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늘 특별하게 느껴졌던 나의 존재가 점점 흐려지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했던 나의 삶이 어느덧 뉴스에 나오는 슬픈 청년과 닮아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시대의 파도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들은 또 다른 나와 우리들이다. 오롯이 나만의 생각이라고 여겼던 이상들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반적인 가치와 겹쳐져 있었다. 잃어버린 세대의 일원으로서 세태에 따라 흘러가는 비겁한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살아간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하나의 존재로서 현실화시키며 나의 특별함을 입증해보려 한다. 이것들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흔적이다. 나는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의 익명으로, 또한 실재하는 인물로서 담담히 버텨내고 있다. 나의 생명은 꺼지는 날까지 분투하며 삶을 이뤄나갈 것이다. 거친 돌바닥을 일구어 작물을 키운다. 우리의 엄마와 할머니처럼,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나아갔던 그들의 모습, 자라서 나이가 들어보니 삶은 다 그런가보다 한다. 거친 바닥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꽃처럼, 우리는 그렇게 실재한다. 그렇게 생명이 살아간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통칭되는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수법이 지능화되면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전국을 흔들었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에도 근절되지 않고, 최근엔 AI(인공지능)를 악용한 딥페이크(허위영상물)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피해자들을 울리고 있다.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 디지털 성범죄 심의 건수는 6만7102건으로, 전년 5만5287건대비 1만1815건 증가했다. 매년 디지털 성범죄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이번에 ‘경주시 디지털성범죄 방지 및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돼 곧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조례는 이경희 의원이 대표 발의해 지난 8일 열린 제286회 경주시의회 임시회에서 통과됐다. 조례는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경주시민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필요한 규정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 및 피해 지원 등에 관한 시행계획을 매년 수립·시행토록 하고, 피해자 보호·지원에 필요한 시책 수립, 피해자 상담 및 긴급 보호와 영상삭제 지원 등을 명시했다.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보다 더 강력하고 실효적인 처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엄벌해야 디지털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 또 누구나 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반인륜적인 범죄인 점과 그에 따른 형사적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의 첫걸음은 스스로의 인식 개선,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가 가시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경주시는 경북도와 함께 지난 1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성공개최추진위원회’를 출범했다. 또 신축한 신라금속공예관에 APEC준비지원단 현판 제막식도 가졌다. APEC성공개최추진위원회는 경북도지사와 경주시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또 도의원과 시의원 등 지역 대표자들로 구성된 8개 분과를 조직해 분과별로 성공적인 APEC 개최를 위해 활동한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관광 프로그램 개발, 홍보 마케팅, 안전 대책 마련, 지역경제 활성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행사 준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경주시와 경북도가 성공적인 경주 APEC 개최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국비 지원 예산이다. 현재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국비 1420억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국비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에 주낙영 시장은 지난 10월 28일과 11월 5일 연거푸 국회를 찾아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APEC 정상회의 관련 사업의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주 시장이 국비 지원을 요청한 사업은 보문단지 야간경관 개선 125억원, APEC 문화동행 축제 개최 50억원, 숙박시설 정비 100억원, APEC 기념공원 및 기념관 건립 108억원 등이다. 이들 사업은 APEC 성공개최를 위한 필수사업으로 국비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APEC 개막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행사에 정부의 예산 지원 문제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국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조만간 있을 정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APEC 정상회의 개최 관련 국비 지원 예산을 반드시 증액해야 한다. 특히 김석기 국회의원이 여야의원 191명의 공동발의를 이끌어 낸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지원 특별법안(APEC 특별법)’도 통과돼 APEC 개최 준비에 힘을 더해야 한다. 경주 APEC은 내년 11월초쯤에 열린다. 21개 회원국 정상과 글로벌 CEO, 관계자. 내·외신 기자 등 2만여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주시는 APEC 개최로 국가적으로는 1조9000억원, 경주·경북도는 1조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회는 APEC 성공개최가 경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위상이 걸려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반드시 국비 예산 증액과 APEC 특별법을 통과시키길 바란다.
