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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부윤 홍익삼 읍성에 일승각을 세우다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19호 입력 2026/02/12 13:51 수정 2026/03/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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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확대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
경주읍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많이 파손되었고, 여러 부윤이 고을을 다스리며 조금씩 중수하며 복원하려 애썼다. 부윤 전식(재임1631.12~1633.4)은 읍성의 남문을 중수, 차례로 삼문을 보수. 부윤 정홍제(재임1744.10~1746.03)는 성을 개축하고, 남문의 누각 완공. 부윤 홍익삼(재임1754.04~1755.07)은 내아와 일승정(一勝亭)·함벽정을 신축, 세금당·금학헌·이요당 등을 중수. 1755년에 경주부윤 이수득(제임1755.10~1757.08)은 남문루 중건. 부윤 조기영(재임1869.01~1871.07)은 성첩과 포군 수리하는 등 시기별로 경주읍성에 대한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제강점기에 읍성 남문을 철거하고 남쪽으로 도로를 확장하는 등 경주읍성이 크게 훼손되었고, 지금 다시 큰 비용을 들여 다시 옛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경주읍성 내 관아 동쪽에 금학헌(琴鶴軒), 금학헌 동쪽에 광풍루(光風樓), 금학헌 남쪽에 제승정(制勝亭)이 있는데, 지금의 일승정, 일승각(一勝閣)이다. 이 외에도 양무당, 망월루, 광풍루, 진남루, 객사, 진고당, 동헌, 내전, 장교청, 전결소, 필야헌 등 건물에 대해 연구와 고증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 여주이씨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이 「일승각상량문(一勝閣上樑文)」을 지어 건축물의 존재와 내력을 밝혔다.

이재영은 증조부 이헌선(李憲先), 조부 이정익(李鼎翊), 부친 이악상(李岳祥)의 가계를 이루고, 음관으로 1871년 가감개(假監改)에 올랐다. 늦은 나이에도 학문에 몰두하였고, 특히 『논어』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 앞서 1754년 경주부윤 홍익삼(洪益三,1706~1756)이 제승정을 중수해 일승정이라 하고, 이후 고종년간에 부윤 김원성(金元性.재임1882.11~1885.03)이 중건해 일승각으로 하였다.

남양홍씨 홍익삼은 1732년 진사에 급제, 1741년에 정언·사서, 1745년에 부교리·교리·헌납, 1746년에 부수찬·수찬, 1747년에 헌납·사서를 거쳐 필선·사간을 역임하였다. 관직은 청렴하고 기개가 있어 일처리가 명쾌하였다. 고을을 다스림에 호남 선비의 과거를 관장하니 선비들이 그 공정함을 칭송하였고, 산간 열 고을의 백성을 위해 토지를 조사하여 면전(綿田)의 재해를 청하였으며, 경주부를 다스리며 정사에 정직하고 소신이 있었다.

김원성은 1825년에 태어났고, 1848년 증광시 진사에 급제, 홍문관 교리 수찬, 정언, 전라좌도 암행어사, 부사직 등을 역임하였다. 이재영이 부연 김원성과 주고받은 서신이 전하는데 “정당(政堂)이 화재를 입은 것은 실로 이 고을의 불행한 운이지만, 중건의 일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중대사입니다. 듣기에 근래 공사가 대강 이루어져,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온 고을이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공사를 감독하고 신칙을 거듭 내리시는 과정에서 수고와 심려가 적지 않으셨을 줄로 생각되니, 우러러 걱정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政堂回祿之災 係是邑運之不幸 而重建之擧 不容少緩 近聞工役粗就 衆心歡喜 闔境所同 伏想董飭申令之際 恐不免勞費心筭 仰切貢慮).”라고 화재로 소실된 관아의 건축물을 중건하는 일에 대해 걱정과 감사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상량문에 대해 언급하였다.



일승각 상량문 - 내헌 이재영


무릇 땅에는 고금의 구분이 없으나, 일흔 고을 가운데 이름난 고을은 옛 모습을 유지하였는데, 운에 따라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있어, 이백 년 뒤에야 정당(正堂)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화재의 재앙을 물리치고, 집을 세움에 점을 쳐 길함을 얻었으니, 경사스러운 고을 옛 서라벌의 나라다. … 이곳 동경의 관아 중심 건물인 ‘일승정’은 부윤이 공무를 보는 곳으로 홍후(洪侯:홍익삼)가 비로소 창건하였다.

 

우연히 흉년과 가뭄, 화재와 변란의 재앙을 당해 깊은 밤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망경헌(望京軒) 아래는 순식간에 단청한 들보가 재가 되어 흩날리고, 풍월루(風月樓) 앞에는 무너진 섬돌이 불타 문드러진 것만 보였다. 불길의 형세에 최악의 사태는 간신히 피했으나, 들보가 타는 재앙은 성도(成都)에 있는 물로도 구할 수 없었다. 사신의 왕래가 빈번하여 접대에 시달림이 많음을 탄식하고, 문서는 쌓여 가는데 이를 처리할 곳이 없었다. 이때 고을의 수령 김 상공[김원성]이 차관의 지위에서 부절을 받아 한 고을을 잘 다스렸다. … 생각하건대 관아는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으니, 재건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는가. 길가의 집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삼 년을 들여 짓는데, 관아의 재건은 오직 신속함이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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