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학생 인솔차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를 방문하였다. 이젠 우리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물론이고 오사카의 돗돈부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한국인도 눈에 많이 띄었지만, 곳곳에 중국인이 많았다. 관광이 전공인 관계로 지금 일본이 비교적 국제관광객으로 붐비는 이유를 따져보게 된다. 불과 십여 년 전 일본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범국가적으로 관광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그 효과는 별무였다. 그러던 것이 저가항공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섬나라 일본이 가지는 구조적 장애로 여겨졌던 접근성이나 가격경쟁력까지 생겼다. 몇 가지 이유가 더하여 일본의 국제관광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중국인이 일본을 많이 찾는 이유야 여럿 있을 수 있다. 언어계통상 일본은 나름 일본화한 한자이긴 하지만 한자를 많이 쓰고 있어 가히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간판이나 길 안내판을 볼 때 한자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중국인이 일본을 여행하면서 딱히 일본어를 몰라도 소통이 수월하겠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물론 한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어나 글 속에 한자가 들어있어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엔 한글이 더욱 좋을 수 있다. 더불어 심지어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까지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사람에겐 즉각적으로 소통하기 쉽지 않다. 복잡한 기호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관광을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할 때, 동질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관광에 편리하고 유리하다. 한자는 방대하게 외우고 익혀야 하는 글자라 배우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한자가 어려워서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쉬운 한글이 있음에도 여전히 문맹률이 높으니 박정희 대통령은 효율을 중시하는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한글 전용정책을 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문맹률을 없앴다. 반면에 1970년부터 72년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한자를 배우지 않아 거꾸로 한자 문맹자가 더러 있다. 대략 50년대 중반 출생한 사람이 해당되겠다. 언어는 뇌구조를 지배하고 인간의 사상을 좌우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학교에 일본어학과가 없는 이유이다. 한 세대 이상 일본어로 사고하는 구조와 사상을 국민의 관념 속에서 제거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한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세대 기간 이상 한글 전용으로 쓴 결과, 이제 한글로 한국인의 정체성이 우뚝 섰다. 한류로 일컬어지는 K컬처와 콘텐츠의 상당부분이 한글과 관련지어진다. 어느덧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도 생기고 세계적 문화에 비길만한 내공도 커졌다. 바야흐로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이제 내 문화 남의 문화를 구별하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의 시대는 지났다. 당연히 남의 문화를 그들의 가치로 바라보려는 문화상대주의 의식과 더불어 내 것 남의 것 따지게 되면 이젠 세련되지 못하고 편협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덧 국민의 의식 속에서 잊혀져 가던 한자와 일본어가 국제화란 이름으로 이젠 하나의 다양한 콘텐츠로 이해되고 수용된다. 한자 배우기라는 작은 붐도 있다. 그간 제법 잊혀졌던 한자 공부는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한자는 오랜 역사 동안 한자로 이루어져 왔던 우리의 전통문화의 이해와도 연결된다. 비교적 한자에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도 여러 학습매체가 있어 자연 새로운 한자가 있으면 눈에 들어온다. 차제에 평생 처음 읽어보는 한자가 있어 소개해 본다. 상두주무(桑土綢繆)라는 단어이다. 상두주무, 뽕나무 뿌리의 껍질을 뜻하는 ‘桑土’는 상두라고 읽는다. 흙토(土) 자를 두자로 읽기엔 낯설다. 뽕나무 뿌리껍질은 습기를 막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무’는 칭칭 감는다는 뜻이다. 올빼미는 장마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새는 곳을 막는다. 닥쳐올 재앙을 대비해 미리 꼼꼼하게 준비한다는 뜻이다. 물론 젊은 세대에겐 한자가 영어보다 더 낯선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우리 주변에서 중국어가 쉬이 들리고 또 한자가 쉬워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으로 상징되는 관광의 시대에 관광과 한자라는 소통수단과 언어를 생각해본다. 논의 중에 어려운 고사성어로 얘기가 비약 발전하였지만, 이왕지사 한국사회에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어려움이 많은데 미리 대비할 일이다.
매년 2학기에는 고고학 실습 과목을 가르쳐 오고 있다. 실습 수업이지만 유적지를 찾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과 방법론에 대해 먼저 강의실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야외에 나가서 지도 보는 법, 나침반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아보고 또 유적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지도에 표기하는 법을 실습해 본다. 그러면서 동서남북은 어느 방향인지, 유적지는 주로 ‘어디’에 있는지, ‘왜’ 거기에 있는지에 대해서 배산임수(背山臨水)와 관련하여 논의한다. 실습수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야외에 나가서 이곳저곳을 살피고 견학과 답사를 많이 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뒤에 있는 외외 마을을 지나면서 할머니 한 분과 마주쳤다. 마침 그곳에 흙담이 있길래 학생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내가 큰 소리로 “할머니, 여기 담쌓으면서 흙에 잔자갈은 왜 넣었습니까”라고 물었다. 할머니께서 바로 “그래야 야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모든 것이 섞여야 단단해지는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세상 원리를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흙벽돌을 만들면서 짚을 썰어 넣는 것이나, 초가집이나 기와집 벽을 진흙이나 회로 바를 때 짚 혹은 털을 각각 섞어서 반죽하던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토기나 기와를 만들 때도 점토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보강제로 모래나 바위를 잘게 부순 것, 토기나 기와를 빻은 가루, 혹은 조개 가루를 점토와 섞는다. 그렇지 않으면 토기나 기와를 성형해서 말리거나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 갈라지거나 터지게 되어있다. 비 온 뒤 흙탕물이 고여있다가 물이 증발한 이후 침전된 황토에 금이 가고, 심한 가뭄 후에 논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다. 점토가 다른 물질과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금은 무르지만 24K 18K는 아주 단단하다. 구리도 물렁하지만 여기에 주석 혹은/그리고 아연을 섞으면 단단한 청동이 된다. 콘크리트, 도자기, 아스팔트, 각종 금속 등 이 세상 대부분 물질이 이물질과 섞이게 되면 단단해진다. 그래서 짬뽕과 퓨전(fusion) 음식도 더 맛이 있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단일민족보다는 다민족 사회가 더 강하다. 미국이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를 리드하고 있을 만큼 강한 이유도 다양한 인종들이 뒤섞여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어서 이들과 피가 섞이다 보면 강한 나라가 되리라고 예측된다. 우리나라에서 동성동본 간 금혼법이 폐지되어 원하면 혼사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성동본 간에는 가급적 혼인을 피하는 관습이 있다. 과거 각 마을에서도 며느리나 사위는 같은 동네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했다. 그러한 것도 강한 유전인자를 가지기 위한 장치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교수를 채용할 때 가능하면 본교 출신자를 배제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필자와 친한 친구 한 명이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부 작은 대학 교수로 갔다. 몇 년이 지난 후 모교에서 이 친구의 전공인 중미(Meso-America) 고고학 분야 교수 채용 공고가 났다. 