지난 10월 전국의 어반 스케처들이 2024 경주 어반 스케치 페스타에 모였다. 어반 스케치란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그리는 그림으로 일상, 여행지 등 어느 장소에서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즉석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회화 활동이다. 어반스케쳐스(Urban Sketchers)는 2007년에 시작된 국제 미술 운동으로, 여행지나 도시를 현장에서 그려 SNS로 공유하며 해당 도시와 문화를 알린다. 현재 전 세계 70개국 477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서울, 인천, 울산, 경주, 부산 등 18개 도시가 공식 챕터로 활동 중이다. 이번에 열리는 어반스케치 페스타는 어반스케쳐스와 시민들이 함께 도시를 스케치하고 이를 전 세계에 공유하는 연례 축제로 올 해가 여섯번째다. 그들은 왜 전국에서 아니 외국에서까지 이곳 경주로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일까? 취향저격이다. 즉 같은 취미와 목적으로 가지고 그들의 공유하는 가치를 옳다고 믿고 애호하며 향유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미션과 비전이 널리 확산되기를 애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취향저격 앞에 평등하다. 국가와 인종, 학연과 지연, 나이와 성별이 상관없다. 그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그것이 가지는 현장과 로컬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것을 매개로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건다. 이러한 소통은 지역의 경계를 너머 전달되어 각기 다름속에서 차이를 극복하고 포용하여 우리(Weness)를 만들어 나아간다. 경주는 천년 전 이미 세계화하였다. 경주 토우의 모습을 보라. 인도인과 서역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미 그때 국제적으로 교류하고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당나라에 신라소와 신라방 등을 건립함으로 외국에 한류를 전파하였던 진정한 글로컬한 도시였다. 그 뿌리와 DNA가 어디가겠는가? 이번 행사에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따뜻한 손님맞이와 빈틈없는 준비가 더할 나위없이 돋보였던 행사였다. 그 뒤에 숨은 공은 자원봉사자에 있다. 정부예산 지원없이 치루는 민간의 전국단위 행사의 성공여부는 자원봉사자의 전문성과 책임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개막식에서 워크숍과 폐막식에 이르는 매 순간마다 그들의 친절한 도움과 안내를 실감하였으며 그들의 노고와 역량이 대회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자부한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 단계 더 큰 행사인 세계어반스케처스 심포지엄(International Urban Sketchers Symposium)을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시 이곳 경주에 유치하여 또 한번 우리나라의 위상과 문화를 보여주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보고 느끼고 체험했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하며 자원봉사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그림을 매개로 전세계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2022년 11월, 미국의 오픈AI가 챗GPT-3을 공개했습니다. 최근에는 4 Omni 버전이 출시되면서 텍스트는 물론 음성과 이미지 인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챗GPT는 이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처럼 실시간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 언론사들은 다양한 방식과 전략으로 챗GPT 기술을 활용해 뉴스 콘텐츠를 생산,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I, 즉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AI는 지능적인 행동과 유사한 컴퓨터의 기능 집합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때 ‘지능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기술이 사용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바이에른 공영방송(BR)에서는 AI를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컴퓨터 시스템으로 그 정의를 제한합니다. 저널리즘 분야에서 AI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의견과 여론형성,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 언론인의 업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따라서 AI를 저널리즘에 활용하려면 자유민주주의와 저널리즘 작업을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침은 마치 도로 위의 자율주행차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저널리즘에서 인공지능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독일 언론사들이 논의, 제안하고 있는 AI 저널리즘에 대한 지침, 즉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저널리즘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면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투명성의 의무가 강조된다. 여기서 투명성의 의무는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된다. 첫째, AI가 뉴스 콘텐츠를 생산할 때, 생산자와 이용자는 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AI가 어떤 데이터 소스를 사용했는지, 어떤 자료를 사용해 훈련했는지 분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 작성된 콘텐츠가 AI 교육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원 작성자와 소통하고 보상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셋, 저널리즘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은 품질, 균형, 차별 금지, 데이터 및 출처 보호, 그리고 저작권 및 보안 측면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회적으로 인증된 AI 시스템이 사용되어야 한다. 넷, 인공지능의 활용은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제어가 가능한 기술을 저널리즘 분야에 활용하고, EU 기반의 자체적인 인프라를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 신속하고 단호한 규제가 AI 저널리즘 분야에 필요하다. 실례로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지침(Digital Single Market Copyright Directive)이 제정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고, 그 이후 국내법으로 전환되는데 별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따라서 AI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시기적절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 이처럼 독일 언론사들은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인공지능에 관한 개념을 정의하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AI 지침에 관한 내용이 추상적이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실천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비판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원칙들이 나열되고 있는 AI 지침안을 어떻게 강제할 수 있는지, 또 다른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급변하는 AI 저널리즘 분야에서 다양한 이점과 문제들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언론사의 지침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AI 기술이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킬지 아니면 오히려 파괴할지 미디어 정책과 규제 법안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AI 기술을 사용해 뉴스 콘텐츠를 생산, 서비스한다면, 우리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갖고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시다. 