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인도의 턱을 오르내리는 일, 버스를 타고 내리는 일이 힘겹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일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난관일 수 있다. 지체장애1급의 정기용(43) 씨 역시 장애를 입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소외된 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편리한 사회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는 정 씨의 한 마디에서 우리(비장애인)의 일상이 ‘편리’라는 것을, ‘편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정기용씨는 현재 경북지체장애인협회 경주시지회(회장 이상인) 안강읍분회장을 맡고 있다.
“안강은 경주인구에 비례하면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장애인 인구도 많이 있겠죠. 그런데 우리(장애인)에게 지원되는 부분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안강지역에는 저상버스도 들어오지 않고 안강분회만의 차량지원도 없어서 지역 곳곳에 분포돼 있는 장애인을 밖으로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안강분회는 80여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과 정성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무실 겸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도 회원들이 기금을 모아서 지었습니다. 지원받은 기금은 전혀 없어서 아직도 빚을 지고 있는 형편이죠. 그래도 회원들 모두 마음이 따뜻하고 누구 하나 남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없어서 즐겁게 지냅니다. 건물 뒤편으로는 회원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도 있습니다. 고구마, 오이,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정 씨는 이 같은 열악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올 1월 분회장을 맡게 됐다.
“지난 2월에 위덕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취업과 분회장 임무를 놓고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제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특별하게 큰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작해야 관계기관에 찾아가 시위하는 게 다겠죠. 그래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장애인을 보면….”
정 씨는 95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장애를 입게 됐다. 그 후 자포자기했던 시절도 보냈으나 자기계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사실 사고 당시의 기억도 전혀 없습니다. 제가 앞차를 박았다고 하는데…, 그랬나 봐요. 퇴원 후에는 창피해서 돌아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집안에서 지내다가 직업전문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경제활동과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찾아간 거죠. 컴퓨터 그래픽을 배웠는데 사회 나와서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력서를 100통이 넘게 썼지만 한 군데도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꿈을 갖고 시작한 첫 도전에 패배를 맞본 정 씨는 또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자포자기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1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온 일이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정 씨의 외출을 재촉한 것은 입원과 수술이었다.
“하반신이 마비되면 콩팥기능이 약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수술을 계기로 바깥공기를 쐬게 됐죠.(하하) 또 나와서 보니 저보다 불편한 다른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고 일어선 것 같습니다”
정 씨는 이것이 계기가 돼서 멈추지 않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복지’를 생각했고, 서라벌대에 입학해 3년동안 사회복지와 유아교육을 공부했습니다. 그 후 위덕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올 2월에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정 씨는 인터뷰를 끝낸 후 장애인기능경기 대회 ‘컴퓨터 수리’ 부문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승선 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정씨의 레인 앞에 장애물이 없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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