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벚꽃이 아름답게 경주를 물들인다. 벚꽃이 만개한 곳마다 사람들이 모이고, 나무는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초록색 싹이 나무를 다시 물들인다. 그렇게 벚나무는 봄 눈을 가득 머금었다가 연둣빛 새싹 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의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준비한다. 매년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벚나무를 보며 아줌마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나무일까?’ 아줌마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그렇게 잘나지도 않았고 뛰어난 능력도, 그렇다고 아주 부족하거나 문제를 갖고 있지도 않은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성장했다. 반백의 나이가 된 지금, 아줌마는 여전히 미완성임을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인생을 안다고, 삶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도 삶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아갈 뿐이다. 모두가 살아가지만,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인생의 황금기를 누구는 이삼십 대에, 누구는 환갑이 넘어서 맞기도 한다. 사철나무처럼 매년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리하다 거대한 풍모를 갖춘 나무가 되기도 하고, 묘목의 모습을 벗자마자 매년 과실을 수확하는 나무로 살아가는 삶이 있고, 벚나무처럼 화사한 벚꽃으로 봄의 절정기를 보여주고 이른 여름을 준비하며 녹색 잎을 싹 틔우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로 빈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철나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황혼기에 거대한 풍모를 갖춘 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것이다. 과실 나무는 매년 수확하는 삶이지만 벚꽃은 봄의 화려함과 겨울의 앙상함을 매년 보여주는 삶이다. 또한 봄의 벚꽃은 햇빛 찬란한 개화기에는 화사함을 보여주지만, 개화기에 비바람을 맞은 벚꽃은 너저분한 쓰레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같은 나무지만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노력한 만큼 거둘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그저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이테 간격이 클 때도, 작을 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원활하여 크게 성장한 해도 있겠지만, 가뭄으로 태풍으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한 해를 넘기기가 힘든 시절도 있으리라.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데로 살아가다 보면 나이테는 어김없이 생기며 우리의 삶은 모습을 갖춰간다. 나이테가 많아진 만큼 연륜도 생기고 여유도 생겼다. 결코 이삼십 대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나이테가 쌓일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아줌마는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듯이, 과거의 내가 모여 오늘의 내가 되고, 오늘의 내가 쌓이고 쌓여 미래의 내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이테를 만들어가면 된다. 이삼십 대에 꽃을 피울 인생인지, 황혼기에 꽃을 피울 인생인지, 매년 조금씩 수확하는 인생인지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오늘의 나를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아줌마는 뭐, 엄청난 과거의 삶을 잘 살아서, 조언한다고 생각할까 봐 미리 고백한다. 물론 열정적인 날도 있었고 열심히 공부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날이 그렇진 않았다. 멍 때리는 날도 있었고 방황한 날도 있었고 불평불만 가득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을 때,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을 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오늘의 아줌마를 있게 했고 내일의 꿈을 꾸는 아줌마로 키웠다고 생각한다. 갈망하니 길이 보이고, 열망하니 길이 열렸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방법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니 요령이 생기고, 그런 경험들이 또 쌓이니 연륜이 되고 여유가 생겼다. 어떤 나무의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위기는 올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견뎌라. 힘겨운 나이테가 생긴 만큼, 삶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후반 유럽에 만연했던 국민주의 음악이 아닌, 미술사조 인상주의와 같은 이름의 ‘인상파 음악’이 대두한다. 드뷔시가 바로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상파 음악으로 근대음악과 현대음악의 가교 역할을 담당한 음악계의 혁명가로 평가받는다. 드뷔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11살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했고, 12살 때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으며, 17살 때는 악보 초견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22살(1884년)에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을 수상한 것은 프랑스 음악천재의 계보를 잇는 드뷔시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드뷔시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전통음악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는 이 음악에서 매우 특별한 영감을 받았는데, 바로 이때 만든 작품이 ‘달빛(Clair de Lune, 1890)’이다. 