혹은 우리가 인공지능이 생산한 뉴스 콘텐츠를 사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점과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실제로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를 생산하는 기술이 더욱 보편화되었고, 합성 콘텐츠와 인공지능을 통한 생산물을 구별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넘쳐나는 가짜 뉴스와 이미지, 음성, 영상은 허위정보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진실 보도와 허위보도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보편적 신뢰가 전반적으로 상실될 수 있습니다. 한편 AI 기술은 점점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미디어 이용자는 필터버블, 즉 선별적 정보만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으로 고도화되는 개인화는 일방적인 뉴스의 왜곡된 의견뿐만 아니라 사용자 자신의 의견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가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면, 해당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뉴스 이용자는 자신의 의견이 가장 합리적이고, 유일하게 옳은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론장이 붕괴된 상태이며, 건강한 견해에서 극단적인 견해로 바뀌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양극화된 사회적 분열과 증오가 심화할 여지가 매우 큽니다.
겨울이다. 녹음이 가득한 논밭에 바람이 불면 연둣빛 파도가 장관이었던 여름이 지나고, 노오란 황금빛 물결에 감탄을 지어내던 가을이 지나서, 싹둑 잘려 나간, 추수가 끝난 논밭은 쌀쌀한 겨울바람에 휑하다. 논밭에 부모님의 삶이 있구나, 인간의 삶이 있구나 싶다. 예전에 유행했던 것 중에, 하나가 기억이 난다. “죽음 체험” 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관속에 직접 들어 가보고,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 삶이 지치거나 힘든 사람도,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은 이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서로의 장례식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서 당시에 모든 방송사에서 내가 죽을 때 묘비명에 어떤 글귀가 쓰여 있으면 좋을까 하는 관련된 프로그램을 다루기도 했다. 아줌마도 당시에 내 묘비명에 쓰이면 좋을 말을 한참이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고민했던 그 문구처럼 살려고 지금까지 노력하며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건강 검진을 했다. 마흔이 되면 자주 아픈 곳이 한 군데 생기고, 쉰이 되면 자주 아픈 곳이 여러 군데 생긴다는데, 몸소 경험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기계로 치면 50년을 썼는데 여기저기 탈이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려니,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몸을 잘 관리하려 나름의 노력도 한다. 몸은 그렇지만 정신은 어떤가?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아줌마는 기성세대, 중장년층이다. 아직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때의 그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대학 새내기 시절의 풋풋함과 열정이 가슴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는데, ‘라떼는~’을 말하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여기저기서 많이 느낀다. 이런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받아들이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도, 인생의 마지막 장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인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별이다. 부모님과의 이별이다. 올해 초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아버지를 보냈다. 게다가 양가 어머님이 모두 편찮으시다. 시간이 지나면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결혼 초부터 인지했고,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양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려 노력했다. 결혼 15년이 지나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찮으신 두 어머님을 뵈면서 아줌마는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르겠다. 어머니 앞에서는 철없는 막내딸, 막내며느리로 지내다 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억장이 무너진다.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아무런 신체 반응이 없을 때도 아줌마는 엄마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다. 다행히 많이 좋아지셨지만, 여전히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줌마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결혼하면서 나에게 생긴 또 한 분의 어머니도 편찮으시다. 그 몸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온다고 하면 엄마 손맛으로 담근 각종 반찬을 준비하신다. 집에 갈 때 가져가라고. 별 특이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맛이 좋은 것은, 어머님이 음식을 만드실 때 좋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만드셔서 그런 것 같다는 형님의 말이 기억난다. 두 분 다 녹록하지 않은 형편에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막내딸, 막내아들에게는 강한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투병 생활로 살이 빠지시고 걷지 못하시고, 강한 약 때문에 고통스러워 우시고, 혼자 있는 순간에 ‘엄마’를 부르며 홀로 아파하시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을 때 아줌마는 또 무너졌다. 아줌마는 또 어머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겠지만, 여전히 어머님이 안타깝고, 두 어머님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까, 두렵고 무섭다. 두렵고 무서운 나날이지만,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영양남씨 활산(活山) 남용만(南龍萬,1709~1784)은 부친 남국형(南國衡)과 모친 여주이씨 이덕함(李德咸)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 이름은 해만(海萬)이었다. 14세에 종조숙부 남국선(南國先)의 양자가 되었고, 훗날 모친상을 탈상한 후에 식솔을 이끌고 경주 명활산(明活山) 아래로 이거해 살며 평생을 학문을 궁구하였다. 