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피정 1
신달자
영하 20도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까지는
소리가 없다
바람은 아예 성대를 잘랐다
계곡 옆 억새들 꼿꼿이 선 채
단호히 얼어 무겁다
들수록 좁아지는 길도
더 단단히 고체가 되어
입 다물다
천 년 넘은 수도원 같다
나는 오대산 국립공원 팻말 앞에
말과 소리를 벗어놓고 걸었다
한 걸음에 벗고
두 걸음에 다시 벗을 때
드디어 자신보다 큰 결의 하나
시선 주는 쪽으로 스며 섞인다
무슨 저리도 지독한 맹세를 하는지
산도 물도 계곡도 절간도
꽝꽝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있다
나도 이젠 저런 섬뜩한 고립에
손 얹을 때가 되었다
날 저물고 오대산의 고요가
섬광처럼 번뜩이며 깊어지고
깊을수록 스르르 안이 넓다
경배드리고 싶다.
피정, 대지의 침묵이 내 속에서 깊어지는 시간
시인은 영하 20도의 추위 속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사물이 입을 닿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바람”이 “아예 성대를 잘”라내고, “계곡 옆 억새들 꼿꼿이 선 채/단호히 얼어 무겁”고, “좁아지는 길도” 고체로 화하는 이 자연이야말로 침묵으로 가득찬 “천 년 넘은 수도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욱 “산도 물도 계곡도 절간도/꽝꽝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결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걸을수록 시인은 서서히 그 모습에 동화된다. “나도 이젠 저런 섬뜩한 고립에/손 얹을 때가 되었다”고 깨달을 즈음, 그 고립은 더 고립이 아니다. 시인의 영혼은 상승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날이 저물고 “오대산의 고요가/섬광처럼 번뜩이며 깊어지”는 황홀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 깊이는 나의 깊이와 연결된다. 오대산이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입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죄업을 내려놓는 일이다. 말을 내려놓고(“말과 소리를 벗어놓고”), 내 육체와 영혼의 내부가 통로를 여는 순간. 눈은 더욱 반짝이고(“드디어 자신보다 큰 결의 하나/시선 주는 쪽으로 스며 섞인다”) 귀와 정신은 더 커지고 너그러워지면서, 어느새 마음은 수천의 사람들이 편하게 놀 수 있는 광장이 되는 것(“깊을수록 스르르 안이 넓다”)이다.
새해에는 침묵에 “경배드리고 싶”은 나날이 더욱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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