달빛은 한자로 월광(月光)인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구별하고자 드뷔시의 작품을 보통 ‘달빛’이라 부른다. 달빛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 곡이다. 우리는 트란 안 훙 감독의 프랑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를 수놓고 있는 드뷔시의 달빛 멜로디를 아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1894년 드뷔시는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é, 1842-1898)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은 10분 길이의 교향시로, 나무의 신이 향락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화음의 사용으로 인상주의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작품은 서양 음악사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드뷔시는 오페라에도 손을 댄다.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로 1902년 오페라를 발표한다. 오페라는 희극처럼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중세에 있었다는 상상의 나라를 무대로, 남편의 동생을 사랑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렸다. 바그너의 비극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드뷔시가 원숙기에 접어들어 만든 교향시 ‘바다’(1905)는 그가 어렸을 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지중해에 연한 도시 칸(Cannes)에 머물 때의 경험이 밑바탕된 작품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가능한 모든 색채를 음악에 도입한 본격적인 인상파 음악이다. 초판 악보에 실린 일본의 유명작가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우키요에 작품 ‘파도’로 작품에 대한 ‘인상’을 강조했다. 드뷔시는 말년에 행복하지 못했다. 타고난 바람기로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고, 낭비벽으로 재산을 탕진했다. 딸은 부모에 앞서 죽었고, 얼마 안 가 드뷔시 역시 직장암에 걸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져 갔지만, 필사적으로 창작활동에 매달렸다. 결국 드뷔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56세(1918년)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그의 작품번호 두문자는 독특하게도 ‘L’이다. 프랑스의 음악학자인 르쉬르(François Lesure)가 드뷔시의 작품을 정리했다.
경주시가 반려식물을 키우는 시민을 위해 ‘찾아가는 반려식물 돌봄 서비스’를 실시한다. <사진> 이는 치료센터 이용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으로 전문가가 찾아가 물관리, 병·해충 관리 등 전반적인 반려식물 관리 컨설팅과 함께 분갈이 서비스도 제공한다. 16일을 시작으로 경주용강 LH아파트 등 아파트 3곳에서 실시하고, 하반기엔 9~10월 중 추가로 2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세대당 화분 2개의 분갈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분갈이할 새 화분은 직접 가지고 와야 한다. 앞서 시는 지난 2022년부터 반려식물 관리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위해 반려식물 치료센터 10곳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 첫 전국여자야구대회가 천년 역사와 문화 도시 경주에서 열리고 있다. 경주시와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주최하고, 경주시야구소프트볼협회와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주관하는 ‘제7회 선덕여왕배 전국여자야구대회’가 지난 13일 경주베이스볼파크에서 막을 열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13일~14일, 20일~21일 2주간 주말 양일에 걸쳐 경주베이스볼파크와 경주고 야구장 등 경주 일대에서 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34개 팀, 700여명의 여자야구 선수와 관계자들이 경주시를 방문한다. 대회는 리그 분리 토너먼트 형식으로, 챔프리그와 퓨처리그로 나눠 총 34개 경기가 치러진다. 13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모든 경기가 치러진 뒤 21일 챔프리그 결승전과 이어지는 시상식을 끝으로 대회가 마무리된다. 경기는 경주베이스볼파크 1, 2구장과 경주고 야구장 등 총 3개 구장에서 열린다. 지난 13일과 14일 예선부터 8강전, 20일과 21일에는 준결승과 3·4위전, 결승전이 펼쳐진다. 한국여자야구연맹 황정희 회장은 “천년 역사, 풍부한 문화가 꽃핀 경주시에서 전국여자야구대회가 개최돼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돈독한 팀워크로 추억을 쌓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여자야구인들의 우정을 다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내가 경주최부자를 쓰겠다고 다짐했을 때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생활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최부자댁에서는 무엇을 먹었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특별한 생활을 했을까? 이것은 나로서는 각별히 들여다보고 싶은 분야였다. 사람이 사는 것이 다 비슷한데 이 전통의 명가, 12대의 부잣집이라면 얼마나 다양한 음식과 옷,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사실 최염 선생님께 이런 것을 여쭈었을 때 최염 선생님도 적잖이 호기심을 내비치시면서 ‘그런 게 이야기가 될까?’ 