이 친구는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도 지원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단호하게 “안 된다”라고 하였다. “왜 안돼요”(Why not)라고 물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다른 혈통이 필요하다”(We need a different breed)라고 했다는 것이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지도교수께서는 내게 “지원은 해도 좋다.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는 본교 출신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고 하였다. 결국 필자도 지원하지 않았다. 미국의 대학사회에서 ‘동종교배’를 추구하지 않는 이러한 불문율이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提高)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섞여야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양남 주상절리를 포함한 경주·포항·영덕·울진의 경북 동해안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지질공원은 특별한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또는 아름다움을 지닌 지질공원으로, 지질학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이사회는 최근 심의를 열고 경북 동해안 일원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내년 5월 프랑스 파리서 열리는 유네스코 봄 정기총회 집행이사회에서 최종 승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이번에 예비결과를 통과한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경주·포항·영덕·울진 일원 2694㎢다. 지정 장소는 양남 주상절리를 포함해 울진 성류굴·왕피천·평해 사구습지, 영덕 해맞이공원, 포항 호미 반도 둘레길 및 여남동 화석 산지 등 총 29곳이다. 이 가운데 경주지역은 △양남 주상절리 △남산 화강암 △골굴암 △문무대왕릉 등 총 4곳이 포함된다.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한반도 최대 신생대 화석 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우수한 학술 가치, 관리 운영구조 등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세계지질공원에 지정될 자격은 충분하다. 종유석·석순·석주·동굴진주 등 다양한 생성물이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류굴은 길이가 870m에 이른다. 경주 양남주상절리도 부채모양을 비롯해 위로 솟거나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양 등 다양한 주상절리로 희귀성이 높다. 경북 동해안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국내에서는 여섯 번째다. 국내 세계지질공원은 2010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2017년 경북 청송, 2018년 광주 무등산, 2020년 강원 한탄강, 2023년 전북 서해안이 지정됐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경주는 다른 문화유적과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켜 경제적·문화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근의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연계할 경우 높은 관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지질공원 인증 후 4년마다 심사하게 된다. 심사 결과 지적된 사항이 2년 내 시정되지 않을 경우 세계지질공원 자격이 박탈된다고 한다. 내년 5월 열릴 유네스코 봄 정기총회 집행이사회에서 최종 승인까지 경북도와 경주 등 해당 지자체가 철저한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또 사후 관리와 연계 관광 등 세계지질공원 승인 이후의 정책들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문해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자가 많이 포함된 우리나라 말의 특성도 있지만, 스마트 기기 보급 확산과 활발한 미디어 매체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글을 직접 읽거나 쓰거나 생각할 시간도 없이 영상으로 정보가 전달되며 발생하는 문제다. 이에 미국 일부 주(州)에서는 필기체 교육이,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종이책·손글씨 교육이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아날로그’식 교육이 필요한 시대이다. 영상은 시청자가 생각하고 사실(Fact)을 확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반면 종이책과 신문 등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판단과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문해력과 창의력 함양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능력으로 교육적인 측면은 물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다. 경주신문은 2018년부터 지역신문발전기금 사업으로 지역 학생들에게 신문활용교육(NIE)을 제공하고 있다. 초·중·고교에서 시작된 NIE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교육 대상을 지역아동센터 학생들로 변경했다. 학교에서 교육도 좋지만 학생들이 학원 등으로 일정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진다는 측면에서다. NIE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신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쓰거나 말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신문을 읽고 이해함으로써 문해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NIE 프로그램의 유행은 이미 지났다고 많은 이들이 판단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신문 매체가 아닌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 아날로그식의 읽기와 쓰기가 스마트 기기를 통한 교육보다 글에 대한 집중도와 이해도 측면에서 효과가 좋다는 것은 겪어본 사람들은 충분히 알 것이다. 유행은 계속 돈다고 흔히 말한다. 교육 방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스마트 기기는 계속 발전하고 더욱 확산할 것이지만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도구로서 적합한지는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초등학교 4학년생들한테 ‘눈금’이 뭔지 물었다. 그랬더니 한 남학생이 자신에 찬 얼굴로 “피곤하거나 자다 일어나면 생기는 눈에 생기는 이물질”이란다. 그럼 ‘용수철’은 뭐냐니까 옆에 있던 여학생은 “약간 남자 사람 이름 같다”라고 했고, 그 말이 그럴듯해 보였는지 아까 그 남학생은 “아빠 친구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방송에 나온 실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어떨까? 단톡방에서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발췌한 내용들이다.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은 하루에 과제점수가 20점씩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 바랍니다” 아마 과제물 제출률이 저조하니까 조교가 올린 공지글인 모양인데 급하게 이런 답글이 달린다. “(조교님이)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잖아요!” 맥락상 상당히 억울하다는 투로 읽힌다. 이때 대화방에 있던 다른 학우가 “금일은 오늘이라는 뜻”이라고 정정을 하자, 그 억울한 학생이 또 떼를 쓴다. “학생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시면서 오해 소지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신 말고도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는 학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면서... 우리말에는 한자어로 된 어휘가 상당히 많은데, 자신도 ‘평가’나 ‘위치’ 같은 용어를 쓰면서 왜 유독 금일(今日)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조교 형님이 잘못한 거라 몽니를 부릴까? 금일을 금요일의 준말로 알고 있었다면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이 헤프닝이 서울대에서 벌어졌다면 좀 다른 이야기다. 서울대생인데도 이렇다면 곤란하단 말이 아니라, 그 초등학생이 그렇게 그 대학생으로 커간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다. 나이나 교육의 질 고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어휘력, 더 나아가 문해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그 여파는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리한 코로나 사태에 지친 의료진과 국민들 피로감을 잠시나마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정부는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적 있다. 토요일부터 그다음 월요일까지 3일간의 연휴였는데, 문제는 ‘사흘’을 4일로 착각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는 거다. “왜 한자(?)