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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쉬워질 때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4호 입력 2026/08/27 10:01 수정 2026/08/27 10:02

박성철 교수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미래에나 있을 법한 전선(戰線)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경고였다. 물론 일부 지역이란 한계도 있지만, 자국의 보병 한 명 투입하지 않고 지상 로봇과 드론만으로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했으니 말이다. 인간이 벌인 전쟁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종전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승리는 아니지만, 젤렌스키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고도의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를 대신해서 로봇이 전장을 누빈다니 인간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상반된 평가도 가능해진다.

“아군의 피해와 민간인에 대한 오인 사격이 현저히 줄어든다”,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 보다 더 윤리적이다. “예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보았던 소위 ‘킬러로봇’을 둘러싼 논리는 일관되게 이런 식이다. 자율살상무기(LAWS)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아군의 피해가 줄어든다. 민간인 오인 사격이 줄어든다.” 내지는 “포로 학살이나 복수심에 의한 무차별 살상도 사라진다. 왜냐하면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 오히려 윤리적이다.”라는 논리로 무장한다. 수학적으로 따져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기계는 두려움에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으니까.

방아쇠를 ‘당기는’ 기계적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인지를 더듬어보려면 ‘분실’이란 단어를 떠올려 보면 된다. 주지하다시피 군대에서 병사가 죽으면 분실이라고 한다. 1972년 6월 제정된 ‘사망자 처리 업무 규정’에 따라 한국 육군 병이 사망했을 경우 시신은 군수참모부 물자과에 보관했다. 민법상 시신을 장례 및 매장 대상의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만, 생사의 차이로 하나의 인격체를 소모품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은 면치 못한다. 인간이고 고귀한 생명이며 어느 가정의 소중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필리파 풋(Philippa Foot)이 그의 논문에서 “5명을 칠 수 있는 대형 화물차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 1명이 서있는 선로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 하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수학적으로는 타당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다른 문제이다. 그럴 수 있다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허용 가능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의도를 가진 채 사람을 밀어 죽이는 것은 비록 같은 결과임에도 거부감은 상당하다. 공리주의도 완벽하지 않고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우리는 수학적 삶을 살지 않는다. 도덕적 잣대도 효율이나 상식만큼 우리 삶의 기본 전제다.

그런 점에서 기계의 생명이라면 0과 1의 데이터다. 즉 기계식 살인은 그저 픽셀 하나를 지우는 연산에 불과하다. 인간 병사라면 적을 죽일 그 순간에도 무언가를 느끼겠지만, 기계는 고통도 없고 갈등이나 후회도 없다. 그렇다면 기계를 통한 전쟁은 더 쉬워지고, 그 결과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질까?

자율 무기의 확산은 단순히 명중률이나 살상력의 효율성 상승 같은 문제만은 아니다. 전쟁의 문턱이 확 낮아진다는 무서운 말이다. ‘전쟁으로 평화를 완성하겠다’는 아이러니가 온 세상 단위로 극대화된다는 의미다. 일단 인간 병사가 죽지 않는다는 장점에 정치인들은 더 쉽게 전쟁 카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죽는(!) 전쟁에서는 반전 여론이나 도덕적 가치에 근거한 민주주의적 압력이 작동할 공간이 없다. 전사자 통계는 소위 ‘기체 손실 현황’으로 대체될 뿐이다. 전쟁이 쉬워지게 된다. 도대체 이란 전쟁을 왜 일으켰는지 이유나 명분을 알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 케이스가 그 시작이 될까 두렵다. 전쟁이 쉬워지면 죽음도 가벼워진다. 로봇이 대신 싸우는 전장에서 우리 인간은 그럼 무엇을 잃게 되는가!

핵은 너무 파괴적인 핵은 그 자체로 오히려 억지력이 됐다. 핵무기의 역설이다. 자율 살상무기는 외려 그 반대다. 너무 저렴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선택과 사용이 쉬워진다. 드론 한 대의 가격은 수천만 원이다. 순항미사일보다 수십 배 싸다. 값싼 전쟁은 더욱 빈번한 전쟁으로 이어진다. 미래의 전쟁을 자랑했던 젤렌스키는 이어서 말했다. “아군이 죽지 않는 전쟁에서 국민들은 전쟁을 실감하지 못한다. 실감하지 못하는 전쟁은 그래서 멈추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기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누가 전쟁의 주체인가 보다 누가 책임을 질 거냐! 본질적 문제 말이다. 가령 로봇이 민간인을 잘못 식별해 죽였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느냔 말이다. 협상 결렬과 공습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미국·이란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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