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홈 오피니언 연재 박성철의 문화단상

혼잣말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14호 입력 2026/01/08 13:25 수정 2026/01/08 16:06

 


박성철 교수<br>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피라미타 칼리지

“이것을, 이이 이거스을~ 소인수분해 하면... 왜? 왜? why? 응, 아니야”


이것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아들이 웅얼대는 혼잣말이다. 아무런 맥락도 없고 도통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어폰 너머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볼륨을 키운 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비트를 타듯 어깨가 들썩이는 폼으로 볼 때 거친 갱스터 랩을 듣고 있는 게 틀림없다. 기가 막히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이 아닐 수 없다. 의식이 분산된 상태에서 집중을 요하는 수학 문제를 푼다는 게 신기하지만,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는 게 집중이 잘 된다는 아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나 오늘 망가질 거야!’ 하며 술잔을 드는 아빠를 닮았는지 녀석도 ‘나 공부에 집중 안 할 거얏’ 하듯(?) 공부한다.

우리는 가끔씩 혼잣말(self talk)을 한다. 가령 칫솔을 집어 들며 “양치를 해볼까나~” 혼자 흥얼거리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란다. 어쨌든 말은 기본적으로 화자가 있고 따로 청자가 있어야 하는 구조다. 글자 그대로 대화(對話)이니까. 하지만 혼잣말은 화자와 청자가 동일하다. 이걸 잘 활용한 게 가령 주문(呪文) 같은 거다. 불교를 몰라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아제 아제 바라아제···(반야심경)’같은 주문 속에는 진리의 강력한 힘이 깃들여져 있다고 하는데, 그 비밀(秘密)한 주문을 발음하면서 동시에 그걸 듣고 있는 구조다. 주문을 외우는 자가 영험을 받는 자다 뭐 이런 말이다.

이런 원리를 제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직군이 전문 스포츠 선수들 아닐까 싶다. 다음은 호주 오픈 테니스 선수권 대회 중에 있었던 일이다. 토미 하스(Tommy Haas)라는 독일 선수의 8강 경기 영상인데, 카메라에 잡힌 그의 입 모양을 보면 내밀한 혼잣말을 엿들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는 이길 수 없어, 하스. 이렇게 해서는 안 돼. 실수가 너무 많잖아. 더는 의욕이 안 생기네. 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누구를 위해? ··· 나는 더는 못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래서 이렇게 화만 낼래? 이건 완전히 바보짓이야. 네가 친 공이 네트를 넘어가지 못했어. 그렇지만 여전히 이기고 있잖아. 년 여전히 이기고 있다고! 힘을 내자. 절대로 질 수 없어. 싸우자, 싸우자!”

보통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두 가지다. 아기들이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 자신의 이름으로 어필할 때다. 그게 아니라면 성인의 경우인데,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된다. 나도 아들을 혼낼 때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아들아!’, ‘○서야!’, ‘박○서!’ 세 단계로 심화된다. 이름이 나왔다면 매우 심각한 상태다. 학교 교실에 있는 티비 모니터를 깼다는 아들 담임 선생님 전화를 끊자 말자 “야! 박*서! 일루 와 봐” 이랬었다.

아무튼 하스 선수의 독백에는 불만 가득한 넋두리도, 그만하자고 꼬시는 악마의 유혹도, 그럼에도 이기고 말겠다는 투쟁 본능도 녹아 있다. 재미있는 건 혼잣말 속 화자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인칭(하스)에서 1인칭(나)을 거쳐서 2인칭(너)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방청객이 되었다가 선수 본인으로 돌아왔다가 또 코치가 된다.

그렇다면 왜 정신 분열적(?) 평가를 하고 있을까? 실제 경기 운영에 있어 혼잣말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동기 부여 방식이든 지시형이 되었든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스포츠 퍼포먼스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 한국인이라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기억할 것이다. 박상영 선수(펜싱 에페)가 10-14로 지고 있다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반복하고는 거짓말처럼 뒤집었던 그 결승전을.

우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원인이 신체적 한계인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관한 문제가 대부분이다. 우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방해물 앞에 무릎을 꿇을지 아니면 계속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본인 마음이다. 내 마음이 나한테 속삭이는 혼잣말이 그래서 무서운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부처를 꼽으라면 관세음보살이 으뜸이다. 관세음이라는 명호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염원에 응하는 자비스러운 보살도 되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리[世音]를 잘 지켜보라[觀]는 말이기도 하다. 혼잣말의 인격화가 아닐 수 없다. 배드민턴 ‘왕중왕전’ 격인 월드투어 파이널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세영 선수를 보고 써본 글이다.


저작권자 © 경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