를 써서 사람 헷갈리게 하느냐”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 해프닝이 있고 3년이 지나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쳐봤더니 사흘을 4일로 착각한 학생들이 여전히 많더란다. 사흘의 ‘사’자가 숫자 4를 닮아서라는 ‘창조적인’ 이유를 달지만 웃지 못할 촌극 수준을 이미 넘어선 듯하다. 그럴듯한 이유야 많겠지만 이 같은 사회 병리적 현상은 환경 요인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스마트 기기 발전과 유튜브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우리 삶의 편리함과 정보적 유익함을 주는 동시에, 그 주된 방식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이제 빼곡히 적힌 글을 꼭 읽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차례라는 말이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진 사람들(특히 청소년)은 “굳이?!”라는 부사 하나로 답할 것이다. 두어 시간짜리 영화보다 이삼십 분으로 압축된 영화 리뷰를 선호하는 시대에서는 이상의 어휘력이나 문해력 논쟁이 엉뚱하게 방향을 틀기도 한다. 어느 음식 배달 기사가 배송 완료 문자를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또 주문해 주세요?”하고 보냈다고 한다. 생뚱맞은 물음표는 기사가 웃는 이모티콘을 주문자한테 전송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주문자는 배달비 지급할 테니 반품 및 환불 처리를 해달란다. 그의 말마따나 ‘이상한’ 문자에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에서다. 이모티콘이나 부호 하나에도 없던 감정을 부여해 오독(誤讀)하는 시대다. 사실 우리는 고의적인 오타로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민족이었다. ‘난 감히 엄해 볼 원두조차 못 내는 여잔데(해석: 내가 감히 원해 볼 엄두조차 못 낼 수준의 여성인데)!’라거나 “찍 죽진해 주세요(쭉 직진해 주세요)!”식의 문장은 우수한 한글을 구사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챗봇이 한국인들만이 즐기는 암호문(!)을 해독해 버렸다. 원문 그대로 옮긴다. “솔히직 글배열자 이식런으로 바꾼음다에 된쇼뤠꺄쥐 츄갸해뵤리myun G들이 Auto-K 읽을 gun day”(해석: 솔직히 글자배열을 이런 식으로 바꾼 다음에 된소리까지 추가해 보면 AI들이 어떻게 읽을 건데?) 정말 큰일이다.
출토 유물 중 목선과 주령구가 특히 주목된다 출토품 가운데는 목선을 비롯하여 통일신라 건물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건축 부재의 파편, 당시의 글이 적힌 목간(木簡), 그 밖에 신앙이나 생활에 관계되었던 유물들이 많아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 유물 중 목제품은 많지 않은데 이것은 우리나라 토양이 산성인 탓에 땅에 묻혔던 것이 오래 보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지에서는 바닥의 갯벌층 속에 많은 목제품들이 출토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외부의 공기가 차단된 뻘층에 묻혀서 부식이 크게 되지 않은 상태였다. 출토품 가운데는 목선을 비롯하여 통일신라 건물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목재 건축 부재의 파편들, 당시의 글이 적힌 목간(木簡)들, 그 밖에 신앙이나 생활에 관계되었던 유물들이 많아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주요 유물로는 건축 부재 파편인 난간, 부연(浮椽), 첨차(檐遮), 주두(柱頭), 연목(椽木), 평교대(平交臺), 나무배(木船), 노(櫓), 물마개, 주사위[酒令具], 남근(男根), 인물상(人物像) 등이 있다. 월지에서 출토된 목재 중 가장 주목을 받고있는 것이 주령구이다. 주령구는 정사각형 면 6개와 육각형 면 8개로 이루어진 14면체로 참나무로 만든 일종의 주사위이다. 주사위는 굴렸을 때 각 면이 나올 확률이 같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다면체라야 한다. 수학적으로 정다면체는 6, 8, 12, 16, 20의 다섯 경우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신라인은 각 면의 면적이 거의 같은 14면체 주사위를 창안한 것이다. 이 14면체 주사위는 높이 4.8cm로 정사각형과 육각형의 면적의 차이가 0.01㎠로 거의 같았다. 1987년 단국대 수학교육과 이강섭 교수가 학생들과 이 주사위를 7000번 던져서 각 면이 나오는 통계치를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각 면이 500번에 수렴하는 것을 확인했다.(7000번 / 14면 =500번) 주령구는 정삼각형의 일부를 잘라내어 육각형으로 만들고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으로 14면체를 만들었는데 정다면체가 아니라서 각 면이 나올 확률이 다른데 주령구는 각 면이 나올 확률이 1/14이 나온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러한 형태의 주사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14면체 주령구 각 면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금성작무 (禁聲作舞)- 소리내지 않고 춤을 추기, 중인정비 (衆人朾鼻)- 다른 사람 코 때리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크게 웃으면서 술잔 비우기, 삼잔일거 (三盞一去)- 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비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하고 술 마시기,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뚝을 구부린 채 다 마시기,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을 간지럽게 해도 가만히 있기, 임의청가 (任意請歌)- 아무나 노래시키기, 월경일곡 (月鏡一曲)- 달을 보면서 노래 한 곡 부르기,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 수 읊기, 양잔즉방 (兩盞則放)- 두 잔이 되면 즉시 마시기,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운 것도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이라는 노래하기 또한 이 주령구의 전개도를 그려보면 그 형상이 거북이가 된다. 그런데 ‘용왕신심(龍王辛審)’ 또는 ‘신심용왕(辛審龍王)’ 등의 명문이 새겨진 토기들이 이곳 월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 토기들은 용왕전에서 제기로 사용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주령구의 전개도와 토기의 명문과의 관계도 흥미를 끌고 있다. 주령구의 전개도인 거북과 명문 토기의 용을 조합해 보면 별주부전이 연상된다. 여기에 무슨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이 주령구 보존처리 과정에서 불에 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출토된 주령구 속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서 특수 제작된 전기 오븐에 넣어 건조하는 과정에서 온도조절기 고장으로 과열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주령구는 복제품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김복희 쌀 씻는 소리 오이를 깎는 소리 수박을 베어 무는 소리 미닫이문이 드륵드륵 닫히는 소리 딱 하나면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까 앞으로 내가 듣지 못할 것 남도 듣지 말았으면 하는 것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조용히 우는 소리 틀어 놓은 텔레비전 위로 막막한 허공의 소리 손톱으로 마른 살갖을 긁는 소리 죽은 매미를 발로 밟는 소리 이것 중에 무엇이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이런 거 맞나요? 나는 물었고 대답은 없었다 누가 벌써 대답을 가져간 것일까 다 두고 갈 수는 없나요? 아주 조용했다 누가 벌써 가져간 게 확실했다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지 않을 때의 기쁨 잠든 사람이 따라 하는 죽은 사람의 숨소리 죽은 다음에도 두피를 밀고 나오는 머리카락 소리 벌려 놓은 가슴을 실로 여미는 소리 세상에서 소리를 하나…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소리 하나 들고 우린 먼 곳으로 가는 걸까 단정한 듯 입체적인 시다. 그것은 먼저 “딱 하나면 가져갈 수 있다면/무엇을 가지고 갈까”, “세상에서 소리를 하나… 데리고 갈 수 있다면/어떻게 할래?” 유사한 듯 다른 화자의 물음을 핵심으로 시가 구성되고 있다는 점부터 그렇다. 2연 초반부와 마지막 연에서 배치된 그 물음이 나머지 구절을 끌고 가는 형식을 구사한다. 소리의 선택지는 쌀 씻고 미닫이문이 닫히는, 일상적인 소리(1연)에서, “손톱으로 마른 살갗을 긁는” 죽음에 다가가는 마른 생의 고적한 소리(3연), “벌려 놓은 가슴을 실로 여미는” 죽음 이후의 소리(7연)로 진전된다. 이런 세계를 표현하려고 시인은 이에 걸맞은 독백도, 주체와 객체가 피드백하거나 중간을 걷는 화법도 자재로 구사한다. 예컨대 소리를 하나 선택하고 “이런 것 맞나요?/나는 물었고/대답은 없었다”에서 내가 대화하는 대상은 산 자이기보다 죽은 자, 천사, 귀신에 더 가깝다. 현실과 환상, 삶의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화법이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 딴청을 피우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앞으로 내가 듣지 못할 것/남도 듣지 말았으면 하는 것”(2연)이라는 전제에 합당하기 때문이다.이런 가벼움 속에 놓인 깊이, 여백이 그녀의 시에는 있다. 우리 시단의 새로운 자산이다.