풍천임씨 임간세(任榦世)의 따님을 만나 남경채(南景采,1736~1811) 낳고, 서산류씨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의 따님을 만나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1748~1812), 남경화(南景和)를 낳았으니, 아들 역시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가 남긴 『활산집』은 원집(原集) 7권, 부록(附錄) 합 5책으로, 1790년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1723~1801), 1793년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가 지은 서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집안에서 많은 노력 등이 있었고, 특히 그의 둘째 아들 남경희의 정성이 특출하였으며, 차남 남경희가 「어록(語錄)」을, 장남 남경채가 「행장」을 지어 부친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이계 홍양호는 1760년 7월부터 1762년 6월까지 경주부윤으로 재임하며 학교의 부흥과 문화발굴에 지대한 공을 들인 인물이다. 그가 부윤으로 있으면서 활산과 교유하였고, 물러난 뒤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적 교유를 이어갔으며, 남겨진 많은 시작품이 이를 대변한다. 특히 활산의 만사(輓詞)에서 “옛적 내가 이 지방을 다스렸을 때, 민풍을 살피러 옛 수도를 방문했네. … 명활산에 처사가 있으니, 고상한 걸음으로 그윽한 지조를 보존하였네. … 신령의 바람 말은 어디로 돌아갔는가, 남휘정(覽輝亭)을 찾아갔겠지.”라고 그를 추억하였다. 남휘정은 1771년 명활산 덕계에 지은 행랑채의 이름으로, 초봉암(招鳳菴)의 동편에 있었다. 활산은 「초봉암기(招鳳庵記)」에서 “나는 진정 세상을 벗어난 은자(隱者)로, 이곳에 집을 지었으니 진짜 봉황은 쉽게 볼 수 없음을 안다. 사람 가운데 봉황의 자질이 있는 사람 얻기를 구하였기에 그와 비슷한 지명을 따라 편액을 걸고 그들을 불러들였다. 지금 나를 따라 노니는 자는 모두 자주 날갯짓하려 하지만, 날개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아서, 바야흐로 멀고 가까운 거리를 막론하고, 모두가 날개를 나란히 하여 이른다면 그 가운데 무리 중 빼어난 자가 없을 것이라 어찌 알겠는가?”라고, 보기 드문 봉황의 출현과 은둔한 자신의 처지 그리고 봉황처럼 성군의 출현과 태평성대를 기대하는 그의 마음을 글로 대변하였다. 앞서 활산은 풍기군수로 있던 정범조를 찾아가 선조의 글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의 아들 남경희 역시 부친의 유집을 갖고 그에게 서문을 부탁하였으니,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긴요하다. 아들 남경희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문인으로, 이만운(李萬運)·손병로(孫秉魯)·송전(宋銓) 등과 교유하였고, 증광시에 합격 그리고 1777년 진사에 올라 승문원박사·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으며, 1791년에 사직하고 고향 경주 보문마을리로 돌아온 뒤 스스로 은거하였다. 듣기에 『활산집』이 국역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경주의 선비 활산 선생에 대한 자료를 다시 넘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문집의 서문을 소개한다. 활산선생문집 서문 - 이계 홍양호 계림은 신라의 옛 도읍으로,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천 년 동안 나라를 누렸다. 산천이 빼어나고, 신령이 돌보아 동방의 으뜸이 되었기에 이름난 신하와 큰 선비가 성대하게 배출되었다. 하지만 근세 이래로 차츰차츰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논하는 사람들이 개탄해하였다. 경진년(1760) 내[홍양호]가 동도의 부윤이 되어 학교를 일으키고 선비를 양성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듣기에 진사 남붕로(南鵬路)가 온 고을의 존경을 받고 영남 좌도가 모두 그를 경모하였기에, 이에 예를 갖춰 그를 학교로 초청하였다. 많은 선비의 스승이 되어 문예(文藝)를 강론하고, 경술(經術)을 가르치니, 1년 만에 문장의 재목이 되었다. 배우는 자들이 명활산 아래 덕계(德谿) 가에 나아가 서당을 짓고, 무리를 이뤄 학업을 익혔는데, 내가 그 편액을 쓰고 서문도 지어주었다. 내가 조정으로 돌아오자 남붕로 역시 도백(道伯)의 천거를 받아 침랑(寢郞)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거문고 연주하고 책 저술하면서 노년을 마쳤다. 매번 마음에 드는 시문이 있으면 번번이 천 리나 떨어진 나에게 부쳐 보여주었으며, 나 역시 그렇게 하였으니, 깊이 서로 인정함이 이와 같았다. 군의 둘째 아들 남경희가 젊어서 과거에 급제해 서울로 와서 나를 찾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붕로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만시(輓詩)를 부쳐 그를 애도하였다. 남경희가 이미 탈상을 하고 『활산유고(活山遺稿)』네 권을 가지고 와서는 나에게 서문을 구하였다. 내가 다 읽어보니 … 질박(質樸)하나 속되지 않고, 심오하나 교묘에 빠지지 않았으니 … 말세의 소리가 아니었다. … 계축년(1793) 단오에 풍산인 홍양호 서문을 짓다.
발레는 원래 유럽 귀족사회에서 사교무용으로 기능하던 오락물이었다. 최초의 발레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용이 연극의 막간에 독립된 무언극으로 상연되면서 나중에 발레로 발전한 것이다. 최초의 발레 원형은 1489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갈레츠오 공과 아라공의 이사벨라 공주의 결혼식에 있었던 막간 희극이다. 요리가 나오는 사이에 그 요리에서 연유된 춤을 추었다. 당시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발레 역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테리나 데 메디치(Caterina de’Medici, 1519-1589)가 프랑스로 출가하여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 스스로 무용 애호가이자 무용의 명수였다. 자연스레 프랑스에 이탈리아 궁정 발레가 전파되었다. 발레는 프랑스와 궁합이 잘 맞았다. 역대 국왕의 사랑을 받던 궁정 발레는 루이 14세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짐이 곧 국가다!” 라고 말하며 절대군주의 상징이 된 루이 14세는 발레의 대가였다. 1652년부터 1670년까지의 18년 동안에 27편의 발레극에 직접 출연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극은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였는데 그는 이 공연에서 태양왕 아폴론의 역할을 맡았다. 그가 태양왕이라 불린 이유가 바로 이 공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발레가 귀족들의 아마추어적인 기예에 머물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1661년 파리에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했다. 무용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1672년에 음악을 추가하여 왕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는 국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다. 파리 오페라발레극장의 기원이기도 하다. 왕립음악무용학교의 교장에는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가 취임했고, 전임 무용교사에는 보샹(Pierre Beauchamp, 1631-1705)이 임명되었다. 륄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무용가로 프랑스 오페라의 창시자라 불릴 정도로 루이 14세의 핵심적인 예술 참모였다. 한편 보샹은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뛰어난 무용가로, 오늘날에도 발레의 기본기에 해당하는 ‘다리의 다섯 가지 포지션’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루이 14세가 만든 학교에는 귀족의 자제뿐만 아니라 평민이라도 재능있는 자가 남녀를 불문하고 입학할 수 있었다. 이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게다가 보샹의 탁월한 교육훈련으로 말미암아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줄줄이 배출되었다. 이젠 이들의 공연을 궁정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궁정발레의 시대가 저물고 극장발레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는 ‘과(過)’가 많았던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큰 ‘공(功)’임에 틀림없다.
