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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의 미학 치암 남경희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7호 입력 2026/09/17 10:20 수정 2026/09/17 10:23
경주의 조선 스토리(219)

오상욱 시민전문기자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확대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
조선후기 경주를 대표하는 영양남씨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1748~1812)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에게 수학하고, 이만운(李萬運,1736~1820)·이기경(李基慶,1756~1819)·이우(李㙖,1739~1811)·한치응(韓致應,1760~1824)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문과 문장을 닦았다. 사간원 정언에 이르렀으나 1791년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 경주 보문리로 돌아와 암곡동에 지연정사(止淵精舍)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그가 남긴 글과 시에는 자연을 통한 수양과 안분(安分), 은일(隱逸)의 정신이 두드러진다.

산림처사 치암 선생은 학문을 삶으로 실천하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닦으며, 시대와 백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그의 삶과 『치암선생문집』은 18세기 경주 선비문화와 영남 유학의 정신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 된다.

어린 딸과 대화하면서 스스로 ‘치암’ 호를 지었는데, 이는 자신에게 성현의 학문을 말하면서도 실천이 부족한 것, 현실의 사람보다 옛 성현을 벗으로 삼는 것, 가난하면서도 고담준론을 일삼는 것, 자신의 처지는 돌보지 않으면서 백성과 세상을 걱정하는 것, 일개 선비로서 천하의 안위를 근심하는 것, 부귀 대신 산수와 자연을 벗하는 것 여섯 가지 ‘어리석음’이 있다고 반어적·해학적으로 풀이했다. 이 ‘어리석음’은 학문·의리·자연을 택한 선비의 자부심이었다. 실제 모습은 없으면서 이름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호를 사양해야 할 것이나 실제 모습이 있고 그에 걸맞은 호가 따른다면, 그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하필 학사나 선생이 된 뒤에야 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스스로 자문하고 호를 ‘치암’이라 짓고, 훗날 암자가 완성되어 현판을 걸었다.

무릇 중국 영주(永州)의 산수가 유자후(柳子厚:유종원)와 무슨 관계가 있었겠는가? 영주에 귀양살이하면서 좋은 계곡을 발견하고는 시내를 우계(愚溪)라 이름하고, 우계시서(愚溪詩序)를 지어 “나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시내를 욕되게 한다.”라고 하였다. 하물며 치암 암자는 손수 직접 짓고, 자신의 어리석은 병으로 이름 붙였다. 공자께서 “춘추 위나라 대부 영무자(寗武子:영유)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어리석은 듯하였다. 그의 지혜는 따라갈 수 있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따라갈 수 없다.”라고 단순히 어리석음에 대한 치(癡)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지혜의 어리석음을 언급한다.

 


치암설 – 치암 남경희


‘치(癡)’는 어리석음[우(愚)] 가운데서도 심한 것을 말한다. 어리석음에는 교화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옛글에 “비록 어리석더라도 반드시 밝아진다.”라고 하였다. 영무자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성인께서도 오히려 그에 미칠 수 없다고 하셨다. 만약 ‘癡’라는 것은 사람에게 병이 되는 것으로 깊이 뿌리박히면 고칠 수 없는 것이 되기에 글자 가운데 병(病)을 따른다. ‘愚’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함부로 ‘癡’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게다가 세속에서 서로 욕하고 헐뜯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나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직 호가 없었다. … 하루는 책을 보다가 누웠는데 아내가 양식이 떨어졌다 말하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궁핍하고 고생스러운 형편을 얘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길어지자 나는 더욱 대답하지 않고, 책만 보고 있었다. 그때 다섯 살 된 어린 딸이 곁에 있다가 “어머니, 어찌 치인(癡人)과 수고롭게 말씀하세요?”라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베개를 치고 책을 내려놓으며 일어나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맞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내가 평생 사양할 수 없겠구나.”말하고, 나를 돌아보니 ‘치(癡)’라고 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나 있었다.

첫째, 첫 번째 어리석음은 말만 들어보면 공자·맹자·정자·주자를 내가 따라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을 살펴보면 지금의 평범한 사람만도 못하다.

둘째, 두 번째 어리석음은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서도 사람들과 벗하지 않고, 천 년 전의 옛 성현만 벗으로 삼는다.

셋째, 세 번째 어리석음은 밭을 갈아야 먹고, 베를 짜야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밭을 갈고 길쌈할 한 자의 땅도 없으면서 손을 놓고 편안히 앉아 날마다 고상한 말과 큰 담론만 일삼으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의복과 음식을 누리기를 바란다.

넷째, 네 번째 어리석음은 자기 한 몸조차 돌볼 수 없는 처지이면서 백성들의 삶이 곤궁한 것과 세상의 도리가 낮아진 것을 보면 번번이 탄식하고 한숨 쉬면서도 그칠 줄 모른다.

다섯째, 다섯 번째 어리석음은 지위는 고작 하사(下士)에 지나지 않고 몸은 변방의 한 필부에 불과한데도 한 나라의 성쇠와 안위까지 걱정하고,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으면서 천하 사람들이 오랑캐의 옷을 입게 될 것을 걱정한다.

여섯째, 여섯 번째 어리석음은 모두가 부귀한 사람들을 사모하고, 조정과 저잣거리에서 서로 다투어 얻으려 하는데, 나만 홀로 마음을 산수에 내달려 물고기와 새, 나무와 돌을 벗 삼고자 하면서도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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