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벌레는 한국 고유종이지만 매우 희귀해 2008년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201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이 곤충은 주로 오래된 팽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등의 군락지에서 서식한다. 애벌레는 이들 나무의 줄기 속에서 2~4년간 목질부를 갉아먹으며 성장하고, 어른벌레는 7~8월에 출현한다. 현재 국내 서식지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남부 일부 지역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2017년에 경주에서 가까운 경남 밀양의 표충사 지역에서 비단벌레 서식처가 발견됐다. 이것은 최근 변화하는 기후 온난화와 더불어 경주지역에서도 비단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비단벌레의 주요 기주식물인 팽나무(Celtis sinensis)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팽나무는 과거 길가에 심어 이정표 역할을 하거나 마을의 당산목으로 숭상되기도 했다. 또한, 풍랑에 강하고 내염성이 있어 해안가 방풍림으로도 활용됐으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포구나무’라 불리기도 했다.
경주는 동해안과 인접해 해풍과 비옥한 토양을 갖추고 있어 팽나무 생육에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경주대학교 최재영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경주의 수백 년 된 보호수 가운데 느티나무가 가장 많고, 이어 회화나무와 팽나무가 분포한다. 보호수로는 감포읍 전촌리, 안강읍 하곡리 등의 팽나무가 있으며, 현곡면 오류리에는 등나무와 얽힌 팽나무의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월성, 계림 등 유적지에도 수백 년 된 팽나무가 분포한다. 이는 경주가 비단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생태적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따라서 1500년 전 신라시대 경주 일대에 팽나무와 비단벌레가 풍부했으리라는 추론은 자연스럽다.
신라인들이 경주에 서식하는 비단벌레를 채집해 금동 말안장 등 장신구를 장식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장신구 제작을 위해서는 수많은 비단벌레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신라 왕실은 비단벌레를 채집하거나 대량으로 사육하면서 이를 관리하는 특별한 기관을 운영했을 가능성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경주의 특정 지역에 비단벌레 생태복원을 위한 팽나무 숲 조성을 제안한다. 이는 경주의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는 새로운 생태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현재 비단벌레의 정확한 생태적 서식 환경에 관한 연구는 아직 제한적이다. 주로 절 주변의 오래된 팽나무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국립문화유산연구소는 2019년부터 팽나무 고사목에서 곤충과 균류의 서식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으며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증식과 보전 전략을 마련하고자 한다. 비단벌레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팽나무 숲 조성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고사목을 보전해 애벌레의 서식 환경을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숲이 조성되더라도 비단벌레를 직접 관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팽나무 숲 자체만으로도 신라인의 삶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생태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비단벌레 장식과 신라의 수공예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비단벌레의 색감을 활용한 전시·체험·공예 상품을 개발한다면 관광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비단벌레 서식지 복원과 결합된다면 생태·문화 융합형 관광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다. 또한 경주시민과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배우는 교육적 장으로 활용되며, 지역 공동체의 자연 가치 인식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황남동에서 자라며 첨성대, 계림숲, 반월성, 월지 등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경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어느 날 대릉원과 첨성대를 오가는 ‘비단벌레 열차’를 보며 “살아 있는 비단벌레를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
경주는 천년의 찬란한 역사 위에 서 있는 도시이다. 신라인들의 섬세한 문화유산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섬세함을 드러내고 확장하는 일은 후손들의 몫이다. 신라의 문화유산에 자연과 환경을 더한다면 그 역사적 시간은 더욱 섬세하고 풍성한 이야기로 확장될 것이다. 팽나무 숲과 비단벌레는 단순한 생태복원을 넘어 신라시대와 오늘의 시간을 잇는 다리가 될 것이다. 경주는 팽나무 숲을 통해 역사와 생태가 융합된 살아 있는 신라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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