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홈 오피니언 연재 박성철의 문화단상

힘들면 욕을 하세요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18호 입력 2026/02/05 10:52 수정 2026/02/05 15:44


박성철 교수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사진 한 장이 화제다. 사진 속에는 수갑을 차고 있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앉아 있다. 재미있는 건 미국 뉴욕 마약단속국(DEA)에 압송되어 온 신세라서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생뚱맞게 ‘엄지척’을 하고 있다. 엄지척은 보통 ‘일등’, ‘최고’의 의미다. 위치상 첫 번째 손가락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이지 싶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럼 두 번째 손가락은 뭘까? 뭔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일제히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손가락은 언어를 대신한다. 이번에는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보자. 앗! 안 드는 게 낫겠다. 왜냐하면 그 손가락만 들어 올리면 기분이 엄청 나빠진다. 이유는 선명하다. 세 번째 손가락은 언어가 아니라 감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두로의 엄지척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얼굴엔 표정이 없어 그의 마음을 읽기 힘들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을까? 그와 마찬가지로 함께 찍힌 마약단속국 직원들 표정도 도통 속내를 알 수 없기에 뜬금없는 그의 엄지척은 괴이쩍다. 엄지로 설마 욕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니들 잘났다” 뭐 이런?

 

미국심리학회에서 실시한 욕에 관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논제도 파격적이다. “욕은 참는 거 아니다: 욕설은 상태적 억제 해제를 통해 힘을 향상한다(Don’t Hold Back: Swearing Improves Strength Through State Disinhibition)” 연구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의자를 잡고 하는 푸시업을 주문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는 운동처럼 되어버리니까 욕을 발화하는 그룹과 중립적 단어를 반복하는 그룹으로 나누어봤다. 그래서 결과가 어땠냐고? 희한하게도 수행 내내 욕을 하며 투덜대던 그룹이 더 오랫동안 푸시업을 하더란다. 실험을 주도했던 리처드 스테판 박사는 주장한다. 무의미하고 부정적 형태의 욕설일지라도 집중력과 자신감을 고양하여 소위 ‘몰입(flow) 생태’에 이른다고 말이다.

비슷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도 있다. 임신·육아 커뮤니티 게시글에 단골로 올라오는 소위 ‘출산 중에 터져버린 산모의 욕설’이 그것이다. 분만실에서 산고(産苦)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무의식적으로 “이런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 자연스러운 욕(설)의 발화는 심리적 안전장치와 같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찬 얼음물에 손을 담근 채 욕설을 했더니 고통을 33%나 더 오래 참았으며 심박수가 상승하는 등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더란다.

욕설의 이쁜 짓은 이뿐만이 아니다. 욕설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집단 결속을 공고히 한다. 상관의 뒷담화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유대감은 강화된다. 흉을 보는 걸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신뢰가 쌓인다. 단, 같은 처지의 친밀한 관계에서만 허용해야지 낯선 사람이나 공식적 상황에서의 험담은 외려 갈등을 유발한다.

마두로의 구속과 함께 미국 백악관은 대통령 밑에 욕설을 넣은 게시물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밑에다 “까불면 죽는다”는 뜻의 ‘Fuck Around and Find Out’의 앞 글자(FAFO)가 선명하다.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소셜미디어에, 하물며 (연간 국방 예산 규모가 약 1300조 원대로 흔히 천조국이라고 부르는) 미국 대통령이, 그것도 비속어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흔히 욕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다. 가령 발을 찧었을 때 “아, 젠장!” 한다거나 운전 중에 갑자기 끼어든 차에 대고 “에이 C” 하는 식이다. 평소의 말하기가 ‘안내 방송’이라면 욕은 마치 ‘화재경보기’와 똑같다. 왜 하필 화재경보기냐고? 예의 바르거나 예쁘지 않아도 된다.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그저 크고 즉각적이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짧지만 강한, 감정의 즉각적인 전달을 위해서 일부러 욕설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마두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거야!” 완곡하고 정제된 공식적 표현을 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거친 비속어를 선택함으로써 세계인들의 감정 시스템을 흔들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감정 회로는 이성 회로보다 먼저, 그러나 더 극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