하시면서 미심쩍어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게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앞 호에서 남천변으로 들어오던 나락 행렬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다. 그 길이 최부자댁 앞 공터를 기점으로 지금의 월정교 앞으로 해서 계림을 지나 반월성과 첨성대, 박물관과 시내로도 통하는데 그 길 역시 곡식 섬을 실어 오던 소달구지들의 길이었을 것이다. 또 지금 주차장 자리로 쓰이는 최부자댁 앞 넓은 공터 역시 처음 이사를 오던 최기영(1768~1843) 공 때부터 있던 것이다. 최부자댁에는 800석짜리 곳간이 지금도 있고 경작지들의 분포에 따라 이조리, 울산 등에 이런 곳간이 7개 더 있었다. 나락을 분산해서 보관했던 것이다. 참고로 ‘만석의 곡식’이라는 말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쌀이 주식이던 시절 1만명이 일 년 동안 먹을 정도의 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처럼 쌀을 덜 먹는 경우에는 2만명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최국선 공 이후 최부자댁이 대대로 빈민구제와 과객 대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충분한 양의 양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두는 쌀의 3분의 1은 가용, 3분의 1은 빈민구제, 1000석은 접빈객, 나머지는 치수와 공공사업으로 최염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최부자댁의 1만석 중 3분의 1은 집안 대소가가 함께 쓰는 가용(家用)으로 사용했고 3분의 1은 빈민구제로 활용했다. 과객을 후히 대접했는데 오히려 그 부분은 비용이 적게 들어가 연간 1000석 정도 사용된 듯하다. 그 나머지는 보막이나 농로개설 등 치수사업이나 요즘의 공공사업에 사용했다. 그러나 위의 설명은 단순히 쌀에 대한 논의일 뿐, 최부자댁에는 다른 곡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각 산지별로 온갖 진귀한 음식들이 끊임없이 들어왔을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최부자댁 소작농들은 대를 이어서 최부자댁 논밭을 관리해 왔고 그 규모도 어지간한 부농 못지않게 큰 곳들이었다. 그런 소작농들이 줄잡아 수백 집이었다. 그들은 경주와 울산, 영천 등 사방에 퍼져 살면서 철마다 자신들의 집 근처에서 나는 작물이나 해산물, 혹은 잘 말린 엽초(담배잎)나 특별한 먹거리들을 최부자댁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마치 지방 관아에서 중앙조정에 공물을 보내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다른 것은 국가공물과 달리 이게 강제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작하는 입장에서 누군들 최부자댁에 인심을 얻고 싶지 않았을까? 최염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소작 관계가 완전히 청산된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전에 소작하던 분들이 철마다 미역이며 생선, 산나물, 과일 등을 택배로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하물며 실제로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이던 그 시절에는 어떠했을까! 그래서 최부자댁 찬방에는 철마다 산해진미 온갖 음식 재료들이 떨어질 새가 없었다. 말린 전복이나 건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산나물이면 산나물, 해산물이면 해산물 부족할 게 없었다. 이런 진귀한 재료들은 대부분 제수용으로 썼고 동네에 퍼져 사는 친척들과 각 대를 이은 사돈댁, 또는 인사를 차리기 위한 여러 집안에 보내졌다. 귀한 손님들을 맞을 때 특별히 내놓은 음식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최부자댁 후원에는 가산으로 쌓아 올린 언덕 뒤로 ‘뒤솔밭’과 보비림이 있고 그 주변에는 수천 평의 밭이 펼쳐져 있어서 배추나 무, 혹은 음식에 필요한 각종 야채는 대부분 자급자족이 되었다. 그러니 최부자댁은 사시사철 산해진미를 먹지 않았을까? 다시 최염 선생님의 회고! “우리 식구들이 평소 먹는 음식은 외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굉장히 검소했어요. 그것은 대를 이어오며 호화와 사치를 경계한 가르침 때문이었지 싶어요. 식구들이 평소에 먹은 반찬은 일주일에 고깃국 한 번 올라오는 정도 이외에는 흔히 먹는 제철 생선에 채소류가 전부였어요” 그렇다면 최부자댁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음식들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최부자댁 전통음식의 원형은 아무래도 사옹원 참봉을 지내셨던 최국선 공(1631~1681)의 영향이 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최부자댁 고유의 술, 법주다. 이 술은 최국선 공이 사옹원 참봉으로 봉직하던 시절에 마음먹고 그 비법을 배우고 익힌 후 낙향하자마자 담그기 시작한 술로 알려져 있다. 최부자댁 법주는 달고 농도가 진한 것이 특징, 서애 류성룡 선생 가문의 가양주로도 옮겨가 “할아버지는 다른 곳에는 도량이 넓으셨는데 유독 술에는 엄하셨어요!” 최부자댁 법주(法酒)는 최부자댁 며느리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품목이었다. 온갖 데 인자하고 말수가 적으셨던 문파 선생님이셨지만 유독 술에 대해서만큼은 깐깐하기 이를 데 없어 조금이라도 술맛이 이상하면 불호령을 치셨다고 한다. 그래서 술이 익을 무렵이면 최염 선생님의 할머니나 어머니는 술 항아리들 근처에서 떠나실 줄 몰랐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놓칠새라 노심초사하셨다. 반면에 문파 선생님이 술맛을 보신 후 흡족해하시면 온갖 세상의 근심을 내려놓으신 듯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하셨단다. “이 술은 당도가 진해 술 한 방울을 상에 흘려 놓으면 금방 굳어져서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찐득찐득하게 들러붙을 정도예요. 그렇다고 술이 특별히 달지도 않아... 우리집 안채 한쪽에는 날씨가 무더울 때가 아니면 언제나 술이 익고 있었지. 독이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언제건 제때에 마실 수 있도록 독이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 술 거르는 날도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해져 있었고. 