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학생 인솔차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를 방문하였다. 이젠 우리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물론이고 오사카의 돗돈부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한국인도 눈에 많이 띄었지만, 곳곳에 중국인이 많았다. 관광이 전공인 관계로 지금 일본이 비교적 국제관광객으로 붐비는 이유를 따져보게 된다.
불과 십여 년 전 일본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범국가적으로 관광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그 효과는 별무였다. 그러던 것이 저가항공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섬나라 일본이 가지는 구조적 장애로 여겨졌던 접근성이나 가격경쟁력까지 생겼다. 몇 가지 이유가 더하여 일본의 국제관광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중국인이 일본을 많이 찾는 이유야 여럿 있을 수 있다. 언어계통상 일본은 나름 일본화한 한자이긴 하지만 한자를 많이 쓰고 있어 가히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간판이나 길 안내판을 볼 때 한자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중국인이 일본을 여행하면서 딱히 일본어를 몰라도 소통이 수월하겠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물론 한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어나 글 속에 한자가 들어있어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엔 한글이 더욱 좋을 수 있다. 더불어 심지어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까지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사람에겐 즉각적으로 소통하기 쉽지 않다.
복잡한 기호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관광을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할 때, 동질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관광에 편리하고 유리하다. 한자는 방대하게 외우고 익혀야 하는 글자라 배우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한자가 어려워서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쉬운 한글이 있음에도 여전히 문맹률이 높으니 박정희 대통령은 효율을 중시하는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한글 전용정책을 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문맹률을 없앴다. 반면에 1970년부터 72년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한자를 배우지 않아 거꾸로 한자 문맹자가 더러 있다. 대략 50년대 중반 출생한 사람이 해당되겠다.
언어는 뇌구조를 지배하고 인간의 사상을 좌우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학교에 일본어학과가 없는 이유이다. 한 세대 이상 일본어로 사고하는 구조와 사상을 국민의 관념 속에서 제거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한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세대 기간 이상 한글 전용으로 쓴 결과, 이제 한글로 한국인의 정체성이 우뚝 섰다. 한류로 일컬어지는 K컬처와 콘텐츠의 상당부분이 한글과 관련지어진다. 어느덧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도 생기고 세계적 문화에 비길만한 내공도 커졌다. 바야흐로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이제 내 문화 남의 문화를 구별하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의 시대는 지났다.
당연히 남의 문화를 그들의 가치로 바라보려는 문화상대주의 의식과 더불어 내 것 남의 것 따지게 되면 이젠 세련되지 못하고 편협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덧 국민의 의식 속에서 잊혀져 가던 한자와 일본어가 국제화란 이름으로 이젠 하나의 다양한 콘텐츠로 이해되고 수용된다.
한자 배우기라는 작은 붐도 있다. 그간 제법 잊혀졌던 한자 공부는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한자는 오랜 역사 동안 한자로 이루어져 왔던 우리의 전통문화의 이해와도 연결된다. 비교적 한자에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도 여러 학습매체가 있어 자연 새로운 한자가 있으면 눈에 들어온다.
차제에 평생 처음 읽어보는 한자가 있어 소개해 본다. 상두주무(桑土綢繆)라는 단어이다. 상두주무, 뽕나무 뿌리의 껍질을 뜻하는 ‘桑土’는 상두라고 읽는다. 흙토(土) 자를 두자로 읽기엔 낯설다. 뽕나무 뿌리껍질은 습기를 막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무’는 칭칭 감는다는 뜻이다. 올빼미는 장마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새는 곳을 막는다. 닥쳐올 재앙을 대비해 미리 꼼꼼하게 준비한다는 뜻이다.
물론 젊은 세대에겐 한자가 영어보다 더 낯선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우리 주변에서 중국어가 쉬이 들리고 또 한자가 쉬워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으로 상징되는 관광의 시대에 관광과 한자라는 소통수단과 언어를 생각해본다. 논의 중에 어려운 고사성어로 얘기가 비약 발전하였지만, 이왕지사 한국사회에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어려움이 많은데 미리 대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