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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통의 만물장, 양북면 어일리 ‘양북 5일장’

강송이 기자 gjksy@hanmail.net 1039호 입력 2012/05/22 00:00 수정 2012/06/18 03:08
경주의 전통시장을 찾다 ⑤양북 5일장

경주에서 4번 국도를 타고 추령재를 지나 동해안으로 달리면 감포방면과 양남방면으로 갈라지는 요지가 양북면 어일리다. 양북면주민센터 뒤쪽으로 양북5일장이(5, 10) 들어선다.
1942년 개설된 이 5일장은 어일장魚日場이라고도 한다. 대지면적 6374㎡의 중형시장으로 인근에 바닷가가 있어 신선한 해산물이 주로 거래되고 산지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이 유명하다.
양북5일장은 새벽에 일찍이 장이 열리고 점심시간 전에 파장하는 전형적인 시골의 5일장이다. 특히 인근에는 기림사, 골굴암, 골굴암마애여래좌상, 감은사지삼층석탑, 이견대, 문무대왕릉 등의 유적이 있어 장도보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관광객들도 많이 있다.

●일과가 장에서 시작된다
장이 서는 날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인근 마을 주민들은 손수레를 끌고 또는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들고 하나, 둘 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시사람들은 해가 질 무렵, 또는 퇴근 후 간단하게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이른 아침 장에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달달달달” 경운기 소리, 손님을 부르는 확성기 소리, 도시가 익숙한 기자에게는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이른 아침 활기찬 표정으로 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주민들의 모습에 활기를 받아 함께 아침장을 보았다. “올 때가 됐는데 왜 안 오나?” 약속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 5일장은 당연한 계추장소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이들에게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정회를 푸는 공간이며 어쩌면 이들에게는 장사는 그다음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이지만 지역 상인과 주민들로부터 피어나는 뜨거운 삶의 열기가 느껴졌다.

●살아있는 수산물
양북면 어일리는 평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이지만 서쪽에 동해바다로 흐르는 대종천이 있으며 마을 앞산의 지형이 고기 한 마리를 닮았다 해서 ‘어일리’라는 지명이 붙여졌다. 30년 전만 해도 은어(민물고기)가 바글바글해서 은어와 인근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수산물이 최고의 특산물이었는데 지금은 은어는 찾아볼 수 없고 수산물도 지역의 물건이 아닌 것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수산물 코너는 싱싱하게 살아 있다.
인근의 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수산물이 유명했던 양북. 현재는 많은 양이 잡히지는 않다고 하나 수산물 코너는 꿋꿋히 한자리를 차지하며 양북장의 간판이 되었다.
↑↑ 인근의 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수산물이 유명했던 양북. 현재는 많은 양이 잡히지는 않다고 하나 수산물 코너는 꿋꿋히 한자리를 차지하며 양북장의 간판이 되었다.


●양북의 패셔니스타
때깔 있게 차려입고 나오는 양북의 패셔니스타 동네 어르신들과 아주머니들.... 이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쉽게 쇼핑센터를 나올 수 없는 까닭에 의류 역시 시골장터에서 마련해야 한다. 양북장에서 인기 있는 품목 중 하나인 일명 ‘몸빼’. 젊은 사람들은 ‘저 옷을 누가 입을까?’ 싶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인기가 높은 평상복이다. 칼라풀한 색깔과 다양한 꽃문양들로 디자인이 제각각인 것을 보면 ‘몸빼’가 패션을 무시한 채 실용성만 중시한 옷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할 모양이다.
시골장터의 인기품목 의류(몸빼). 갖가지 현란한 색상과 디자인의 의류가 할머니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 시골장터의 인기품목 의류(몸빼). 갖가지 현란한 색상과 디자인의 의류가 할머니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시골장은 만물상
시골장터... 5일장은 지역주민들에게는 만물상이다. 5일장이라 하면 각종 계절나물과 채소... 수산물이 즐비할거라고 예상하지만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만물상처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나와 몸매를 선보이며 주인을 기다린다. 농사에 필요한 낫, 호미 등 농기구부터 양말, 속옷 등 각종 의류, 그릇, 반찬통 등 각종 주방용품과 욕실 용품.... 마치 대형마트를 실내에 펼쳐 놓고 따사로운 봄볕아래 소풍을 즐기는 모습이다. 작은 김치통이 3~4000원,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한 할머니는 꼼꼼히 만져보고 돌려보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지 옆 가게로 이동한다.