서면 운대2리 경로당(회장 이순철) 어르신들은 지난 14일 주변정화활동 및 일회용품 사용안하기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먼저 청년회에서 부운지에 버려진 각종 페트병과 스티로폼 등 쓰레기를 대대적으로 수거하고 분리 작업을 펼쳤다. 이어 어르신들은 나무사이에 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주변을 정리하고 경로당 인근 지역을 정돈하여 경로당과 마을주민간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특히 서면 운대2리 경로당 주변은 선덕여왕의 설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곳으로 신라시대 선덕여왕 행차지로 잘 알려진 ‘라왕대’와 ‘부운지’ 산책로 구간이 있다. 이곳은 관광객 및 등산객들에게 깨끗한 분위기를 제공해 의미가 깊었다. 윤희홍 경로당 총무의 주도하에 안전교육 및 준비운동 후 쓰레기 줍기, 일회용품 사용안하기, 철저한 에너지 절약 생활화 등을 실천과제로 결의대회와 함께 진행했다. 특히 마을 청년들과 손을 맞춰 작업을 하여 온마을이 화합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가 깊다. 주변정화활동을 마친 후 정자와 쉼터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무더위로 힘들었던 이야기, 전기를 아끼기 위한 어르신들만의 노하우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이어 추석명절에 고향을 찾는 귀향민, 서라벌공원 방문손님맞이로 꽃밭까지 정리한 후 경로당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감사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운대2리 경로당 이순철 회장과 회원들은 “부운지는 가장 가까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외지인들이 항상 찾아오는 곳이다”며 “저수지 둘레 길을 걷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연꽃을 감상하며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을 함께 정리하며 웃고 걷는 동안 행복하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고속광역시설사업소 봉사회 회원 10여명은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한 세상만들기’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11일 중증장애인거주시설 경주푸른마을을 방문해 추석 맞이 나눔 활동을 가졌다. <사진> 이날 회원들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가운데 이용 장애인들의 산뜻하고 즐거운 외출을 위해 시설 차량을 세차했으며, 시설 구석구석의 묵은 때를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또 이용 장애인들을 위한 50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후원하고,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경주고속광역시설사업소 봉사회는 해마다 경주푸른마을을 방문해 뜻 깊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전MCS(주) 대구지사 경주지점은 지난 10일 ‘저소득 및 사회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경주푸른마을을 방문해 후원금 50만원을 전달했다. <사진> 이번 후원금은 한전MCS(주) 대구지사 경주지점 재직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후원했다. 성금은 경주푸른마을 이용 장애인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이종욱 지점장은 “한전MCS는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해서 하고 있으며, 경주푸른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작지만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후원금 전달에 대한 뜻을 전했다. 경주푸른마을 이기수 원장은 “경주푸른마을 직원들도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전MCS(주)는 한전 위탁 전력서비스 사업을 하는 검침회사로 전기검침, 전기요금청구서 송달, 전기요금 체납관리, 현장 고객 서비스 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저소득 및 사회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일 북경주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안강전통시장을 구경했다. 전통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그리 많은 노점상들이 없었다. 5분 정도 걸어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로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들을 사고 팔고 하였다. 마른 갈치에 달려드는 파리를 쫓으며 “마른 갈치 5000원, 마른 갈치 좋아요. 쫄여서 먹으면 밥 한공기 뚝딱합니다. 마른 포 사세요”를 외치는 노점 아저씨의 외침에 시장 나온 사람들이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시장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웅성거린다. 좌판에는 문어가 족히 30여개는 있어 보인다. 어디에서 가져온 문어일까? 제법 큰 것도 있고 아주 조그마한 문어도 있다. 살려는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한참 보더니 중간 정도 크기의 문어를 가지고 흥정을 한다. 5000원 디스카운트 해달라고 하고, 주인은 안된다고 한다. 사고파는 모습이 참 재밌다. 한참 말을 주고 받더니 주인이 디스카운트해서 팔았다. 문어를 구입한 사람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할아버지가 고추와 가지, 호박을 팔고 있다. 할머니들이 채소를 파는 것은 많이 보았는데 할아버지가 농산물을 파는 것은 조금은 흥미로왔다. 내 고향 스리랑카에서도 주로 어머니나 할머니가 노점상에서 자기가 키운 농작물이나 달걀, 닭 등을 파는데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채소를 파는 모습이 참 이채로왔다. 할아버지는 물건을 사는 아주머니에게 고추와 가지를 덤으로 더 얹어 주었는데 마음이 넉넉하신 거 같다. 와송이라는 열매도 팔고 있고, 쪽파 씨앗과 단호박을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길 한 복판에서는 1톤 트럭에 조그마한 무를 파는 아저씨, 아줌마가 있는데 차로를 가로막고 있어서 뒤에서 오는 승용차 운전사가 계속해서 빵빵 울려댄다. 길을 비키라는 울림인거 같다. 빵빵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그만한 무를 파는 아저씨는 찾아 온 손님들에게 파는 물건이 좋다고 계속 자랑을 하고 있다. 큰길 끝쪽에 조그마한 골목길이 있다. 할머니 100여명이 앉아 장사를 하고 있다. 햇땅콩, 단감, 콩잎, 대추, 마늘, 앙파, 올갱이 등 없는 것이 없다. 할머니들은 모두 집 텃밭에서 재배한 각종의 채소들을 조금씩 가져와서 팔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팔면 하루에 얼마나 벌까? 궁금해진다. 마트나 대형 상점보다는 채소나 과일의 값이 싸 보인다. 남쪽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한 참 걷다 보니 안강전통시장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다. 그런데 시장 장옥 안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좀 전에 다녔던 남북으로 뻗은 길가에는 어깨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는데, 이곳은 좀전에 다닌 곳 만큼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이것저것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가게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추석 명절이다. 그래서 전통시장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이곳 시장에는 사람들이 항상 이렇게 많은가요?” 가게 주인은 대답하기를 “안강전통시장은 안강지역에 살고 있는 2만여명의 주민들이 4·9일 장을 보러 온다”고 하였다. 안강읍 주민들 뿐만아니라 경주시내에 사는 시민들도 안강지역에서만 나는 특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안강장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안강전통시장은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 한다.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에 위치해 있다. 1923년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 102년째 그 자리에서 전통시장이 열리고 있다. 더 넓은 안강평야에서 생산된 단감, 고추, 참깨, 마늘, 배추 등과 그 주변인 강동이나 천북에서 재배된 신선하고 청결한 갖가지 농산물, 그리고 포항 등 바닷가에서 가져온 어패류, 젓갈류, 생선류 등 수산물과 대구 등지에서 원정온 옷, 신발, 모자, 장신구, 잡화류 등 공산품으로 노점상에 수많은 물건들이 진열된다. 나의 고향에도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알룻 아우르다(Aluth Avurudda)가 있다. 음력으로 매년 4월 보름날에 이 명절을 즐긴다. 한국과 약간 다른 점은 설날이면서 추석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매년 4월은 곡식과 과일의 수확철이다. 풍요의 결실과 함께 넉넉하게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의 명절이다. 갓 거두어들인 곡식과 과일로 갖가지 명절 음식을 만들고 선물꾸러미를 들고 부모님 계신 고향집으로 형제자매들이 모인다. 전통놀이도 하고 고향 친구들과 술과 음식을 나누면서 회포도 푼다. 아~ 그립구나. 