우리 집 술은 당도가 강해서 다른 집 술은 거른 후 보름을 못 넘기고 시큼하게 변하는데 우리 집 술은 두어 달을 둬도 맛이 변하지 않지요!” 이 술은 지금도 최염 선생님 댁에서 빚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안동의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종가댁에서 가양주로 알려진 술은 요즘은 꽤 유명해진 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술 역시 최부자댁 가양주가 옮겨간 전통 최부잣집 술이다. 그 이유는 바로 최염 선생님의 누님 때문이다. 서애 종가 14대 종부로 시집간 누님이 최부자댁 술을 그대로 이어서 빚은 술이 지금은 서애 종가의 가양주로 알려진 것이다. 나는 이 술을 운 좋게도 직접 마셔 볼 수 있었다. 2015년 10월에 서애 선생 종가에서 제 15대 종손인 류창해 선생의 종손 취임식이 열렸다. 최염 선생님을 모시고 행사에 참석한 나는 뜻밖에 엄격하게 제한된 취임식 장면을 종손의 외삼촌이신 최염 선생님의 추천으로 촬영할 수 있는 특권도 얻었고 최염 선생님의 누님이신 14대 종부님과 겸상으로 밥도 먹는 영광을 누렸다. 여기에서 바로 그 유명한 최부자댁 법주를 맛볼 수 있었다. 은근히 달면서도 특별히 고아한 향기가 나는 것이 ‘신선주’가 따로 없었다. 여기서 최부자댁 전래의 육포도 함께 맛보고 몇 쪽 얻어오는 특권도 누렸는데 이 육포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최부자댁 전통 법주와 달리 경주 교촌에 가면 최부자댁 본가 옆에 ‘교동법주’라는 간판이 달려 있고 실제로 꽤 맛이 좋은 술이 있다. 그러나 이 술은 최부자댁 비법을 담은 술은 아니다. 이 술은 최부자댁 친척 며느리이신 ‘배영신’이란 분이 빚은 술로 그 댁의 고유한 비법을 담아 만든 술로 알려져 있다. 지금 배영신 할머니는 안 계시고 그 아드님과 며느리 되시는 분이 빚고 계시는데 이 술 역시 탁월한 향기와 맛이 일품이다. 교촌에 가면 가끔 사서 부모님과 나누어 마시는데 약간 비싸 보이는 술값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마침 지난번 교촌에 갔을 때 요석궁 담에 ‘경주최부자댁 방식으로 저온숙성한 가양주 ‘대몽제’‘라는 광고를 보았다. 가주이신 최인환 회장님 역시 당당한 최부자댁 후손이니 비법을 알고 계실 법하다. 한 병 사서 맛보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문을 닫은 시간이라 구입하지 못해 아쉬웠다. 참고로 최부자댁 법주의 제조법은 최염 선생님의 사모님과 자부님께도 전승되어 특허청에 상표등록도 해놓았다. 최부자댁 법주에 대해 말씀을 들을 당시 최염 선생님께 왜 최부자댁 법주를 상품화하시지 않느냐고 여쭈어보았다. “우리 집 술은 찹쌀로 만드는데 재료에서부터 달라서 교동법주 정도의 용량으로 술을 담근다면 한 병에 십만 원 훨씬 넘는 고가가 될 겁니다” 또 하나, 최부자댁과 관련된 것으로 소문난 유명한 술이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경주법주’다. 이 술은 최부자댁과 전혀 관련 없고 ㈜금복주에서 경주에 공장을 두고 생산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윤을곡 마애불좌상 햇살이 일찍 찾아드는 동쪽의 땅, 서라벌의 아침이 환하다.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 두 봉우리가 너른 들판 한가운데 질펀히 누웠다. 영물인 거북이 한 마리가 서라벌 깊숙이 엎드린 형상이다. 오늘은 남산 윤을곡 골짜기를 지나 부흥사를 지나 늠비봉 절터까지 올라볼 참이다. 윤을곡과 부엉골 갈림길에서 윤을곡 산행로를 따라 걷다 왼쪽 산비탈을 오른다. 급한 경사 길에 지쳐 몇 번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드니 지척에 ‘ㄱ’ 자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윤을곡(유느리골) 마애불좌상’이다. 누가 부러 가져다 놓은 병풍처럼 바위는 정교하게 꺾여있다. 누구는 ‘삼신(三神) 바위’라고도 하고, 누구는 ‘삼불암(三佛庵)’ 또는 ‘마애삼체불(磨崖三體佛)’이라고도 한다. ‘마애’는 자연 암벽에 무엇을 조각한 것을 일컫는데 주로 불상을 말한다. 정면 남쪽을 향한 바위엔 두 기의 부처를, 오른쪽 서쪽을 향한 바위엔 한 기의 부처를 새겼다. 정면 두 기의 부처는 선이 굵고 선명하게 도드라져 남성스럽다. 반면 서쪽을 향한 한 기의 부처는 선이 얕고 가늘어 도드라짐이 약하다. 석공이 초보였는지 서툰 솜씨다.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불린다. 자세히 보면 얼굴과 몸체 좌우엔 부처가 한 기씩, 모두 네 기가 더 새겨져 있다. 남향을 한 부처와 서향을 한 부처는 새김의 기법도 달라 서로 다른 석공의 작품으로 느껴진다. 남쪽을 향한 두 기의 부처 중, 오른쪽 부처의 어깨 쪽에는 ‘태화 9년 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글자가 있다. 신라 42대 흥덕왕(835년) 때 새긴 부처인 셈이다. 왼쪽의 부처는 약사발을 든 약사여래불로 코도 닳았고 눈도 움푹 파였다. 하필 눈이고 코다. 흥덕왕 시절, 신라는 고통에 시달렸다. 831년 지진과 832년 가뭄, 833년 기근으로 몹시 힘든 시기였다. 절박했던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오로지 신(神)을 중심에 둔 종교뿐이었을 것이다. 존귀한 부처의 몸을 빌려서라도 살고자 했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온 부처 아니던가. 절망적인 사람에게 절박함이 더해질 때, 사람은 이성을 잃고 본능을 앞세우게 된다. 그러니 부처의 파인 눈이나 코는 중생의 불안한 마음을 의지할 유일한 위안이고 안식처였을 것이다. 포석곡 제5사지 마애여래좌상 등산로로 내려와 오른쪽 산기슭 자드락길을 오른다. 산허리까지 올라 시야를 뻗으니 맞은편 절벽이 지척이다. 부엉골이다. 거대한 암벽, 그 어디쯤에서 대낮에도 부엉이가 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엉골은 산세가 깊고 험하다. 포석곡 제5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부엉더미 산허리에서 나를 맞았다. 서쪽 절벽을 향한 부처는 세월 탓인지 암질 탓인지, 윤곽이 흐릿해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손을 대면 돌가루가 부서져 내린다. 아, 곧 열반에 들지도 모를 일이다. 부처는 전체적인 선의 깊이가 얕고 가는, 선각에 가깝다. 산기슭 아래로 서너 발 물러서서 부처를 보니, 그제야 부처는 온전히 거기 있었다. 연꽃 대좌에 앉은 부처는 옷 주름의 곡선이 부드럽고, 연꽃의 표현이 세밀해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부처를 등지고 서니 남산 팔경의 하나인 부엉골 황금대가 훤히 내다보인다. 