기획했는데, 따로 살 필요 없이 한 번에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았다. 이를 소개한 릴스가 캠핑·펜션 쪽에서 퍼지면서 새로운 고객층이 생겼다.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박 대표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끈기가 만든 자리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창업은 사실 제가 한 건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끈기를 가지라고 하고 싶어요. 저도 처음에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먼저 알려고 하고 끈기를 가지고 하다 보니까 인정받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그런 것 같아요.”
박 대표에게 이 일의 의미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답이 돌아왔다. “공간에 취향을 불어넣는 거요. 자재 하나가 달라지면 공간 전체가 달라지거든요. 그게 이 일의 매력인 것 같아요.” 건축자재를 파는 일이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공간을 바꿔주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 일과 연관된 뭔가를 계속 해나갈 것 같다고 했다.
건축이 불경기라고들 한다. 쉽지 않은 시기다. 그래도 아침 7시에 출근해 하루를 연다. 건축 현장이 일찍 시작하니까 그 전에 나가 있어야 한다. 5시쯤 퇴근하면 저녁 시간은 그래도 쉴 수 있다. “이제는 이 일이 좋으니까 하는 거죠. 그게 다예요.”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웃던 박 대표. 서른셋, 지게차 위에서 보는 풍경도 꽤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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