행복황촌협동조합은 16일 황촌 마을호텔 숙소와 카페 등에서 관광객을 위한 초청 가수 공연과 함께 마을 스탬프 투어를 연다. <사진> ‘Dilly Dally Days in 황촌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행복황촌 협동조합이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벤처사업의 일환으로 관광객들에게 황촌 마을호텔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됐다. 황촌 마을호텔 대표 숙소인 ‘스테이황촌’, ‘황오여관’, ‘황오연가’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카페 ‘고냅브로시스’, ‘보우하사’, ‘정상에서’에서는 대중들에게 알려진 인디밴드, 가수, DJ 등의 공연이 시간대별로 준비돼 있다. 관광객을 위한 무료 포토존도 운영된다. 공연 프로그램을 따라 황촌마을 곳곳의 숙소와 카페를 탐방하면서 스템프를 모아오면 호텔 숙박 할인쿠폰과 기념품도 제공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행복황촌 협동조합 정승민 조합원은 “황촌의 마을호텔 숙소들과 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청년 창업자들이 함께 협업해 마을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행사를 계기로 행복황촌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며 말했다. 한편 행복황촌은 2021년부터 올해 말까지 국토부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도시재생 활성화구역에 마을호텔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13개의 숙소가 운영 중이다. 또 골목길 곳곳에 청년 창업자들이 유입돼 카페와 기념품점이 생겨나고 있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지난 6일 ‘제8회 경주시장배 노인 장기·바둑대회’를 경주시노인종합복지관에서 개최했다. <사진> 경주시가 주최하고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각 지역 경로당의 숨은 장기·바둑 고수 어르신 78명이 출전해 자웅을 겨뤘다. 이날 대회에는 주낙영 경주시장, 이동협 경주시의회 의장 및 김항규·최영기 시의원 등이 참석해 어르신들이 그동안 쌓아온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참가 선수들은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향한 열띤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도 화합을 도모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경로당 각 분회별로 참가 신청을 받아 장기부문 32명, 바둑 46명이 출전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 결과 장기부문 우승은 김수룡 씨, 바둑부문 우승은 성일수 씨가 각각 차지했다. 이들 우승자는 향후 열릴 예정인 경북도지사배 대회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주낙영 시장은 “장기바둑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미활동과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 구축 및 프로그램 발굴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승회 노인회 경주시지회장은 “한 수 한 수 둘 때 마다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기에 놀랐다”면서 “대회를 통해 서로 간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어르신들의 건전한 놀이문화, 대표행사로 즐겁게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서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장기부문] 우 승 : 김수룡/ 준우승 : 김배동/ 장려상 : 김윤암/ 노력상 : 김용화 [바둑부문] 우 승 : 성일수/ 준우승 : 문창덕/ 장려상 : 이종록/ 노력상 : 유진철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 45명은 지난 8일 업무역량 강화를 위해 부산 금정구지회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다. <사진> 타 지역의 다양한 사업운영과 환경에 대해 벤치마킹을 위해서다. 이날 금정구지회를 방문해 김영수 회장으로부터 지회 운영의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우수사례 등 현황을 들었다. 또 사무국장과 경로부장이 금정구지회에 대한 안내와 함께 실제 사례에 대해 경험을 공유했다. 금정구지회 김영수 회장은 “경주 행복선생님들의 활력과 밝은 미소, 경쾌한 음성에 감동받았다”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경로당행복선생님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선생님들은 부산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금정산 범어사를 방문해 문화 활동 시간을 가졌다. 부산 웰니스 관광지는 도시 특성과 치유 요소를 결합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공간을 일컫는다. 또 유행가 가사와 영화 등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다양하고 골목상권이 발달해 깡통시장으로도 불리는 국제시장을 방문했다. 1950년 6·25전쟁 때 많은 피난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기도 한 시장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부산에서의 하루를 통해 어르신들과 많은 프로그램, 교육 등을 진행하는 행복선생님들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됐다. 행복선생님들은 “부산지역을 찾아 벤치마킹과 문화활동을 체험함으로써 역량강화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경주시지회 경로당 어르신들이 더욱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 경주한우와 농축수산물 한마당 축제가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황성공원 타임캡슐광장에서 열린다. <사진> (사)한국후계농업경영인 경주시연합회와 (사)전국한우협회 경주시지부가 공동 주최·주관하는 이번 축제는 지역 대표 농축수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안전한 먹거리 문화 정착을 위해 진행된다. 상설 판매 부스에는 경주천년한우, 이사금, 지역 농축수산물 등이 전시돼 시장 가격보다 저렴하게 공급된다. 체험 프로그램은 한우 OX퀴즈, 쌀 도정체험 등이 진행된다. 공연은 길놀이(사물놀이), 난타, 색소폰 등 색다른 이벤트가 펼쳐져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준비돼있다. 주낙영 시장은 “경주한우의 우수성과 농축수산물의 다양성을 체험하게 하고 지속적인 구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행사기간 많은 방문객들이 지역 명품 축제의 맛을 체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창작 뮤지컬 ‘더 쇼! 신라하다’가 2년 연속 1만 관객을 돌파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주관한 뮤지컬 ‘더 쇼! 신라하다’는 지난달 4일부터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공연을 시작해 지난 9일까지 총 27회 공연했다. ‘더 쇼! 