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북면 신당리, 김환대 경주문화유산답사 회장의 블로그 사진 속 공장 건물을 기준으로 찾아갔지만, 정작 고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고분이라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잡목과 잡풀이 봉분을 완전히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연락이 닿고 나서야 진입로도 없는 야산 위쪽에서 내려와 겨우 안내판을 찾을 수 있었다. 2022년 정비 당시 찍힌 사진을 미리 확인하고 갔지만, 눈앞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처참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신당리 1호 고분은 사적 제187호 헌강왕릉과 석실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기존 통일신라 고분에서 출토 사례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석주 3개까지 확인된 유적으로, 봉분 둘레의 3단 호석도 온전히 갖춰져 있어 통일신라 최고 지배층의 묘제를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로 꼽힌다. 현곡면 소현리 고분 역시 마찬가지다. 성덕왕릉 이후 신라 왕릉에서만 등장하는 12지신상 돌 7개가 출토된 왕릉급 유적이다. 일반 귀족 무덤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조다. 두 곳 모두 발굴 당시 학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곳이다. 그 역사적 무게를 알기에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더욱 참담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진입로도 없이 잡목 속에 잠겨 있다. 소현리 고분은 봉분 위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잡목들이 빼곡히 자라 있고, 신당리 1호분도 봉분을 덮은 잡풀이 무성하다. 12지신상 지대석과 3단 호석의 윤곽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보기 힘든 상태다.
전문가들은 방치가 지속될 경우 겨울철 동결 팽창으로 인한 석실 붕괴나 호석 이탈 등 물리적 훼손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회장으로부터 현장 소식을 들은 것이 취재의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 발굴된 다른 유적들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유적들에 관심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워낙 문화유산이 많은 경주이기에 개별 유적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재를 거듭할수록 그 물음은 다른 물음으로 바뀌었다. 관심이 없어서 관리가 안 되는 것인지, 관리가 안 되니 관심이 끊기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지금 손을 내밀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경주에는 문화유산이 너무 많다. 그 말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이 그렇다는 건 안다. 만약 선덕여왕이나 김유신과 연관된 곳이었다면 지금처럼 방치될 수 있었을까. 영화 한 편의 흥행으로 엄흥도 묘가 갑자기 세간의 주목을 받듯, 관심은 유적의 운명을 바꾼다. 국가유산 지정 여부가 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정 여부는 예산과 관리의 우선순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비지정 유적은 그 간극 속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지정도 안 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유적은 누군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경주시에 문의하자 소현리 고분은 국가철도공단 소유 부지여서 해당 기관에 조치를 요청해뒀다고 했고, 신당리 고분은 올해 본예산에 예초 비용을 편성했다고 했다. 이번 취재가 계기가 된 것인지,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인지는 모른다. 어느 쪽이든, 풀 한 번 베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철도공단 땅이라서, 예산이 없어서, 지정이 안 되어서. 그 어떤 이유도 방치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제초 작업에 그치지 않고, 유적의 역사적 가치에 걸맞은 적극적인 행정과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경주의 문화유산이고 우리 조상의 흔적이라면, 매년 정기적인 관리는 당연한 일이다.
경주는 역사의 도시다.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왕릉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았던 누군가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 진입로도 없는 야산 한편에, 이름도 찾지 못한 채로 말이다. 발굴 조사단이 떠나고,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취재 과정에서 강봉원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두 유적 모두 신라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볼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유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역사는 관심을 받아야 역사가 된다고. 발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땅속에서 꺼낸 유적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그 다음 과제다. 경주에는 발굴 이후 방치된 유적이 이 두 곳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사이, 역사는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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