그날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가을을 맞아 28일부터 10월 27일까지 ‘EX-펌킨나잇’을 선보인다.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EX-펌킨나잇’은 장난꾸러기 잭이 훔쳐 간 보물을 찾기 위해 화랑숲을 찾은 관람객들이 펌킨나잇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결을 펼치며 보물을 발견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스토리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서는 대형 호박 벌룬 게이트가 관람객들을 맞이하며, 경주타워까지 이어지는 루미나리 길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호박을 훔쳐 달아나는 고릴라와 이를 쫓는 사냥꾼이 선보이는 슬랩스틱 콩트가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메인 코스인 화랑숲은 6m 크기의 대형 호박 벌룬과 다양한 호박 소품들로 장식돼 있다. 코스 곳곳에 설치된 디자인 세트와 대형 조형물은 주요 볼거리로 손꼽힐 예정이다. 코스 내에는 총 6개의 챌린지가 마련돼 있으며, 모든 챌린지에서 승리한 참가자들은 보물 상자의 열쇠 조각을 획득하게 된다. 모든 열쇠 조각을 모은 방문객에게는 소정의 선물이 제공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포토존과 함께 유료 체험 공간인 펌킨나잇 공작체험, 펌킨퍼니 분장실 등이 준비되어 있어,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김남일 사장은 “올해 가을 행사는 예년보다 더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업그레이드했다”며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온 가족이 함께 다양한 펌킨 플레이타임을 즐기며 단풍이 물드는 가을, 행복한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늘로 유명한 의성군(군수 김주수)은 한지형마늘 재배지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의성군에서 재배되는 한지형마늘은 특유의 매운맛과 향, 알싸한 식감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고품질의 한지 마늘로서 전국 1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의성마늘의 수확시기는 6월 중순 이후로 구가 단단하고 저장성이 탁월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즙액이 많아 적은 양으로도 양념 효과는 만점이며 김치의 신맛을 억제하는 기능 또한 탁월한 의성의 명품이다. 현재 의성군은 마늘의 전통적인 맛과 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농업 기술을 접목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마늘 재배 기계화 절실… 스마트 농업으로 전환 농업 현장이 고령화되면서 밭농업의 기계화가 주목받는 지금 마늘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늘은 노동 집약적인 작물로 파종, 관리, 수확, 선별 등 모든 단계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인력 부족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인구, 고령화, 노동력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농업이 대두되고 있다. 스마트농업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농업의 생산성과 품질, 수익성 향상 등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에 맞춰 의성군도 최근 본격적으로 마늘 농사의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파종부터 줄기 전단, 수확까지 가능한 트랙터형 농기계를 농가에 임대 해주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디지털 전환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정부 노지 스마트농업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2025년 사곡면 일대 82ha 규모의 스마트 마늘 재배단지를 조성한다. 이는 고령화와 농가인구 감소에 따른 만성적 일손 부족과 낮은 기계화율, 경험에 의한 관행 농업 위주의 농작업을 스마트농기계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여 의성 한지형마늘에 적합한 스마트 영농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의성마늘의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의성마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 사업은 23년부터 3년간 추진되며 지능형 스마트 관수시스템, 스마트 농기계 등 스마트시설 장비를 5G 통신망과 연계한 스마트농업 단지를 조성한다. 앞으로 3년간 노지농업 전 분야에 활용해 스마트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기술 장비와 스마트농기계를 도입해 농작업의 편의성을 높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농업 시스템 도입을 통해 의성 한지형마늘 농업의 대전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의성마늘, 로코노미 제품으로 새로운 판로 확보 의성군은 의성 마늘을 알리기 위해 유명 식품기업의 신제품에 마늘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마늘의 전통적인 맛과 향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농업 기술을 접목해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명랑시대·롯데웰푸드와 협력해 핫도그에 의성마늘햄으로 업그레이드시킨 마늘 핫도그 신제품 2종 출시로 주목받았다. 롯데웰푸드가 매년 의성 농가에서 구매하는 마늘은 연간 120t이다. 7월에는 원앤원과 협약을 맺어 20·30대를 겨냥한 의성마늘 수육삼겹, 의성마늘 순살족발을 출시했다. 이 협약을 통해 원앤원은 연 30t 이상의 명품의성한지마늘을 구매하고 의성마늘 소스를 활용한 족발 보쌈 등 앞으로 더더욱 새로운 시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로코노미는 지역(local)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로 지역만의 차별화된 특색을 담아 만든 상품이다. 의성마늘을 활용한 다양한 로컬푸드 상품 개발을 개발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와 농가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마늘을 활용한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해 농산물 홍보와 소비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의성슈퍼푸드마늘축제를 통한 우수성 홍보 경북도의 24~25년 유망축제에 선정된 ‘의성슈퍼푸드마늘축제’는 올해 10월 4일부터 10월 6일까지 3일간 개최한다. 작년에 1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간 슈퍼푸드마늘축제는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에 있다. ‘의성마늘 선암부락에서 다시 태어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축제는 의성읍 시가지 일원 및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다양한 홍보, 체험, 판매 행사부스 운영한다. 또한, 15개 마늘 농가 판매 참여한 판매부스를 운영하여 마늘 구매 접근성 향상하여 농가소득 증대도 기대하고 있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스마트 기계화를 통해 의성 한지 마늘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차별화된 경험과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로코노미는 앞으로도 이어질 트랜드다. 군도 우수 농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해 지역 농산물 홍보 및 소비 활성화에 노력하겠다. 다가올 의성슈퍼마늘축제는 의성마늘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지역 농업인의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한국지역신문협회 경북협의회