황금대는 석양이 질 무렵이면 골짜기 바위가 모두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 석양과 함께 부처도 금빛으로 빛난다 해서 ‘황금여래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엉골 능선 절벽에 자연바위 기단 삼아 우뚝 선 늠비봉 오층석탑 늠비봉으로 가는 길은 산세는 깊어도 길은 완만하다. 길목에 부흥사(富興寺)가 있다. 봄이 한창인 부흥사는 옛 절터에 새로 얹은 절집이다. 대웅전 한편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지붕돌 한 개가 유물처럼 놓였다. 대웅전 마당엔 벚꽃 그늘이 짙다.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이른 아침, 능선 위 만개한 벚꽃 사이로 새하얀 탑이 보인다. 늠비봉 오층석탑이다. ‘늠비’는 우뚝 선 봉우리에서 뚝 떨어지는 낭떠러지를 뜻한다. 금오산 삼릉 능선과 오른쪽 해목령 능선 가운데, 부엉골을 향해 뻗어가던 능선이 갑자기 뚝 끊겨 절벽을 이룬다. 그 봉우리가 늠비봉이다. 포석곡 제6사지인 작은 늠비 절터 입구에 들어서면 늠비봉 절벽에 서 있는 오층석탑의 웅장함에 말문이 막힌다. 시원스레 잘 생겼다는 표현 외에 딱히 어울리는 말이 없다. 늠비봉 아래 무너지고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했다고는 하나, 1000년 전 이렇게 웅장하게 탑을 쌓을 기술이 있었느냐는 의문이 든다. 믿기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 웅대함에 대한 놀라움이다. 대부분의 탑재가 없어지거나 약해, 옛 석재와 새 석재를 섞어 복원했기에 지나치게 현대적이다. 하지만 산봉우리 절벽 바위에 저렇게 높은 탑을 우뚝 세운 건, 현대 기술이라 할지라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산봉우리 자연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올린 탑은, 산 전체가 탑이고 탑이 산 전체인 셈이다. 탑 아래서 올려다보면 하늘로 치솟은 다섯 개의 지붕돌 모서리가 조금의 틀어짐 없이 일직선으로 나란하다. 누구의 발원으로 세워졌는지 모르나, 석재를 고르고 다듬고 올렸을 적잖은 공들임은 오직 불심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서라벌로 이주한 백제인들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쌓은 것은 아닐까.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득히 먼 고국을 향했을 백제인들. 그들의 짙은 그리움만큼 탑은 한 층 한 층 높이를 더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붕돌은 다섯 개에 이르렀고, 그들은 염원이 하늘에 닿기를 바랐을 것이다. 탑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백제인이 기원이라는 가정 하에 탑을 보노라면 무한한 쓸쓸함과 애잔함이 더해진다. 크고 단단한 바위는 자체만으로 신성한 신앙처가 된다. 그들이 쌓은 것은 단순한 예술적 상징의 돌탑이 아니다. 마음을 기댈 버팀목이자 위로이자 안식처였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기단으로 삼았으니 탑의 뿌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지맥 저 깊은 어디쯤일 것이다. 사람은 비록 세파에 흔들릴지언정 암반을 기단으로 삼은 탑은 흔들리지 못하니, 그들의 웅혼한 염원을 담은 탑만은 절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작은 늠비봉 절터, 큰 늠비봉 절터 탑 뒤엔 작은 늠비봉 절터가 있다. 터를 보니 그리 큰 절은 아니었을 테고, 단칸의 법당 정도만 겨우 갖춘 암자였을 것이다. 앞은 절벽이고, 사방 천지는 탁 트였으니 불어오는 비바람에 부단히 고단했을 것이다. 탑을 뒤로하고 금오봉을 오른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숲에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절정이다. 100여m 남짓 올랐을까. 대나무 숲이 나타난다. ‘절터가 아닐까’ 생각할 무렵, 한 치 앞에 절터임을 알리는 표지가 나타난다. ‘포석곡 제7사지(큰늠비 절터)’를 알리는 표지 뒤로 일대에서 수습한 탑재 일부를 정리해 놓았다. 잡목이 우거진 숲 사이로 평지가 보인다. 필시 작은 암자는 아니었을 테다. 법당과 별도의 요사 한 채가 들어서도 될 만큼의 넓이다. 바람이 일자 대숲이 요란하다. 나는 나른한 상상으로 빠져든다. 숲은 사라지고 법당과 요사채가 가지런히 놓인다. 큰스님은 법당에서 염불을 외고, 수행스님은 마당을 쓴다. 또 다른 스님은 장작을 패고, 동자승은 마당에서 볕을 쬔다. 동자승 발치에 흰둥이 한 마리가 몸을 누였는데, 동자승이 머리를 쓸어주면 졸음에 겨운 듯 눈을 뜨지 못한다. 등 굽은 보살이 찾아와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법당으로 들어선다. 한참 뒤 법당에서 나온 보살은 산기슭 바위마다 손을 모아 합장한다. 어느 따스한 봄날의 절간 풍경이 곱고 나른하다. 한 무리 바람이 일고, 등산객들이 절터를 스치고 멀어진다. 평지는 다시 잡목 우거진 절터로 바뀐다. 큰 늠비 절터에서 뒤를 돌아본다. 우뚝 선 오층석탑과 경주 시가지가 훤하다. 사람들이 바위마다 부처를 새기고 돌을 쌓아 탑을 올린 이유와 서라벌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법등을 올리며 염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신(神)을 찾아 산으로 왔다. 산과의 교감이 곧 신과의 교감이라는 것을 믿으며, 신은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보듬어 치유하는 존재라고 믿었을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찾아든 골짜기엔 아직도 신이 살아서 발길 미치는 자마다 복을 누리게 한다는 말을 믿고 싶다. 세월이 흘러 탑은 와르르 무너졌을지언정, 제 뿌리는 늠비봉이라는 것을 탑은 알 것이다. 수백 년 흘러, 탑은 후대의 손을 빌려 다시 일어섰다. 탑이 어떤 모습으로 긴 세월을 살아남았든 제 뿌리의 근원만은 잊지 않았다. 다시 늠비봉으로 내려와 석탑이 보이는 바위에 걸터앉는다. 해가 서녘으로 기운다. 탑을 떠받들던 부재들은 늠비봉 한편에 누워 ‘과거’가 되고, 탑은 ‘현재’가 되어 세상에 순응하고 있다. 박시윤 답사기행작가