신라하다’는 지난해 초연 이후 더욱 새로워진 무대와 업그레이드된 작품성으로 관객 1만2786명을 기록하며 2년 연속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실감 나는 영상과 조명, 디테일을 살린 의상과 소품은 물론, 대본 수정과 신규 넘버 추가 등을 통해 공연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승만 공주’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린지는 신규 넘버 ‘정답 없는 것을’을 감성적인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완벽히 소화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린지는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에 제 목소리를 더할 수 있어 너무나 큰 영광이었다”면서 “이 곡이 많은 분들에게 닿아 힐링과 힘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린지의 ‘정답 없는 것을’과 남경주의 ‘마음을 싣는 일’은 국내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곧 발매될 예정이다. 올해 공연은 기존 출연진뿐만 아니라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해 신선한 케미와 시너지를 보였다. 예술감독과 배우 역할을 수행한 남경주는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고 짧은 소회를 밝혔다. 이번 공연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 오만석은 “신비로운 인물 ‘밀본’과 함께 신라시대로 여행을 함께 해서 즐거웠다. 또 기회가 온다면 더 많은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수력원자력과 월성원자력본부가 문화 취약계층 아동들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을 공연에 초청하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했다. 또 경주, 포항 등 인근지역 학생 단체 관람이 이어졌으며, 일본, 중국 등 해외 관객들도 공연을 찾았다. 김남일 사장은 “신나는 쇼의 세상에 함께 해주신 관객 덕분에 공연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며 “2025년에는 경주 APEC 정상회의와 보문관광단지 50주년을 기념해 ‘더 쇼! 신라하다’ 특별공연을 선보여 경북의 문화산업을 세계로 확장하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남산 용장골을 오르며 경주 남산엔 수많은 골짜기가 있다. 어느 곳으로 오르든 신라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그중 가장 큰 골짜기는 용장골로 길이가 3㎞에 달한다. 신라시대 용장사(茸長寺)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용장골’로 불리며, 아직도 탑이 남아있어 ‘탑상골’로 불리운다. 남산은 해발 500m도 안 되는 산이지만 발길 닿고 눈길 머무는 곳마다 석불이요, 석탑이요, 절터다. 이 골짜기만 해도 용장사 터 외에 20여 개의 절터가 있다고 알려졌다. 불교가 왕성했던 시절엔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끊일 날 없었을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서라벌을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이라고 묘사했다. ‘절과 절은 하늘의 별처럼 펼쳐졌고, 탑들은 기러기 행렬처럼 늘어섰다’ 했을 만큼 불교가 융성했던 시절이었다. 용장사 가는 길 설잠교(2000년대에 설치한 용장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김시습의 법명 ‘설잠’을 따서 붙인 이름)를 지난다. 길이 무척 가파르다. 지금까지 물소리, 바람 소리 벗하며 한가롭게 자연을 음미하며 걸어왔다면 여기서부터는 힘겨운 고행이 시작된다. 빼곡히 숲을 이룬 대나무 군락 사이로 몸을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 나 있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미묘한 느낌이 든다. 대숲이 보이면 유난히 반갑다. 절터나 집터같이 인간이 기대 산 흔적이 가까이 있다는 표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숲을 빠져나와 가파른 길을 오르니 그리 넓지 않은 평지가 펼쳐지고 이내 시야가 탁 트인다. 가쁜 숨을 고르며 풍광을 눈에 담는다. 가슴마저 ‘뻥’ 뚫린다. 용장사 터는 금오봉이 남쪽으로 뻗어 내린 봉우리에 있다. 한 칸 법당만 겨우 존재했을 만큼 좁은 터지만, 풍광만큼은 고고하고 장엄하다. 욕심을 버리고 이상적인 삶을 좇는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풍광이다. 용장사와 매월당 김시습 ‘갑술삼월일용장사(甲戌三月日 茸長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확인되었다. 용장사는 신라 유가종의 종조 대현스님이 기거했고, 그 후 어느 시절에 무슨 연유로 폐사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폐사된 후엔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숨어 살면서 《금오신화》를 집필하기도 했다. 조선 초,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김시습은 대성통곡하며 읽던 책을 모두 불살랐다.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신하들마저 참형을 당하자 벼슬의 꿈을 끊고 승려가 되었다.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수년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유유자적하며 떠돌다가 용장골에 들어와 은둔했다. 김시습이 용장골에 있는 것을 안 세조가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으나, 김시습은 건너편 골짜기로 몸을 피했다. 세상에 인걸은 많으나 내 사람으로 곁에 두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위 벼랑 아래, 단출한 암자 하나 짓고 밤낮으로 법등 밝히고 살았을 김시습을 생각한다. 바람이 문 두드리면 ‘뉘시오? 그저 시나 한 수 읊고 가시오’ 할 것만 같은 키 작은 탁발승. 김시습은 골짜기마다 미친 척 희희낙락하다 결국엔 산기슭 꽃 한 송이, 바람 한 점에도 슬퍼하며 북향화를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꺼억꺼억’ 울었을 탁발승은 세월 따라가고, 그가 홀로 서성였을 벼랑엔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 서서 그를 대신한다. 그가 가고 흐른 세월을 생각하니 저 멀리 풍요로운 들판도 그새 많이 변했겠다 싶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용장사 터를 뒤로하고 조금만 더 오르니 높은 대좌에 머리 없는 부처가 앉았다. 보물 제187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다. 자연 바위에 동그란 좌대를 3단으로 쌓아 꼭대기에 앉아 서쪽을 향하고 있다. 부처의 자태가 정갈하다. 가볍게 흘러내린 가사의 주름이 섬세하고, 조여 맨 옷고름의 맵시가 뚜렷하여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훌훌 풀어질 듯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시절, 용장사 주지 대현이 매일 탑 주변을 돌며 염불을 하자, 석상의 얼굴도 함께 돌았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니 이 머리 없는 석불을 두고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미륵불로 보기도 한다. 간혹 석불의 머리가 없는 것을 두고 일제강점기 때, 민족말살정책에 의한 훼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연적인 상실과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숭유억불정책에 의한 훼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용장사 터 석조여래상은 뒷목 쪽에 내리친 흔적이 있다하니 자연 상실보다는, 어떠한 이유가 됐든 훼손에 가깝다는 견해가 크다. 얼굴이 없으면 어떤가. 