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라떼 시현을 해본다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줌마의 어린 시절 현실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것보다 좀 더 과거로 가기도 한다. 방학에 할머니 댁에 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아궁이(그나마 부엌 개조바람에 흙더미로 만들었던 부엌이 신식으로 바뀐 것이다)에 솥단지가 올라가 있는 부엌에서 만든 밥을, 양푼에 가득 담고, 숟가락을 다 같이 넣어서 먹었다. 개인 밥그릇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흙밭에 뒹굴던 돌멩이들을 모아서 공기 따먹기 놀이하고, 돌멩이가 적을 땐 땅따먹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주변에 모든 것이 놀거리였다. 참 잘 놀았다.
초등학생 시절, 도시라고 다르지 않았다. 야구공은 구경도 못했지만, 누가 고무공 하나를 가져오면 “하루”라는 맨손 야구 경기를 했고, 이도 저도 없으면 숨바꼭질했던 시절, 학교를 파하면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모여 정말 잘 놀았다.
잘 노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아줌마는 2~30대의 대부분을 사교육 현장에서 지냈다. 명문대에 들어가면 동네에 현수막이 걸리고 동네잔치를 하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은 것을 비난할 수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명문대는 곧 성공을 의미하는 시대에 살았던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웠으니까. 부모들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는 시대를 살았고, 명문대만 들어가면 좋은 직장이 보장되고,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면 아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래서 점수를 잘 받는, 높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로 키워졌다.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좀 더 높게’를 지향하며 아이들은 선행하게 되었고, 놀이보다는 학업에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의 유일한 쉼은 스마트폰이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사이나, 밥을 먹는 시간, 잠깐의 시간이 남으면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연다.
공공장소에 가보면 아줌마는 무섭다. 놀이터에 있는 아이 중에서 노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친구들뿐이다. 초등생쯤 된 아이들은 그네나 미끄럼틀 안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본다. 그뿐인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가족 단위 손님들은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음식이나 음료가 나오기 전에 가족들의 풍경은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가족 간의 대화는 없다.
무섭지 않은가?
아줌마는 아이들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키운다. 사교육 최고 정점에 있던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때는 신나게 놀면서 소통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시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있어야 하고, 기초지식이 있어야 하니 독서는 꼭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줌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없이, 자기 용돈으로 간식을 사 먹고, 독서를 하며, 신나게 논다. 공부는 최소한의 양만 개인이 알아서 한다. 요즘 아이들 기준으로 하면 공부라고 하기도 참 민망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아이들 아빠가, 저렇게 공부 안 해도 되냐고 걱정스레 묻기도 했었다.
큰 아이들이 초등학생 기간에 공부한 영어량은 영어 공책 두 권 정도 쓴 것이고, 영어 단어는 2~300단어가 전부다. 독서는 셀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집에서 스마트폰도 없고, TV도 볼 수 없으니,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소꿉놀이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며, 그마저도 심심하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는다.
병원이나 공원, 자투리 시간마다 책을 읽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주변에서 말한다. 어떻게 저렇게 키웠냐고.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책을 좋아하죠?”
“스마트폰이 없으면 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아줌마는 묻고 싶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스스로 장만했나?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요금을 매달 내고 있나? 그건 부모가 해준 것이다.
대체로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원한다. 그것도 강력하게. 쌍둥이 중에서 아들이 1학년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할머니 질문에 ‘핸드폰 사주세요.’라고 말했다. 할머니 집에서는 TV도 맘대로 볼 수 있고, 할머니가 웃어른이라는 것을 아이가 인지하고 있기에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할머니의 힘을 빌려,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손자를 무척이나 아꼈던 할머니는 답했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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