경주시는 도전행동(자해·타해) 등으로 인해 기존 사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18세 이상 65세 미만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장애의 정도가 극심한 발달장애인에게 1:1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낮활동 또는 야간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합돌봄서비스는 △24시간 개별(주중 지역사회 낮활동과 야간돌봄을 포함한 24시간 돌봄서비스 제공) △주간 개별(장애인복지관 등 지역사회 인프라에 시설 보강과 전문인력을 지원해 개인별 맞춤형 낮 활동 서비스 제공) △주간 그룹형(사회서비스 이용권(바우처)을 제공해 낮시간에 그룹형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담인력 배치 지원) 3가지 방식으로 제공된다. 신청자는 희망하는 서비스의 우선순위를 정해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방문조사 및 시·도별 통합돌봄서비스 조정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신청자의 희망과 유형별 선정기준을 고려해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경주시는 사업을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할 기관을 공모를 통해 모집 후 오는 6월부터 접수신청과 함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통합돌봄 사업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및 보호자, 수행기관 공모에 참여하고자 하는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 등이 참여 가능하다. 경주시 관계자는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을 우선 모집해 6월부터는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며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통합돌봄서비스를 통해 일상생활훈련, 취미활동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보호자의 돌봄 부담도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경주시보건소가 제52회 보건의 날을 기념해 지난 12일 보건교육장에서 지역 감염병 발생 점검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고자 ‘질병정보 모니터망’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질병정보 모니터망은 보건소와 지역 의료기관·교육 및 복지시설·산업체 등이 연계해 감염병 발생을 감시하는 체계다. 이번 간담회에는 지역 15개 병·의원, 20여명의 질병정보 모니터 요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는 먼저 그간 보건사업에 기여 한 유공자들을 표창하고 질병정보 모니터 요원의 주요임무, 올해 변경된 감염병 분류 및 보고체계를 안내했다. 이어 감염병 확산 방지 논의를 위한 자유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진병철 보건소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관 기관과의 지역사회 감염병 예방감시 체계를 강화해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70여명은 지난 16일 사회보장협의체 선도지역인 영주를 찾아 워크숍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워크숍은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이 영주 풍기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방문해 우수사례 공유와 운영 활성화 방안 제고 등 위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위원들은 협의체 간 결속력을 다지고, 문화탐방 등 교류 시간을 통해 민관과 공공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시간이 보냈다. 한편 경주시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440여명의 위원이 민관 협력을 통한 위기가정 발굴과 지역자원 연계 등 지역사회 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웃과 더불어 공감할 수 있는 복지도시 경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국가유공자 지원을 위해 보훈명예수당 인상 및 사망위로금 지급 대상 확대를 추진한다. 시는 지난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주시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국가수호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확대함으로써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개정된 조례안은 보훈명예수당을 월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한다. 또 보훈명예수당과 사망위로금 지급대상에 HID 등 특수임무유공자도 포함시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무 및 지원에 법률’은 보훈명예수당 대상에서 특수임무유공자를 제외한 탓에 이 같은 혜택을 받아 오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이 의결되면 올해 제1회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해 하반기부터 인상된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 보훈명예수당 대상자 1790명이 인상된 수당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주낙영 시장은 “보훈명예수당 인상과 대상자 확대는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선양하고 생활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며 “앞으로도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그분들이 영예롭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주시가 시행하는 경로당 붙박이 소파 설치사업이 어르신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 시는 올해 예산 3억원을 들여 이달부터 6월까지 경로당 80곳에 대해 1.2m 또는 1.8m 규모의 붙박이 소파를 제작·설치한다. 