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생들한테 ‘눈금’이 뭔지 물었다. 그랬더니 한 남학생이 자신에 찬 얼굴로 “피곤하거나 자다 일어나면 생기는 눈에 생기는 이물질”이란다. 그럼 ‘용수철’은 뭐냐니까 옆에 있던 여학생은 “약간 남자 사람 이름 같다”라고 했고, 그 말이 그럴듯해 보였는지 아까 그 남학생은 “아빠 친구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방송에 나온 실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어떨까? 단톡방에서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발췌한 내용들이다.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은 하루에 과제점수가 20점씩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 바랍니다” 아마 과제물 제출률이 저조하니까 조교가 올린 공지글인 모양인데 급하게 이런 답글이 달린다. “(조교님이)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잖아요!” 맥락상 상당히 억울하다는 투로 읽힌다. 이때 대화방에 있던 다른 학우가 “금일은 오늘이라는 뜻”이라고 정정을 하자, 그 억울한 학생이 또 떼를 쓴다. “학생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시면서 오해 소지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신 말고도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는 학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면서... 우리말에는 한자어로 된 어휘가 상당히 많은데, 자신도 ‘평가’나 ‘위치’ 같은 용어를 쓰면서 왜 유독 금일(今日)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조교 형님이 잘못한 거라 몽니를 부릴까? 금일을 금요일의 준말로 알고 있었다면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이 헤프닝이 서울대에서 벌어졌다면 좀 다른 이야기다. 서울대생인데도 이렇다면 곤란하단 말이 아니라, 그 초등학생이 그렇게 그 대학생으로 커간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다. 나이나 교육의 질 고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어휘력, 더 나아가 문해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그 여파는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리한 코로나 사태에 지친 의료진과 국민들 피로감을 잠시나마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정부는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적 있다. 토요일부터 그다음 월요일까지 3일간의 연휴였는데, 문제는 ‘사흘’을 4일로 착각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는 거다. “왜 한자(?)를 써서 사람 헷갈리게 하느냐”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 해프닝이 있고 3년이 지나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쳐봤더니 사흘을 4일로 착각한 학생들이 여전히 많더란다. 사흘의 ‘사’자가 숫자 4를 닮아서라는 ‘창조적인’ 이유를 달지만 웃지 못할 촌극 수준을 이미 넘어선 듯하다. 그럴듯한 이유야 많겠지만 이 같은 사회 병리적 현상은 환경 요인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스마트 기기 발전과 유튜브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우리 삶의 편리함과 정보적 유익함을 주는 동시에, 그 주된 방식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이제 빼곡히 적힌 글을 꼭 읽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차례라는 말이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진 사람들(특히 청소년)은 “굳이?!”라는 부사 하나로 답할 것이다. 두어 시간짜리 영화보다 이삼십 분으로 압축된 영화 리뷰를 선호하는 시대에서는 이상의 어휘력이나 문해력 논쟁이 엉뚱하게 방향을 틀기도 한다. 어느 음식 배달 기사가 배송 완료 문자를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또 주문해 주세요?”하고 보냈다고 한다. 생뚱맞은 물음표는 기사가 웃는 이모티콘을 주문자한테 전송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주문자는 배달비 지급할 테니 반품 및 환불 처리를 해달란다. 그의 말마따나 ‘이상한’ 문자에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에서다. 이모티콘이나 부호 하나에도 없던 감정을 부여해 오독(誤讀)하는 시대다. 사실 우리는 고의적인 오타로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민족이었다. ‘난 감히 엄해 볼 원두조차 못 내는 여잔데(해석: 내가 감히 원해 볼 엄두조차 못 낼 수준의 여성인데)!’라거나 “찍 죽진해 주세요(쭉 직진해 주세요)!”식의 문장은 우수한 한글을 구사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챗봇이 한국인들만이 즐기는 암호문(!)을 해독해 버렸다. 원문 그대로 옮긴다. “솔히직 글배열자 이식런으로 바꾼음다에 된쇼뤠꺄쥐 츄갸해뵤리myun G들이 Auto-K 읽을 gun day”(해석: 솔직히 글자배열을 이런 식으로 바꾼 다음에 된소리까지 추가해 보면 AI들이 어떻게 읽을 건데?)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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