경북형 마이스터고등학교 지정에서 경주지역 특성화고가 도내에서 가장 많이 지정됐다. <사진> 경북교육청은 지난 25일 ‘지역과 함께(Together), 특성화고 재도약(Level up)’을 비전으로 도내 특성화고 48교 중 16교를 ‘경북형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했다. 지정학교 중 경주지역은 경주공고, 경주여자정보고, 경주정보고, 신라공고 등 4개 학교가 지정됐다. 경북의 특성화고는 학과 재구조화와 4년 연속 취업률 최고 기록, 5년 연속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승 등 직업교육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전국 최초로 해외 우수 유학생 입학 정책을 선도하는 등 경북 직업교육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에 경북교육청이 추진하는 ‘경북형 마이스터고등학교’는 기존 특성화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미래 직업교육에 대응하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도약을 목표로 한다. 교육부 지정 마이스터고등학교와 별개로 경북교육청이 주관하는 사업인 ‘경북형 마이스터고등학교’에는 특성화고 학교별 △교육 성과(취업률 및 충원율) △협약 실적(경상북도 내 지자체와 관계기관, 산업체와 정주 지원 및 취업 연계) △사업 실적(취업, 충원, 미래 직업교육, 기술·기능 인재 양성) 등의 정량평가와 경북형 마이스터고등학교 지정·운영 위원회의 정성평가 등의 종합적인 평가를 거쳐 선정됐다. 최종 선정된 학교는 △경주공업고 △경주여자정보고 △경주정보고 △신라공업고(경주) △경북과학기술고(김천) △김천생명과학고 △경북하이텍고(안동) △경북생활과학고(구미) △경북항공고(영주) △한국미래산업고(영주) △영천전자고(영천) △상산전자고(상주) △문경공업고(문경) △경북기계금속고(경산) △명인고(성주) △한국펫고등학교(봉화) 등 총 16교다. 이들 학교에는 인사 우대 지원과 실험·실습비 및 운영비 등 재정적 지원을 통해 학생과 교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우수한 기술·기능 인재 양성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정된 학교는 2026년까지 3년간 신청-평가-지정을 통해 최대 5년간 지원받으며, 이후 성과관리를 통해 일정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면 재지정을 받아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임종식 교육감은 “경북 직업교육의 성과는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다”면서 “특성화고 중 우수한 학교를 경북형 마이스터고로 지정해 지역과 함께 상생·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지방소멸과 지방기업체 인력난 해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북보건환경연구원은 안강읍 두류리 소재 일반공업지역을 대상으로 9월부터 10월까지 2024년 하반기 악취실태조사를 한다. 악취실태조사는 악취 관리지역의 발생실태를 조사해 악취 관리 정책 수립과 시행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효율적인 악취관리로 주민의 건강과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2023년부터 매년 상·하반기에 실시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상반기와 같은 지점인 두류공단 내 4개 지점과 부지 경계 지역 2개 지점, 인근 영향지역 4개 지점에서 새벽·주간·야간 시간대별로 조사하게 된다. 조사 항목은 복합악취와 황화합물, 암모니아 등 지정악취물질(12개) 포함 13개 항목과 악취 발생원과 피해 지역에 미치는 영향 파악을 위해 기상 요소(풍향, 풍속, 기온 등)도 함께 측정한다. 최종 악취실태조사 보고서는 경주시에 제공해 효율적인 악취관리 기반 조성과 악취 배출사업장 환경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악취관리 지역 인근 주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한 악취 배출시설의 적정 관리 유도와 더욱 깨끗하고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어선 길에서 만난 절터 9월인데도 폭염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는다. 햇빛이 강열한 한낮에는 거리에 나갈 수조차 없을 만큼 뜨겁다. 해가 저문 밤에도 달아오른 도시는 쉽게 잠들 수 없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럴 땐 이른 새벽을 택해 풀밭으로 나간다. 동이 트지 않은 풀밭은 그런대로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은 생동하듯 기지개를 켠다. 잎사귀마다 크고 작은 이슬을 매단 모습은 맑고 깨끗하여 순수성을 내뿜는다. 누군가의 인기척이 미치기 전 먼저 풀밭에 닿는 것을 즐기는 건 중독이다. 동이 터 오기라도 할 때면 풀밭의 이슬들은 빛을 머금어 더욱 싱그러워진다. 빛나는 이슬을 만날 때면 신(神)이 풀잎에 뿌려놓은 가장 맑고 신성한 선물이라 믿는다. 이른 새벽 경주 어느 풀밭을 잠행하다 동이 트는 걸 알았다. 영롱하게 빛나던 이슬이 사라진다. 빛에 타 들어간 것인지, 풀숲에 몸을 숨긴 것인지 모르나 이슬은 빛을 싫어하는 습성을 지녔나 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떠돌다 햇살이 밀려드니 서둘러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낯선 길을 달리다 불쑥 보문단지 낯익은 길이 나타난다. 이런 길은 익숙함에서 오는 무료함이 싫다. 이럴 땐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땐 스스로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 보문호와 경주월드를 끼고 달리다 무작정 대로변 좁다란 길로 들어선다. 작은 초등학교가 나오고 이내 길이 좁아진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의 폭, 무성히 자란 풀이 평소 인기척이 드물다는 걸 알려준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차를 몰아 깊숙이 들어가면서도 막다른 길이면 어쩌나 걱정이 인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두고 미묘하게 일렁이는 갈등,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여기서 돌아나가는 건, 저 길 끝에 있을 무언가를 버리는 것과 같다. 늘 그랬듯 ‘GO’는 나의 모험에서 가장 큰 용기와 결과였다. 풀들이 점점 길을 좁힌다. 마치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도 하듯. 차는 거칠게 풀을 헤치고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른 공터가 나타난다. ‘뭐지?’ 풀밭이 길 한쪽에 펼쳐진다. 나락이 영그는 논과 풀밭은 관리된 것과 버려진 것의 반대성을 지닌 것과 동시에 미묘하게 닮았다. 생전 처음 와 보는 곳 한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방을 살핀다. 그때다. 우람한 무언가가 보인다. 얼른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풀밭으로 남은 천군동 절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감탄이다. ‘아!’하는 감탄이 뱉어진다. 두 기의 석탑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두 석탑을 눈앞에 두고 미묘한 감정이 인다. 여기가 어디인지, 이 탑이 어떤 탑인지조차 모른 채 멍하니 서 있다 탑 앞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는다. 경주시 천군동 절터다. 통일신라의 사찰 터로 추정한다. 두 탑은 1963년 대한민국의 사적 제82호로 지정된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이다. 무너져 있던 탑재와 주춧돌을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복원했다. 1938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발굴조사를 했고 중문과 금당, 강당 자리를 확인했다. 기와와 벽돌, 지붕 맨 윗부분 끝을 장식했던 치미가 나왔다. 무려 58cm에 이르는 큰 크기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절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논밭으로 경작이 한창이다. 탑이 서 있는 땅은 풀이 너무 무성해 감히 발을 들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풀밭 넘어 보문단지의 알록달록한 색깔의 놀이기구가 지척이지만, 여기서는 마치 시간이 멈춘 오랜 과거인 듯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저 무성한 풀밭으로 들어가 마음껏 누비고 싶지만, 태초의 땅처럼 풀밭은 두려움마저 자아낸다. 풀밭 어디엔 삵이나 오소리, 들고양이와 독사, 살모사 같은 혐오스러운 뱀이 저들만의 영역을 이루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침범하지 말자. 무성히 영토를 넓히느라 애쓴 풀밭은 저들만의 세계로 남겨둬야 할 것이다. 나는 풀밭 주변을 서성이며 탑을 본다. 경주에 있으니 신라시대 석탑일 테다. 탑의 규모나 형식을 보아도 신라 여느 탑과 닮았다. 사적 제82호인 천군동 절터에 서있는 동·서 삼층석탑은 보물(제168호)로 지정되었다. 두 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이나 고선사 터 삼층석탑, 감은사 터 삼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부조(浮彫)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으로 너른 땅을 지키고 있다. 서로 같은 두 탑 서로 다른 두 탑 두 탑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다만 동탑은 탑 터를 낮게 파고 주변에 석축을 쌓고 그 한가운데 기단부를 놓았다. 서탑은 바닥 위에 그대로 기단부를 놓았는데 두 탑의 높이를 맞추기 위함인지 동탑은 바닥을 판 대신 기단부를 높게 올렸다. 탑이 있던 사찰의 이름이나 창건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무너진 채 흩어져 있던 탑재와 주춧돌을 모아 탑을 복원했다. 1938년 일본인들의 발굴조사에 의해 중문과 금당, 강당 자리가 확인되었을 뿐 절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도 밝혀지지 않았다. 명문 기와라도 한 조각 나와주면 어떤 기록을 찾아 어떠한 실마리라도 풀릴텐데, 천군동 절터는 아직 세상에 제 이야기 한 줄 꺼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책 속의 탑을 마주하다 동탑의 바닥을 굳이 낮게 파고 탑 주변에 석축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구덩이를 파고 세운 특이한 구조의 동탑을 보다 한 장의 사진이 스친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2020, 글항아리)의 11쪽에 실린 사진 속 탑과 흡사했다. 이 책의 저자 ‘모리사키 가즈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까지 대구, 경주, 김천에서 자란 재조 일본인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일본 본토로 건너갔지만 나고 자란 땅 조선을 그리워했다. 재조 일본인은 조선에서 나고 자랐지만 조선인일 수 없었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완전한 일본인이 될 수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일본에서는 재조 일본인을 두고 귀태(귀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여기며 가까이하지 않았다. 