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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음’이 ‘차별’의 변명이 되어선 안 된다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05호 입력 2025/10/23 14:23 수정 2025/10/23 14:27
④ 노후 도시, 제도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천년고도의 ‘물리적 노후화’와 인구 37.4%의 ‘구조적 노후화’

 

석굴암에 가기위해 올라가야 하는 계단.<사진=경주지킴이woon5400>확대
석굴암에 가기위해 올라가야 하는 계단.<사진=경주지킴이woon5400>
 경주는 노후 도시다. 오래된 거리와 건물, 문화유산이 빚어낸 물리적 제약이 있고, 시민 10명 중 4명(37.4%)이 이동약자인 인구 구조도 겹친다.

 
조례 제정(2024)과 5개년 기본계획 착수로 전환의 깃발은 올랐다. 그러나 길이 막히는 지점은 여전히 같다. 규정과 절차의 경직성, 보존을 앞세운 관성, 그리고 ‘나와 상관없다’는 인식은 시설을 더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와 인식의 동시 전환이 필요하다.


김헌덕 경주시 무장애도시조성위원회 부위원장은 중간보고회에서 이렇게 잘랐다. “제도와 시설 정비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는 무장애 환경이 핵심이다. 책상 위 통계보다 현장 조사와 당사자 목소리가 먼저다.” 그의 주문은 방향 전환이다. 부서별로 흩어진 사업을 장애인 표준 설계 코드로 통합 실행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관점을 넣으라는 것. 계획의 실행력을 숫자가 아니라 작동성으로 증명하라는 제안이다.


이번 기사는 그동안 관계자 및 현장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석굴암 일주문(출입구)은 누구나 갈 수 있게 돼 있다. <사진=경주지킴이woon5400>확대
석굴암 일주문(출입구)은 누구나 갈 수 있게 돼 있다. <사진=경주지킴이woon5400>


현장의 저항, 제도 해석에서 시작


현장의 저항은 대체로 제도 해석에서 출발한다. 건축 실무자는 “엘리베이터 하나 달자고 나서면 건물 전체를 현행 BF(Barrier-Free) 기준으로 갈아엎으라는 요구가 붙는다. 엘리베이터 하나가 건물 전체 공사가 되는 것이다. 복도 폭, 화장실, 출입구까지 전면 개보수다. 엘리베이터 증설을 건물 전면 개보수로 해석하는 관행 때문에 개선이 좌초된다”고 말했다.


해법은 명료하다. 엘리베이터·경사로 같은 이동권 핵심 동선에 한해 해당 구간의 법정 기준을 우선 충족하도록 허용하고, 나머지는 단계적 이행계획으로 묶는 방식이다. 전체를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불가라는 해석을 접어야 개선 포기를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 문화기획자는 “세계유산 보호구역의 공연·행사는 원칙적으로 현상변경허가 대상이다. 문제는 보존 자체가 아니라 해석과 절차의 경직성이다. 가역적·비관입 임시 장치는 보존을 해치지 않는다. 조도·소음·하중·원상복구를 수치로 관리하고, 허가는 간소화 트랙으로 돌려야 한다. 유산의 원형은 지키되, 시민의 접근권은 설계와 운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보존의 원칙은 존중하되 이동의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세계유산이라 손 못 댄다’는 말이 공사 중단의 만능키가 되어선 안 된다. 곳곳에서 안전 동선이 끊겨 휠체어의 이동을 막는 장면이 반복된다. 가역 경사로, 착탈식 손잡이, 저충격 포장 같은 비훼손 보완이 최소 대안이다. 쟁점은 보존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무엇을 지키면서 어떻게 접근을 열 것인가로 논점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주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21.05%로 전국 평균 약 38.9%에 못 미친다. 외곽일수록 저상 차량이 드물고, 환승 지점의 단차·경사 관리가 부실하면 저상의 효과는 반감된다. 정류장 플랫폼 표준화, 보행 접속로 보정 등 보조 인프라를 함께 손봐야 체감이 생긴다는 제안이 나왔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이용자들은 “횡단보도 음성유도기 고장이 잦고 버튼 앞을 입간판이나 자전거 거치대가 막아 접근도 어렵다”며 장비 수량이 아니라 동선 설계와 유지관리 체계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점자블록은 역설의 상징으로 거론됐다. 한 현장 관계자는 “두 줄 이상 선형블록 사이로 휠체어 바퀴가 빠져 멈추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설치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감리 실무자는 “점·선·면의 기능 구분 없이 ‘블록=선’으로 처리한다. 설계 체크리스트와 현장 샘플 검수 없이 준공을 받아주니 동일 오류가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절차부터 바꿔야 한다. 설계가 다 끝난 뒤 마지막에 자문을 구하니 늘 사후 보정에 그친다”며 “기획·설계 초반에 당사자와 전문가가 도면을 함께 보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 보행 여건의 자잘한 결함도 매일의 벽이 된다. 보도 단차 2~3cm, 전봇대·맨홀 융기, 포장 중첩으로 생긴 미세 단차가 휠체어 전복 위험을 키운다.

