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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발걸음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16호 입력 2026/01/22 10:59 수정 2026/01/22 17:01


박성철 교수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
경기도 안산에 소재한 어느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즘 세상에 점주가 무릎을 꿇은 채 주문을 받는 것도 이상했지만, 손님 앞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는 것도 좀 그랬다. 나중에야 정황이 드러났지만, 두 분의 손님들은 청각 장애우이셨고 점주의 손짓은 “맛있게 드세요”하는 수어(手語)였던 것이다. 기대치 못한 수어에 깜짝 놀란 손님들은 “수어를 참 잘하신다, 감사하다”며 역시 수어로 화답했다.

 

한껏 커진 눈과 환한 미소를 머금은 손님 얼굴에서 행복한 마음이 전해진다. 가게를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점주는, 급하게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어를 여러 번 따라 해보았다고 한다. 미담을 접한 커피 본사에서도 점주에게 “누군가에겐 단순한 손동작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따뜻한 대화라는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남의 마음이나 나와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비록 서툴지라도 정말 큰 한 걸음이 아닐 수 없다.

‘작지만 큰 걸음’은 누가 뭐래도 아기들이 으뜸일 테다. 자신의 두 발로 세상에 우뚝 서서 앞으로 내딛는 첫걸음은 진화론적으로 의미가 크다. 일단 직립이라는 방식도 놀랍지만 첫발을 떼는 아기들이 죄다 미숙아라는 점도 경이롭다. 동물들이야 태어나자마자 비틀대고 몇 번 넘어지다 보면 이내 어미 품에 안겨 직접 젖을 빨아먹을 정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허나 인간은 다르다. 두 발로 선다는 건 골반이 상체 무게를 하체로 전달하는, 소위 징검다리의 역할로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효율적으로 걷고 달리려면 거기에 맞춰 골반도 진화할 수밖에 없다. 점점 좁고 단단해져 갔다.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아야 잘 걷고 잘 뛸 수가 있으니까. 이제 사냥이나 채집에 적합한 골반이 완성되었으니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아니 웬걸, (성숙한) 큰 뇌의 아기가 나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말인즉 긴 양육 기간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기어 다니던 아기가 드디어 ‘첫걸음을 떼는’ 것은 크나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말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이 선언은 저 멀리 달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라 발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에서도 그렇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어느 인류학자는 아기의 첫걸음을 ‘신체가 비로소 세계와 계약을 맺는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걷기 시작한다는 건 공간의 활용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회적 참여도 커지며 엄마 아빠에 대한 완전한 의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독립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많은 문화권에서 첫걸음을 통과의례(rite of passage)로 보는 까닭이다.

직립보행으로 골반이 좁아졌다고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좁아진 골반으로 인류는 혼자서는 출산할 수 없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다른 포유류는 대부분 혼자서 출산을 하는데 말이다. 산부인과, 미역국, 산후조리원 등 인간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영장류가 된 것이다. 개인의 가장 소중하고도 위험한 순간을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을 도모하는 구조라고 보는 게 맞는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이제 ‘한걸음’은 건강 상태의 바로미터가 된다. 어르신들 이야기다. 전문가에 따르면 어르신들의 걷는 자세나 보행 속도만 살펴봐도 인지 기능은 어느 정도이고, 낙상 위험은 얼마나 큰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한걸음을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뇌에서 시작된 운동 신호가 뇌줄기와 척수를 타고 각 근육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뇌와 신경, 그리고 근육의 유기적인 어울림으로 한걸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보행 속도가 느린 걸음은 치매의 위험이 1.6배가 높아졌고, 보폭이 짧을수록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낮은 발이 가장 높은 뇌 상태를 정확히 대변해 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치매 진행을 늦추려면 그 한걸음을 쉬지 않고 이어나가면 된다. 하루 3,000보만 걸어도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3년이나 늦출 수 있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자료에서는 5000~7500보씩 걸으면 무려 7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위대한 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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