얼굴이 있어야만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따뜻하고 환하게 웃고 있어도, 속은 어둡고 냉골인 사람이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부처의 표정도 있는 것이다. 내가 웃으면 부처도 웃고, 내가 슬프면 부처도 슬프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석불 뒤로 병풍을 세운 듯 암벽이 펼쳐져 있다. 보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다. 약간의 돋을새김으로 있는 둥 마는 둥 앉아있는 여래좌상은 고고한 느낌을 풍긴다. 옷자락엔 얇고 잘게 주름이 잡혔다. 가사의 흘러내림이 물결처럼 촘촘하고, 굴곡진 선이 여울지듯 자연스러워 가벼운 느낌이다. 마애여래불 바위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三層石塔 大正 十一年(삼층석탑 대정 11년), 三層佛塔 大正 十二年(삼층불탑 대정 12년), 小石毾 殘部 大正 十三年 春 再建(소석탑잔부 대정 13년 춘 재건)’ 삼층석탑은 대정 11년(1922년), 삼층불탑은 대정 12년(1923년) 도굴로 무너진 상태였지만 부재를 모아 대정 13년(1924년) 봄에 새로 쌓았다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우리 문화재 수탈이 심했던 터라 조선총독부의 복원 명문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마애여래불 오른쪽을 돌아 가파른 암벽 사이를 오르면 눈앞에 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석탑은 용장골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벼랑에 서있다. 해발 400m의 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쌓아 올린 석탑은, 늠비봉 오층석탑과 함께 산 전체가 탑이고, 탑이 산이 된 셈이다. 몇 번의 도굴로 사리함은 사라졌고, 벼랑 아래 무너져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복원해 세웠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탑은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 같다. 삼단의 지붕돌 모서리는 살짝살짝 치솟아 날아갈 듯하다. 비록 사람의 손을 빌려 섰을지언정, 그 모양새나 위치가 자연과 더불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앞으로는 고위산과 용장골, 은적골의 능선이 힘차게 흘러가고, 서쪽으로는 경주의 너른 들판이 훤히 내다보인다. 탁 트인 시야 속에 유유히 흘러가는 형산강과 평화로운 들판이 걸림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다보면 산봉우리나 골짜기나 지척인 것을. 탑은 저 들판이 변하고 변하는 것을 묵묵히 보아왔을 것이다. 다시 용장사 터로 내려와 자리를 튼다. 이 깊은 골짜기에 법등을 밝혔던 용장사는 어디로 가고 까마득한 터만 남아 나를 불렀을까. 이쯤에 법당이 있었을 테고, 부처는 또 이쯤에 놓였을 것이다. 올려다보면 머리 없는 석불이나 석탑이 모두 한 능선 아래로 나란하고, 여기서 기도를 하면 석불도 석탑도 다 들었을 것이다. 용장사는 가고 터만 남았지만, 탑과 부처는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그저 오가는 이들이 무탈하기를 살피고 있다. 내려오는 동안 대숲 사이사이에서 많은 기와 조각을 보았다. 실처럼 시작된 계곡을 따라 무수히 많은 기와가 옛 흔적을 따라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설잠교를 건너 바위에 앉아 저무는 볕을 쬐었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경주시는 다음 달 14일까지 황촌마을활력소에서 경주 지역 브랜드 스타트업 11개팀이 참여하는 팝업스토어 ‘POP IN 황촌’을 개최한다. <사진> ‘POP IN 황촌’은 행복황촌 도시재생뉴딜사업 중 상권 활력소 비즈니스모델 개발 용역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로컬브랜드 기반의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개발, 로컬 콘텐츠 발굴, 브랜드 홍보를 통해 생활 인구 및 관광객의 유입을 통한 골목경제 활성화가 주 목적이다. 이번 행사는 소녹, 깨비아트, 백경, 채색스튜디오, 플레이랩 왁작, 사회적협동조합 알숨달숨, 박선유 팝아트작가, 모던블랑, 보훈무용예술협회, ㈜로컬로/경주로, 엄지식품 등 경주의 로컬브랜드 11개팀이 참여한다. 13일 오픈행사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다. 행사기간 동안 2주에 걸쳐 참여하는 업체의 브랜드데이를 지정해 브랜드별 이벤트가 진행되고 방문 고객에게는 황촌상권활력소 주변 카페 이용 쿠폰을 제공한다. 박소현 소녹 대표는 “황촌 팝업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지역 브랜드들이 협업해 공동마케팅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방문객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볼거리와 콘텐츠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황촌상권활력소가 이번 행사를 통해 다양한 지역 브랜드들이 창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16일부터 ‘2024 해파랑길 걷기대회’를 개최한다. 대회는 코스 완주 인원이 1000명에 도달할 때까지 이어간다. 이번 행사는 경주 동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회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참여 방법은 경주시 통합관광플랫폼 ‘경주로ON’에 가입 후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고, 지정된 스탬프 인증 지점에서 GPS 기반 스탬프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걷기대회 코스는 총 2개로 구성된다. 1코스는 읍천항에서 출렁다리와 주상절리를 지나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4개 지점이다. 2코스는 전촌항에서 용굴과 해국길, 감포항, 송대말등대까지 5개 지점이다. 참가자는 원하는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해 즐길 수 있으며, 시간과 경로에는 제한이 없다. 이번 행사에서는 경주시 관광홍보 캐릭터 ‘첨성이’ 한정판 스탬프북도 눈길을 끈다. 1코스 주상절리 전망대와 2코스 송대말등대에서 선착순 500명에게 제공되는 이 스탬프북은 소장 가치가 높은 굿즈로, 참여자들에게 특별한 기념품이 될 전망이다. 또 스탬프 투어를 완주한 참가자들에게는 후기 작성 및 경주시 정책 제안을 통해 특별 경품이 지급된다. 각 코스 완주 시마다 선착순으로 경품이 제공되며, 총 1000명에게 선착순으로 지급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동해안 해파랑길은 경주의 숨겨진 관광명소로 이번 행사를 통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길 바란다”며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4년 하반기 학교운영위원 역량강화를 위한 희망 걷기대회가 지난 9일, 경주 지역 내 공·사립 유·초·고·특수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을 대상으로 보문호반길 일원에서 열렸다. <사진> 이번 행사는 경상북도경주교육지원청이 주관하고 경주지역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협의회가 주최했다. 