 
활동가는 “특히 맨홀 링 주변 침하로 꺼짐·튐이 반복된다. 공사 후 최종 레벨링을 검수 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차로 음성유도기는 고장률과 접근 장애가 동시에 지적됐다. “장비를 늘리기보다, 버튼 전방 1m 무장애 공간 확보와 월간 점검·QR 신고 체계 같은 운영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소규모 건축주들 사이에는 “우리 건물엔 장애인이 안 온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그러나 배리어프리는 장애인 전용이 아니다. 노인, 임산부, 유모차, 일시 부상자까지 포함하는 도시의 기본값이다. 무장애는 배려가 아니라 권리며 결국은 모두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김유신묘 입구는 평탄하지만 봉분으로 이어지는 길은 계단뿐이다. <사진=경주지킴이woon5400>확대
김유신묘 입구는 평탄하지만 봉분으로 이어지는 길은 계단뿐이다. <사진=경주지킴이woon5400>


정책 제안은 세 갈래로 모인다


첫째, 제도를 사용자 중심으로 재정렬한다. 시 조례에 ‘이동권 핵심설비 우선적합 심의’를 신설해, 엘리베이터·경사로 등 핵심 구간이 법정 기준과 안전성을 충족하면 인허가를 우선 허용한다. 도로·공원·주차장 등 도시계획시설에도 설계 단계의 배리어프리 자문을 의무화해 준공 후 보정이 아닌 사전 예방으로 전환한다.


둘째, 보존과 향유의 합의를 제도화한다. 국가유산청 협의 절차 안에서 가역적 보완(가설 경사로·착탈식 손잡이·저충격 포장)과 대체 경험(촉각 지도·보조 해설)을 표준 옵션으로 명문화하고, 처리 여부의 이분법을 벗어나 접근성을 어떻게 구현할지 논점을 전환한다.


셋째, 즉시 체감과 지속 장치를 함께 건다. 30일 플랜으로 점자블록 위 입간판 전면 철거, 핵심 관광동선 국부 평탄화(맨홀 링 보정·소단차 제거), 리프트 차량 전용 승하차 베이(3.5m×12m) 거점별 확보를 진행한다.

 
성과 평가는 설치 수량이 아니라 연속 이동거리, 신호 적합률, 민원·사고 감소율로 전환한다. 휠체어 경로·장애인 화장실·충전소·저상버스 운행 정보를 지도 기반 통합 서비스로 묶어 이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온라인 중심 예약·티켓팅에는 현장 즉시 발권·전화 대행 등 디지털 약자 보조라인을 병행한다.


경주가 밝힌 연 5000만 방문은 목표다


목표가 숫자로만 남지 않으려면, 도착 지점부터 핵심 이용 공간까지의 연속 동선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 오늘의 비장애인은 내일의 이동약자다. 37.4%는 소수가 아니라 도시의 표준이다. 지금 필요한 건 실행과 연결이다.


이어서 5편은 지속가능한 무장애도시 경주, 미래를 향한 과제를 주제로 행정과 시민사회 협력 모델을 구체화하고, 상시 모니터링·공개 점검 체계를 제안해 경주가 모두에게 차별없는 포용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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