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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16호 입력 2026/01/22 11:14 수정 2026/01/22 13:19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따뜻한 생명력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합주


 

손진은 시인확대
손진은 시인
김춘수의 이 시는, 눈이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이/바르르” 떨게 하듯 온통 우리의 감각을 열어놓는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시의 창작 모티프가 된 샤갈의 「나의 마을」은 샤갈이 파리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그의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를 추억하며 그린 작품이다. 화면의 중심에는, 청색의 눈둘레를 가진 흰 얼굴의 염소와 초록색 얼굴의 ‘나’가 연인처럼 그윽히 서로를 쳐다본다. 둥글게 그어진 가는 실선이 둘의 눈동자를 연결하고 있다. 이 평화로운 존재를 중심으로 이웃하는 초록, 빨강, 파랑의 강렬한 색채와 대각선 구도는 따뜻한 생기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춘수는 이 환상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인상을, 자신의 고향 마을에 투사하여 다양한 이미지로 병치한다. 샤갈의 이미지를 한국적 풍속과 분위기로 옮겨 보려는 시도에서 ‘아궁이’라는 토속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으며, ‘쥐똥만한 겨울 열매’를 그린다. 산문에서 그는 “쥐똥만한 겨울 열매를 나는 아득한 유년 시절에 한 두 번 본 일이 있는 듯도 하다. 아니,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내 집에는 사투리로 ‘망개’라고 부르는 열매가 뜰 안 쪽에 맺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의 빛깔이 올리브빛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눈’은 차가운 겨울의 이미지가 아니라 따뜻하고 순수한 순백의 이미지로 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새로운 이미지로 구축된다. 봄을 맞이한 생동감과 따뜻한 풍경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미지 중심의 감각적인 시를 창조했던 시인은 샤갈의 그림에서 따뜻한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다. 3월임에도 눈이 내리는 곳,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이한 자연현상이 나타나는 곳. 그곳에는 시인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내려오는 ‘눈’을 매개로 새로 돋는 봄을 바라보는 사나이의 건강한 정맥이 보이고,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아낙들의 움직임도 어른거린다. 여기에 “올리브빛으로 물이” 든 ‘겨울 열매’의 신선한 이미지들이 더해진다. 샤갈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마을의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김춘수는 그것에서 얻은 심상들을 언어로 드러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의미의 전달보다는 반복적인 리듬과 이미지의 환기에 치중한다. ‘눈’(흰색), ‘정맥’(파랑색), ‘올리브빛’(녹색), ‘불’(빨강색) 등 다양한 색감을 환기하는 시어를 사용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봄의 생명력을 환기한다.

 

우리는 그 마음 속의 마을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할 수 없다. 심적 환상을 그림으로, 이미지로 담는 화가와 시인이 공유하는 예술적 세계는 ‘진실한 환상’을 창조해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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