행사의 주요 목적은 학교운영위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불법찬조금’ 및 ‘교권회복’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오)행시 짓기 미션과 OX 퀴즈 등이 마련돼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또한, 천년한우 상품권과 쌀 등 다양한 상품이 제공돼 더욱 흥미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주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협의회 이용원 회장은 “오늘 행사를 통해 경주 내 학교운영위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교권회복 및 불법찬조금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각 학교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잘 홍보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주교육지원청 권대훈 교육장은 “1996년 학교운영위원회가 처음 도입된 이후 이제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매우 무난하고 희망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학교 교육 공동체인 운영위원회가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교육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교육다운 교육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바르게 수립하는 데 있어 학교와 교육지원청의 동반자가 되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양북지역아동센터에서 출전한 ‘지키자 생명팀’과 ‘우리는팀’이 경주시 아동청소년정책한마당에서 ‘미래상’과 ‘논리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2회 경주시 아동·청소년 정책한마당 본선이 경주시청소년수련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아이 캔 스피크, 경주’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된 이번 행사는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경주’를 목표로, 아동과 청소년들이 관련 정책을 제안하고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번 본선에는 총 19팀이 참가했으며, 초등학생 팀으로는 양북지역아동센터에서 출전한 ‘지키자 생명팀’과 ‘우리는팀’이 진출했다. 양북초 4학년으로 구성된 ‘지키자 생명팀’의 이정윤과 정유준은 불법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감응신호 시스템’ 정책을 제안했다. 이들은 아스팔트에 매립된 차량 감지기를 어린이 보호구역 및 불법주정차가 빈번한 장소에 설치해, 불법 주정차가 발생할 경우 단속 카메라로 촬영하거나 경고음을 울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양북초 6학년으로 구성된 ‘우리는팀’의 서예원과 황지빈은 어두운 동네 도로와 골목길을 밝히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하며, 아동과 보행자의 안전한 등하굣길을 위해 ‘야광 차선 도입, 도로 위 LED 설치, CPTED(셉테드) 사업 지속 추진’을 주장했다. 이들 초등팀은 교통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고 예선을 거쳐 멘토링을 받으며, 본선 프리젠테이션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지키자 생명팀’은 논리상을, ‘우리는팀’은 미래상을 수상했다. 논리상을 수상한 이정윤 군과 정유준 군은 “막내 참가자로서 많이 긴장했지만,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감응신호 시스템’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래상을 수상한 서예원 양과 황지빈 양은 “교내 대회 및 여러 공모전에 참가해봤지만 이번 정책한마당은 전혀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주에 제안하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졌으나, 본선까지 치르고 나니 보람차고 뿌듯했다”고 언급했다. 아이들의 정책제안을 지도한 양북지역아동센터 장현주 센터장과 차현지 생활복지사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성인의 시선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내용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이들의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가 성과를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8회 동경주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연합공연이 지난 12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홍보관에서 열렸다. 감포, 나아, 양남, 양북 지역아동센터의 어린이들이 지난 9개월간 준비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이날 공연에는 가족, 친지, 지역 주민 등 400여명이 참석해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감상하며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감포지역아동센터는 난타 공연을 선보였으며, 아이들이 장단을 잘 맞추자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나아지역아동센터와 양남지역아동센터에서는 바이올린 연주가 펼쳐졌고, 지난해보다 더욱 세련된 음악 선율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마지막으로 양북지역아동센터에서는 줌바키즈가 진행돼 경쾌한 리듬과 화려한 몸동작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감포, 나아, 양남, 양북 지역 아동센터장은 “올 여름은 특별히 길고 무더웠지만, 가을을 맞이하며 아이들의 음악적 소양이 결실을 맺어 여러분께 선보이게 됐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음악으로 하나 되는 자리를 함께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매년 개최되는 동경주지역 아이들의 발표회를 통해 아이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공연이 귀하게 느껴진다. 농어촌 지역에서도 도시지역 못지않게 자신의 끼와 능력을 스스로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동경주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응원하고, 아이들을 잘 지도해주신 센터 선생님들과 가족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지난 7일 황성공원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황성공원 제모습 찾기’ 출범식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출범식은 시가 지난 5월 고시한 황성공원 마스터플랜을 시민들에게 보고하고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의 착공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앞서 경주시는 2019년 LH공사와 공공토지비축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난해까지 사업비 350억원을 들여 황성공원 내 사유지 9만7189㎡를 매입했다. 이어 2021년부터 올해까지 14만7233㎡ 부지의 지장물을 순차적 철거하며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 착공을 위한 기반을 다져왔다.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은 2021년 12월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 이후 2022년부터 행정 절차를 거쳐 왔다. 지난 7월 실시계획인가 고시를 마쳤고 이날 출범식을 통해 착공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황성공원 내 16만271㎡의 부지에 숲을 복원하고 산책로와 물길을 조성하는 것으로, 총사업비 100억원이 투입된다.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낙영 시장은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은 시민들의 휴식과 힐링 공간인 황성공원을 새롭게 가꿔 명품 숲으로 조성하게 된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황성공원의 숲을 복원해 시민들에게 더욱 풍부한 생태계와 건강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