●찌끄러기 호미와 낫
장이 형성되어 있는 무리에서 조금은 떨어져서 낫과 호미 등 농기구를 펼쳐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경주신문에서 나왔습니다”라는 인사에 “나는 눈 안 보여서 이제 신문도 못 봐”.... 기자의 인사가 신문을 팔러 나온 사람인 줄 알았던 것 같다.
한평생 농사짓고 농기구 팔아 자식들 연필값, 공책값을 마련했다는 할아버지. 놀면서 ‘찌끄러기’ 남은 것 갖고 나와 팔고 있다고 한다. 호미가 2000원, 낫이 3000원... 이 기구들이 다 팔리면 이 자리에 또 다른 추억이 피어날 수 있을까?...

●좌판상인의 소박한 물건
좌판에 늘어놓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 많다. 뜻밖에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소박한 양의 쌀과 상추가 앞에 놓여 있었다. 집에서 농사를 짓는데 장날이면 가지고 나와 팔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안 나오려고 했는데 상추가 있어서 나왔다”며 짧은 웃음을 보였다. 좌판상인들의 물건은 소박하다. 얼마되지 않은 양에 얼마되지 않는 값일 것이다. 5일장을 찾는 좌판상인들은 이젠 장사가 목적이 아닌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양북의 스타벅스 ‘시장커피’
전통시장에 인기가 좋은 이동식 시장커피를 한 번쯤 기억할 것이다.
양북장에는 정차하고 있는 시장커피가 있다. 상가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는 시장커피는 1잔에 500원. 자리값은 없다. 장을 보고 이곳에 들러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푼다. 장이 서는 날마다 오는 단골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날도 만석이었다. 이 정겨움이 따뜻해 나도 수다상대가 있어 잠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라... 사장님이 나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며 수다상대가 되어 주었다.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맛과는 또 다른 추억이 녹아있었다.
5일마다 장을 볼 수 밖에 없는 시골 주민들은 손수레를 끌고 나와 각종 채소와 생활용품 등 푸짐한 장을 보고 있다.
↑↑ 5일마다 장을 볼 수 밖에 없는 시골 주민들은 손수레를 끌고 나와 각종 채소와 생활용품 등 푸짐한 장을 보고 있다.


●양북두부
썰렁한 주위의 허름한 건물에 ‘양북두부’라는 네 글자. 두부공장인가 하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냥 나가려다 보니 물어 담긴 두부가 있었다. “계세요?”.... 젊은 사장님이 나왔다. 혼자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바쁘셨던 모양이다. 최성백(42)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아버지 때부터 2대째 40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주민의 수는 크게 차이가 없는데 판매량이 IMF때보다 못하다고 한다. 최 사장님은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우니 시장에도 안 나오고 안 사먹고 안 쓴다. 명절 때도 많이 안 팔린다”고 했다. 12모가 한판인데 하루에 20판을 만들지만 다 못 팔 때가 많다고 한다.
“두부는 맛이 좋은가요?”라는 질문에 “미국산 콩을 쓰는데 종자는 어디나 다 똑같다. 같은 라면으로 끓이는 사람마다 맛이 다 다르듯이 두부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틀린 것이다. 재료는 어디나 다 똑같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하)”라며 40년 전통의 최고의 두부 맛을 자랑했다.

●에필로그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한산해져 가는 양북5일장. 그러나 30~4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양북5일장을 지켜온 상인들과 양북주민들은 이른 아침 시장에서 일과를 시작하며 오늘도 힘차게 장을 지키고 있다.
↑↑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한산해져 가는 양북5일장. 그러나 30~4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양북5일장을 지켜온 상인들과 양북주민들은 이른 아침 시장에서 일과를 시작하며 오늘도 힘차게 장을 지키고 있다.
전통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은 길게는 30~40년, 짧게는 10년 이상 한 자리에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장터에서 물건을 팔아 자식들을 온전히 키워낸 그 삶과 환한 웃음이 넘쳐나는 그 얼굴...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사진 찍는 것을 몹시도 꺼려하는 탓에 많은 것을 담을 수는 없었다.
전통시장을 거닐다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고 즐거워진다. “이건, 얼마에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신바람 나고 물건을 구매해 양손에 하나씩 하나씩 비닐봉지가 쌓여 가면 그 무게만큼 즐거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흥정도 하고 덤으로 더 달라고 떼도 써보며 조금은 어설프게 말을 건네며 정을 나눌 수 있다. 북적북적 거리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다소 한산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앞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어주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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