이 책 11쪽에 실린 사진을 보면 여러 사람이 탑 앞에 서있다. 일부는 탑 위에 올라 서거나 혹은 탑 위에 앉았다. 이 사진은 모리사키 가즈에의 아버지 구라지가 경주에 교사로 부임할 당시의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는 ‘1938년 5월 10일 경주 천군리’라고 기록해 놓았다. 사진 속 탑을 보면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릎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움푹 파인 구덩이 속에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뒷줄의 사람들은 탑 기단부에 올라서 있다. 탑의 꼭대기에 노반과 찰주가 없는 것과 구덩이가 파인 것을 보면 사진 속 탑은 동탑이다. 지금은 탑 주변에 잔디를 심어 관리하고 있지만, 1938년 당시는 탑재만 쌓아 복원한 상태로 주변은 그냥 황무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흑백이라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뒷산의 완만한 산세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인근에 현대식 건물들이 시야를 살짝 가렸을 뿐이다. 비록 일본인이 소장한 흑백 사진 한 장이지만 옛 모습을 본다는 건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조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재조 일본인 모리사키 가즈에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우연히 만난 탑이 책 속의 탑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한 장의 사진과 사진 속 대상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감탄은 실로 강렬하다. 우연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탑과 나는 어느 시대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지금 여러 번의 환생을 거듭하다 필연에 의해 다시 만난 것은 아닐까. 굳게 잠긴 이 풀밭의 비밀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언젠가 이 풀밭이 열리는 날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탑 앞에 서있을까. 뙤약볕이 한없이 내리쬔다. 다시는 주저앉지 않겠노라는 듯, 힘 있게 서 있는 탑 아래 나도 오래도록 서 있다. 풀밭을 스치고 온 바람이 나를 스치고 탑을 스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천년이든 백 년이든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마주했던 게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말도 없이.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영남대 중앙도서관 5층에는 고문헌실(古文獻室)이 있고 이 고문헌실을 통해 6층으로 올라가면 ‘문파문고’라 붙인 철문이 나온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가 나오고 그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 쪽에 우람한 책장이 세 개가 있고 그 책장에는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고서적들이 세로로 혹은 가로로 꽂히거나 얹혀 있다. 왼편에는 최부자댁 사진과 함께 육훈이니 육연을 안내하는 액자가 걸려 있고 문파 선생님을 비롯해 문파 선생님의 아버님이신 최현식 공 사진을 비롯하여 문파 선생님이 기증하신 고문헌 중에서도 특별히 가치 있는 책자들이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문파문고는 엄격한 습도와 통풍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영남대 ‘문파문고’ 최부자댁 특별한 가훈과 9첩 진사 배출한 인문학적 저력 느껴져 이 문파 문고를 보면서 나는 최부자댁이 왜 다른 부자들과 다른지를 극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어떤 부자들이 이처럼 책을 사랑하고 조상대대로 지녀왔으며 우리나라 어떤 양반 가문에서 이처럼 많은 문헌 자료들을 모아 대학에 기증했을까. 경주최부자가 다른 양반이나 부자들과 달리 육훈이나 육연 등 분명한 부의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자손대대로 물려준 바탕에는 이처럼 책을 아끼고 간직해온 인문학적 소양이 함께 있었다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전율이 느껴졌다. 문자향서권기(文子香書卷氣)라는 말이 그야말로 확연하게 다가왔다. 이 문파 문고는 그해 6월 최염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찾게 되었다. 2017년 6월, 영남대 정상화를 염원하는 관련 5개 단체 회담에 참석했을 때 관련 인사들과 함께 둘러보게 된 것이다. 그때 최염 선생님 모습이 영남대학교 문파문고에 걸린 문파 선생님 모습과 너무 닮아 보이셨던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최부자댁 내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독자라면 특별히 벼슬을 하거나 유명한 학자를 배출하지도 않은 최부자댁이 이렇게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랄 것이다. 최부자댁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 1대 정무공께서 문반에서 무반으로 출신하신 이후 2대 동량 공이 용궁현감을, 3대 국선 공이 사옹원 참봉을 지난 이후 조상 전래의 유훈으로 진사 이상 벼슬을 살지 않았다. 그런 최부자댁 가계에서 아홉 분의 진사를 배출한 저력을 알 것 같았다. 최부자댁은 양반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사 혹은 생원시에는 꾸준히 급제자를 내었다. 흔히 9대 진사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9대 진사가 아니고 9첩 진사가 맞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6대 종률 공으로부터 11대 현식 공에 이르기까지 5대 동안 3분의 생원과 6분의 진사를 배출했다. 뒤에 생원시보다 진사시에 대한 명칭이 일반화되었고 내막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9대 진사라는 말을 퍼뜨리게 된 듯하다. 조선시대는 3대가 넘도록 벼슬을 살지 못하면 양반으로 행세하기 어려웠다. 물론 진사·생원이 벼슬이 아니지만 이 정도 시험에 합격하는 것으로 양반으로서의 신분을 보장받는 동시에 선비 혹은 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검증받을 수 있었기에 최부자댁 조상님들은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이 기본 요건을 갖추었다. 그렇다고 생원시나 진사시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굳이 따지자면 이 시험은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대과(大科)와 소과(小科) 그리고 잡과(雜科)가 있었다. 대과는 관리로 채용되는 문과와 무과가 있었다. 여기서 문과의 경우 지방에서 치르는 1차 시험인 초시(初試)에 합격한 선비들 2차 시험인 중앙에서 치르는 복시(覆試)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 복시를 ‘소과’라고 부른다. 이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간 합격자들이 300일 이상 공부한 후 임금 앞에서 3차 시험을 치는데 이게 전시(殿試)라 불리는 대과다. 대과에 합격하면 본격적으로 벼슬을 받게 된다. 이중 소과는 생원과와 진사과로 다시 나뉜다. 생원과는 사서와 오경 등 주로 경전 내용으로 시험을 보았고 진사과는 시(詩)와 부(賦) 등 문예적 자질을 시험으로 보았다. 초시는 전국적으로 5~600여명을 뽑았고 복시에는 100여 명을 뽑았으니 그 정도면 그 당시 최고의 수재라 할 만했다. 참고로 조선 후기 대과는 소과를 치지 않고도 볼 수 있었고 대과와 소과가 각각 다른 시험으로 치러졌다. 다만 소과가 양반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계속 남았다. 벼슬을 마다하고 진사나 생원만으로 입신해왔지만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공부를 해야 했고 집안이 누대에 걸쳐서 부자로 살았으니 자연 집안 대대로 전해져 오는 서책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서책들은 선대 조상님들이 꾸준하게 사 모은 것이거나 필사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게 중에는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직접 편찬한 것도 많다. 해방 전에도 육당 최남선 선생과 위당 정인보 선생이 최부자댁에 머물며 경주 역사를 정리하여 ‘동경통지(東京通誌)를 저술한 바 있다. 이런 서책들은 이조리의 남강서당, 경주 사마소의 병촉헌(炳燭軒)과 경주 향교의 부숙건물인 육영제(育英齊), 최부자댁 사랑채 등에 보관되어 오다가 문파 선생님께서 대구대를 설립하시면서 대학설립 조건을 맞추기 위해 모두 대학에 기증하셨고 후에 대구대학이 영남대 ‘문파문고(汶坡文庫)’에 보관되었다. 문파문고에는 조상 대대로 전해진 책 5500여권에 문파 선생님께서 직접 사모은 책이 더해져 1966년 기준 8968권의 책이 목록상에 올라와 있다. 이는 여느 대학들의 동양서적 보관과는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영남대학에 전해진 책들은 7000여권이었는데 허술한 관리로 도난 당하거나 분실 혹은 미반환 등으로 인해 현재는 5500여권만 전한다. 이들 없어진 책들 속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을지 상상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참고로 이 책을 대구대에 기증할 당시 문파 선생님은 ‘동양철학과’를 개설해야 한다고 다짐해 놓으셨다. 