이 사업은 그동안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좌식 생활로 인해 무릎과 척추관절 건강에 악영향 미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해는 예산 1억원을 투입해 경로당 28곳에 처음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시는 지난해 붙박이 소파 설치된 경로당 이용 어르신 160여명의 만족도를 조사해 그간의 미비점을 보완했다. 시는 향후 경로당 전수조사 용역 자료를 참고해 연차적으로 지역 모든 경로당에 붙박이 소파 설치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박명숙 동천 우방아파트 경로회장은 “소파 덕분에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척 편리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경로당 이용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경로당 이용 어르신들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에 맞춰 맞춤형 경로당 지원 사업을 계속 발굴해 추진 하겠다”고 말했다.
화림정사 주지 故 불곡당 신철 대종사가 동국대 WISE캠퍼스에 장학기금 6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날 전달된 기부금은 화림정사의 故 불곡당 신철 대종사가 남긴 것이다. 스님이 평소 근검절약하며 모은 정재 3억원을 입적하시기 전 지난해 6월에 WISE캠퍼스에 기부했다. 이후 도반인 금용사 회주 혜선스님이 모든 뒷정리를 하신 후 생전에 남아 있던 소중한 정재 전액을 동국대 WISE캠퍼스에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 신철 대종사의 뜻을 대신 전달한 혜선스님은 “스님께서는 평소 근검절약하시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항상 말씀하셨다”면서 “신철 스님의 생전 남아 있던 모든 정재를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류완하 총장은 “앞선 기부에 이어 소중한 정재를 기탁 해주신 것에 너무나도 감사드린다”면서 “스님의 깊은 뜻을 받들어 유능한 인재 양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동국대 WISE캠퍼스는 지난해 6월 故 불곡당 신철 대종사가 3억원을 기부하며 신철장학회를 설립했으며 이후 37명의 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수여했고, 앞으로도 우수한 학생을 추가로 더 선발할 예정이다.
신경주 승마선수단이 장수승마장에서 열린 ‘2024 춘계 전국승마대회’와, 2024 춘계 전국학생승마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 대한승마협회 주관 2024 춘계 전국승마대회는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14경기에 마장마술, 장애물 등 2개종목 14경기에 일반인 유소년등 선수 300명이 출전했다. 신경주대 승마선수단은 대학부 마장마술 Cclass 2위-윤은수(1학년), 대학부 장애물 110class 3위-박정현(1학년)이 입상했다. 이어 개최된 한국학생승마협회 주관 2024 춘계 전국학생승마대회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21경기가 열렸다. 신경주대 말산업학과 1학년 박정현 선수는 대학부 장애물 110class 1위와 장애물 120class 1위의 영광을 안았다. 박금란 학과장은 “신경주대 말산업학과의 첫 출발과 함께 학생선수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승마대회 출전 지원과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경주대 말산업학과(4년제)는 신입생 40명 모집해 승마단 운영 및 승마대회 출전 지원, 승마자격증 특강 및 국내외 승마연수 지원을 통해 질높은 말산업 교육을 실시 할 예정이다.
월성중 하키부가 2024 전국춘계남녀하키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강원도 동해에서 열린 2024 전국춘계남녀하키대회에서 월성중 하키부는 이 대회 6연패와 함께 최근 모든 경기에서 우승하는 아산중과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했다. 결승에서 성일중과의 경기에서 6:3으로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강호 아산중을 처음으로 겪으며 월성중 하키부의 사기는 달아올랐다. 이승협 월성중 코치는 올해 첫대회에서 어느 팀도 이길 수 없었던 아산중을 이긴 것은 학생들의 노력 덕분이다“면서 ”다음 대회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종훈 교장은 “매년 좋은 성적의 원동력은 재단과 교육청, 학생, 교사들이 함께 이룬 결과다”면서 “아낌없는 지원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월성중 하키부는 2020년 5월 20일 창단했다. 하키를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학교의 명예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난소암은 자각증상이 없다. 따라서 발견되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아 예후가 좋지 않다. 자궁경부암검사의 경우 공단 검진 항목에 포함돼 있지만 난소암을 검사할 수 있는 질초음파는 포함돼 있지 않아 여성들이 간과하기 쉽다. 난소암을 예방하고 조기발견을 위해 관련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난소암은 90% 이상이 난소 표면의 상피세포에서 발생하는 상피성이다. 대부분 원격부위로 전이가 일어날 때까지 무증상이어서 처음 진단을 받을 때 약 2/3가 이미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여성암 중에서 가장 예후가 나쁘며 5년 이상 생존율이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022년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우리나라에서 24만7952건의 암이 발생했는데 그중 난소암은 2947건으로 전체 암 발생의 1.2%, 전체 여성암 발생의 2.5%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27.6%로 가장 많았고, 40대와 60대는 각각 19.8%, 70대는 12.9% 순이었다. 난소암의 위험요인 일생에서 배란기가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발생 위험이 높다. 예를 들면 초경이 빠른 경우나 늦은 폐경은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고 미혼여성과 불임여성, 그리고 다산부에 비해 소산부가 발생 위험이 높다. 반면 경구피임약을 5년 이상 복용한 경우에는 발병률이 60% 감소한다. 