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다시 산불
봄철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맞물리며 경북 경주시 일원의 산불 위험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96년 3월, 경주시 충효동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김유신 장군 묘역을 통째로 태웠던 악몽이 새삼 소환된다.
당시 경주신문 제269호(1996년 3월 6일자)에 따르면, 3월 4일 오후 1시 20분경 충효동 뒷산에서 시작된 불길은 서풍을 타고 수도산 김유신 장군 묘소까지 삽시간에 번지며 묘역을 완전히 소실했다. 50년생 이상 소나무 수천 그루도 함께 사라졌고, 장군의 위패가 봉안된 ‘숭무전’도 아슬아슬하게 화를 면했다. 소방차 10여 대와 헬기 3대, 관계자·주민 1000여 명이 긴급 동원됐으며, 4시간여 만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초동 대응의 허점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진화 헬기가 30여 분 이상 늦게 출동했고, 관계 기관 간 공조 체계도 미비했다. 아파트 공사장 자재가 도로를 막아 대형 소방차 진입이 지연됐으며, 일부 공익 요원들이 현장을 외면하고 ‘불구경’을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30년이 지난 올해에도 경주에서는 대형 산불이 잇따랐다. 지난 2월 7일 경주시 문무대왕면 입천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과 한파, 험준한 지형이 겹치며 약 20시간이 지난 8일 오후 6시경 주불이 잡혔다.
같은 날 양남면 신대리 마우나오션리조트 인근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산불은 4.2㏊를 태운 뒤 12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30년 전 김유신 장군 묘역을 태운 충효동 산불도, 올 2월 20시간을 넘게 타오른 문무대왕면 산불도 결국 건조한 봄 날씨와 강풍, 그리고 인재(人災)가 부른 사고였다. 문화유산이 밀집한 경주에서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의 뼈아픈 교훈과 최근의 사고를 거울삼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봄철 산불 예방에 각별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시민운동장, 30년째 ‘노후화’ 딱지
황성공원 내 시민운동장의 노후화 문제는 30년 전에도 지역 사회의 뜨거운 현안이었다. 1996년 3월, 시설안전기술공단의 정밀안전진단 결과 본부석 지붕과 2층 기둥에 균열이 발견됐고, 관람석 하단 발코니 슬래브는 손으로 건드려도 콘크리트가 떨어질 정도로 노후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주시는 대규모 행사 허가를 기피했고, 그해 10월 신라문화제 개막·폐막식 개최 여부를 놓고 지역 사회가 술렁였다.
다음은 당시 경주신문 제270호(1996년 3월 13일자)에 실린 기사 원문이다.
시민운동장 보수, 보강공사 시급 - 신라문화제 차질
시설안전기술공단-시공 및 보수, 유지관리 문제점 지적
이제까지 각종 운동경기와 행사를 치루어 온 경주황성 시민운동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봄을 맞아 시민운동장을 각종 운동경기 및 이벤트 행사장으로 사용허가를 요청하는 단체들에게 경주시는 안전상문제로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행사의 허가를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경주시에서 용역을 주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 결과 시민운동장 스탠드에 안전상 중요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설안전기술공단이 2월 말 경주시에 제출한 정밀안전진단에 의하면 시민운동장의 본부석 지붕과 2층 기둥에 균열이 발생해 장기적인 차원에서 불안전하며, 관람석 스탠드 하단에 위치한 발코니 슬래브는 사람의 손으로도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노후화 되어 시민운동장 구조물에 대한 적절한 보수, 보강 조치가 대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볼 때 지금 당장은 위험이 없다 해도 만약의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시민운동장을 전면 보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옴에 따라 선거를 앞둔 지역에 적잖은 파장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주시가 시민운동장에 대한 전면 보수공사를 시작하게 된다면 올 10월에 개최할 신라문화제 개막식과 폐막식 등에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 관례로 보아 안전상 문제가 있는 시민운동장 사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한편 경주시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관계자 회의를 갖는 등 대책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1979년에 준공된 이 시설은 이제 47년째를 맞고 있다. 공인 대회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각종 행사와 대회를 소화하는 상황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경주시가 종합운동장 건립 부지를 효현동 일원으로 선정하고 신축을 추진 중이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지연되고 있어 30년 전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삭발 투쟁에서 KTX 정차까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주역의 KTX 정차. 그러나 30년 전 이 땅에는 고속철도가 경주를 ‘관통’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열기가 타올랐다. 문화재 훼손을 우려한 지식인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수도 서울에서도 울려 퍼졌다.
경주신문 제270호(1996년 3월 13일자)에는 1996년 3월 11일 오전 11시 서울 한국일보 13층 대강당에서 약 300여 명의 ‘고속철도 경주 통과 백지화’ 서명 운동 대표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향후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성명서를 채택한 뒤, 16만8000명의 서명인 명부를 청와대와 관계 부처에 제출했다.
성명 발기인에는 종교계를 비롯해 시인, 문화재 전문가 등 종교·문화·학술계 저명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고속철이 경주를 관통할 경우 세계적 문화도시를 구조적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경주 시민사회는 역설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정부의 경주 통과 약속을 믿어 온 지역 주민과 단체들은 ‘경주 통과마저 백지화되면 모두 물 건너간 것’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경주시민단체협의회는 삭발 강경 투쟁을 선언하는 한편, 시민단체 대표들은 경주시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그해 3월 20일까지 정부로부터 확실한 답변을 받아낼 것을 촉구했다.
당시(1996년 3월) 김정수 경주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주시민이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찬성하는 단체도 회합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 후손을 위해 고속철을 꼭 유치해 훗날 부끄럽지 않은 세대로 고향을 물려주고 싶다”고 역설했다.
당시 경주청년회의소 서호대 회장도 시민 홍보와 함께 300만명 서명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시민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30년. 그 치열한 갈등과 협상의 결과, 지금의 경주역에는 매일 고속열차가 오간다. 노선이 조정되면서 문화재 보호와 지역 교통 편익을 동시에 달성하는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30년 전 삭발을 불사했던 반대 운동과 유치를 열망했던 찬성 운동 모두가, 오늘의 경주역을 만든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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