신문물과 신기술을 등에 업은 서양 가치가 몰려드는 시대, 동양의 현인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철학과 사상이 무절제한 서양 우월주의에서 우리 민족의 내면을 근실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보신 것이다. 그 결과 대구대가 1947년 한강 이남에서 처음으로 철학과를 개설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파트도 별도로 생기게 되었다. 순수한 한 명의 기증자의 영향력이 이처럼 대단했던 것이다. 세 번에 걸친 장서기에 책을 모으고 보관한 경위 수록, 책들만큼 조상대대로 기록한 장서기도 대단!! 그렇다면 최부자댁에서는 언제 어느 분이 이렇게 많은 서책을 모으게 되었을까? 무인이었던 1대 정무공의 뒤를 이은 2대 동량 공은 직접 아버지의 행적을 더듬어 훗날 ‘잠와실기(潛窩實紀)’의 토대를 만들 정도로 글을 좋아하고 책 모으기도 좋아하신 분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모은 분은, 남강서당을 세운 7대 최언경(1943~1804) 공이다. 이후 자손 대대로 책을 모으고 보관해오다 11대 최현식(1854~1928) 공까지 모아진 책들이 문파문고가 되었다.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매우 특별하게 이들 책에 관한 전체적인 ‘장서기(藏書記)’, 즉 어떤 책을 어떻게 구하고 보관했는지를 설명하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영남대 문파문고에는 기증된 책들뿐만 아니라 모두 3차례에 걸친 장서기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여기에 동량 공으로부터 문파 선생님 대까지 꾸준히 책을 사 모으고 기록이 남은 것이다. 책도 책이지만 이 장서기가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경이로움일까? 책들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인쇄의 유형별로 목판본, 석인본, 신연활자본, 금속활자본 등이 있고 탁본과 수묵화도 상당수에 이른다. 책들은 외국에서도 다량 구입하였기에 우리나라 본을 비롯하여 중국본, 일본본도 다양하게 모아져 있다. 내용도 매우 다양하여 고문과 경전, 역사서, 법전, 전기, 의학, 천문, 지리, 소설, 시문집과 족보, 필첩, 서간문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런 책 중에는 당대 명사들이 직접 쓰고 엮은 책들이 무수히 많다. 2012년에 제1회 경주 최부자 학술 심포지엄이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렸는데 이때 발표한 한국학 중앙연구원 옥영정박사의 논문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최염 선생님의 회고에 따르면 처음 서책을 도서관에 기증하고 난 뒤에 이들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원래 서책들은 통풍이 잘 되는 최부자댁 사랑채나 향교 육영재, 사마소 병촉헌 등 한옥에 들어 있어서 오래되어도 책이 상하지 않았고 분실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대구대학에 기증되고 난 뒤에는 콘크리트나 유리 등으로 꽉 막힌 서고에 보관되면서 책이 푸석푸석해지기 시작했고 교수들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는 몰래 가져가거나 가져가서는 돌려주지 않는 일들이 잦아 분실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최염 선생님은 1970년에 최부자댁에서 일어났던 큰불을 떠올리시며 ‘그래도 도서관에 기증하기를 잘 했다’고 긍정적으로 여기셨다. 그 큰불에 최부자댁 사랑채가 다 타버렸는데 책들은 그 이전에 이미 도서관에 기증되었기에 다수가 보관된 것이라 믿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화마로 최부자댁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내벽에 당대의 화가들이 그린 벽화들이 모두 타버렸고 의친왕 이강 공이 직접 할아버지의 호를 써준 현판도 타버렸다. 과객맞이에 소홀함이 없어서 경주를 내방하는 각 시대의 명사들이 대부분 최부자댁에 머물렀고 이들이 남긴 서화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진귀한 가보들이 사랑채와 함께 사라졌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동농협은 지난달 16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농업인 및 고령층 어른신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역량강화 및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교육은 일상생활에서 스마트 폰 앱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예방교육을 통해 불편함을 해소하고 디지털이용 정보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사진> 이채철 조합장은 “교육을 통해 자칫 소외될 수 있는 금융소외계층의 권익을 보호하고 앞으로도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도록 실생활 중심의 디지털역량 강화 교육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차규선 작가의 초대전 ‘Going back home’이 경주 플레이스씨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고향을 떠난 지 3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차규선 작가는 경주 출신으로 계명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다양한 재료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국내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90년대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아우르며, 예술의 본질과 진정성, 그리고 사람의 향기를 담은 노스텔지어를 주제로 구성됐다. 전시는 ‘차규선의 모티브’, ‘분청회화의 시작’, ‘심상 풍경’,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 속에서 사라진다’라는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차규선 작가는 분청사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독특한 분청회화 세계를 확립했으며,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산, 나무, 꽃 등의 요소를 직관과 심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자연의 기저에는 경주가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무른 땅에 나뭇가지로 낙서하던, 하나의 놀이였던 행위가 예술이 됐고, 그 예술이 귀향하는 과정이 이번 전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2001년, 서른 셋이었던 차규선 작가는 호암미술관에서 본 분청사기에 매료됐다. 이후 그는 기존 분청사기 제작 기법과 이미지를 반영해 흙과 고착 안료를 혼합, 캔버스에 바른 후 백색 아크릴 물감으로 전면을 칠한 후 물감이 굳기 전 풍경 형상을 그리거나 긁어내는 ‘분청회화’를 시작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이러한 분청회화의 시작과 그 후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019년부터 그의 풍경 작업은 새로운 재료 실험을 통해 더욱 본질적인 자연의 이미지에 충실해졌으며, 흙과 유사한 색감의 아크릴 물감과 물을 활용해 내적 심상으로 태어난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지속적인 시도와 변화를 거듭하며, 마지막 섹션에서는 과잉과 절제가 공존하는 최신작을 선보인다. 특히, 꽃이 흐드러진 나무를 그리는데 꽃과 나무의 형상대신 물감으로 표현된 점과 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차규선 작가는 “존경하는 故정점식 스승님께서 제 첫 개인전 서문에 ‘좋은 작가가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은 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주변의 아낌없는 후원과 독려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시를 할 때마다 부끄럽고 미진함을 느낀다. 빈 캔버스를 앞에 두면 여전히 두렵고 긴장된다. 이러한 불안과 초조가 자신의 예술을 밀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과 그림을 담아낼 것을 다짐했다.
경주시가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2025년 세계유산 및 국가유산 활용사업에 총 15건이 선정돼 19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사진> 선정된 사업에는 국가유산야행, 경주읍성 생생나들이, 선비고을양동 등이 포함되며, 특히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인 ‘석굴사원의 천년미소 마애’와 지역국가유산 교육 활성화사업인 ‘상상더하기 월성해자’, 세계유산 활용프로그램 ‘황룡, 전통등과 함께 날아들다’ 등 3건이 새롭게 선정됐다. ‘천년미소 마애’는 최근 방송을 통해 주목받은 ‘골굴사’에서 진행되며, ‘산사 인문학 강의’와 ‘석굴사원 테마 공연’으로 구성된다. ‘상상더하기 월성해자’ 프로그램은 지역 학교 및 아동센터에서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유산 체험 교육이다. 이 사업은 내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프로그램 참가 방법은 각 주관단체와 협의 후 경주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 초에 공지될 예정이다. 주낙영 시장은 “내년을 경주의 세계유산과 국가유산 홍보의 원년으로 삼아 지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것”이라며, “경주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