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여 년 세월을 품은 경주 인왕동 절터에 통일신라 석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3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최근 국가유산수리기술위원회가 복원정비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사적 ‘경주 인왕동 사지’ 내 석탑 재현 공사 안건을 심의해 조건부로 가결했다.
경주 인왕동 사지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절터다.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인용사(仁容寺) 터로 오랫동안 추정돼 온 곳이다.
2002년부터 약 10년간 이어진 발굴조사에서는 중문, 쌍탑, 금당, 강당, 회랑으로 구성된 신라 특유의 가람 배치가 확인됐다. 특히 일자(一字)가 아닌 ‘아’(亞)자 형태의 중문터, 백제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와축 기단 흔적 등 이례적인 유구들이 속속 드러나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 조각 등 인용사 터임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2016년 사적 지정 당시 명칭은 ‘경주 인왕동 사지’로 결정됐다.
조사 과정에서는 통일신라 양식의 석탑 부재도 모습을 드러냈다. 동탑 10점, 서탑 8점 등 총 18점으로,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덟 신인 ‘팔부중’(八部衆)이 섬세하게 조각된 상층 기단 면석 등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핵심 부재들이 포함돼 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다른 석조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거나 별도 보관 중이다. 발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박물관에 분산 보관된 탓에 유적 본연의 역사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주시는 이번 재현 사업을 통해 신재(新材) 약 24점을 추가 제작하고 기존 구부재(舊部材) 18점을 원위치에 이전·조립해, 인왕동 사지 일대에 높이 5.1m 규모의 삼층석탑 2기를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총사업비는 2억원으로, 국비 1억4000만원과 지방비 6000만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석탑 재현 시에는 지표면보다 약 10㎝ 높게 기단을 설정해 우수 침투를 차단하고 배수 체계를 갖추는 등 지하 발굴 유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이뤄질 예정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현재 부재들이 흩어져 있어 유구의 온전한 형태를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관람객에게 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재현 공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추진단 역시 “기존에 분산 전시 중인 부재들을 원래 위치로 이전·재현하는 것은 문화유산 복원 정비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사업 방향에 동의를 표했다.
다만 석탑이 실제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탑 부재가 국립경주박물관 등 국립박물관 소장품으로 분류돼 있어, 이를 활용하기 위한 별도의 기관 간 협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수리기술위원회 차원의 논의는 큰 틀에서 방향이 설정된 단계로, 이후 관계 기관과의 실무 협의 및 설계 검토 등 후속 절차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관계 전문가 자문에서 복원과 재현의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동탑의 팔부중상 배치에서 건달바와 아수라의 위치가 통일신라 일반 배치와 다른 점이 지적됐으며, 신재 제작 시 구부재와의 물성 조화 여부, 가조립 공정 비용의 현실적인 반영 필요성 등도 검토 과제로 거론됐다.
아울러 옥개석의 탈락 부위에 신재를 사용할 경우 구부재와의 색감 불일치가 우려된다는 점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신재 처리 시 구부재와 색감 차이를 최소화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또 팔부중상 가운데 부재한 3위(位)는 무리하게 재현하지 않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가유산수리기술위원회는 “석탑의 구조적 안정성, 복원 범위, 보강 공법, 가공 수준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위원회의 현장 기술 지도를 거쳐 단계적으로 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왕동 사지 석탑은 신라 사찰 건축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번 재현 공사가 순조롭게 추진될 경우, 오랫동안 박물관 한켠에 잠들어 있던 통일신라의 미학이 본래의 자리에서 다시 빛을 발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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