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올해 ‘산사태 대책상황실’을 본격 가동하며 646곳의 취약지역에 대한 선제 관리에 나섰다.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임시대피소 168곳 지정, 현장 대피훈련 실시 등 일련의 대응은 분명 이전보다 진일보한 준비 태세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와 태풍이 잦아지는 지금, 경주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행정적 체계 구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2024년의 사례들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시 경주국립공원 토함산 일대 세 곳에서는 일반 산사태보다 훨씬 강력한 ‘땅밀림’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황용동 한 곳에서만 1만2231㎡에 달하는 급경사면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으며, 문무대왕면 범곡리 마을은 그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같은 해 석굴암 인근에서도 산사태가 발견돼 국가유산청 긴급예산을 투입한 응급 공사가 불가피했다. 천 수백 년을 지켜온 문화유산조차 기후변화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땅밀림은 평소에는 조용히 진행되다가도 폭우나 지진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지반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2018년 문무대왕면 장항리에서 국도 노반이 땅밀림으로 내려앉았던 사례는, 이 위험이 결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님을 입증한다. 당시 차량 통행이 없었기에 인명피해를 면했을 뿐, 조금만 상황이 달랐더라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지금 경주에 필요한 것은 사후적 ‘대응’을 넘어선 선제적 ‘복원’이다. 취약지역 담당 공무원 지정과 유관단체 협조체계 구축은 훌륭한 출발점이지만, 그것이 실효를 거두려면 정밀 지질조사와 항구적 복구 계획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산은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고, 그 아래 살아가는 사람과 문화는 더욱 그러하다. 철저한 대비만이 경주의 산과 사람을 함께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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