유전요인, BRCA1 또는 BRCA1 유전자의 돌연변이 및 이상 변화 등 대부분의 난소암은 유전과 관련이 적으며 5~10% 정도만이 유전적 성격을 갖고 있다. 가족에게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될 확률은 50% 정도이다. 그러나 모친이나 자매가 난소암에 걸린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발생빈도가 더 높다. 유방암, 자궁내막암 또는 대장암을 앓았던 병력이 있는 경우와 환경요인으로 석면과 활석 및 방사선 동위원소에 노출된 경우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난소암의 일반적 증상 난소암은 무증상이거나 복통과 복부 팽만감, 복강내 종괴, 비정상적인 질출혈, 빈뇨, 배뇨곤란, 대하증, 오심, 구토, 변비, 요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난소암의 조기발견을 위해서 골반내진, 혈청 CA-125, 초음파 영상검사를 시행하는데 고위험 여성에서는 효율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 확실하게 확립되지는 않았다. 유전성 난소암의 병력을 가질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매년 신체검사와 골반내진, CA-125값 측정, 질식초음파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족계획이 끝나고 최소한 35세가 되면 예방적 양측 난소절제술이 추천된다. 진단방법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신체검진을 통해 난소암이 의심되면 골반내진, CA-125 종양표지자 혈액검사, 경질초음파,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검사를 시행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진단은 수술을 통해 난소의 종괴를 적출한 후 조직병리검사로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난소암은 암이 상당히 진행되기까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간혹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그 증상이 하복부의 불편감, 통증, 소화기 장애에 의한 증상 등과 같이 비특이적이고 불분명해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진단이 늦어질 때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하복부의 종괴를 촉지하고 비로소 병원을 찾는다. 초기 난소암이 발생하더라도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난소암의 70%는 3기 이상 진행된 암에서 비로소 발견되므로 일반적인 증상이라도 자각증상을 간과하지 않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 정태영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산부인과 전문의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따스한 봄의 기운이 만연한 시기, 갤러리JJ에서 ‘봄’을 주제로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세대를 아우르는 지역 작가 42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 갤러리JJ ‘봄’ 기회초대전이 오는 30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외곽에 펼쳐진 봄꽃과 조화를 이루며, 갤러리 내외부를 더욱 따뜻하고 활기찬 봄의 기운으로 가득 채울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원로 작가들의 작품과 지역 작가들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표현된 작품이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들에게 다채롭고 풍부한 예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경주 지역의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펼치는 예술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갤러리JJ 김정자 관장 역시 지역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정자 관장은 “이번 기획 초대전은 봄이라는 계절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함께, 지역 사회의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갖는 창의력과 열정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자리”라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원로 작가와 청년 작가 등 세대간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전통과 현대성이 어우러진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에서 최근까지도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사회적 이슈를 신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갤러리 외곽의 봄꽃과 자연은 전시 분위기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한 “예술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열심히 작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마련된 이 작은 축제를 계기로 갤러리JJ는 앞으로도 예술이 일상에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이 공간이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중심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갤러리JJ의 ‘봄’ 기획 초대전은 예술의 다양성과 세대 간의 연결 고리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이점원, 박원섭, 윤영진, 김미루, 이상수, 장용호, 이명호, 이주희, 김복희, 최한규, 최용대, 박종희, 박미주, 이소명, 구미라, 박수미, 손돈호, 이신희, 꽃님, 이도우, 정병국, 김장곤, 김정자, 최영달, 김숙희, 박현수, 손영희, 서지연, 강민수, 정경희, 김정란, 이철진, 김락현, 이옥희, 박선영, 박선유, 함남식, 최복은, 박용, 김종수, 최자은, 최용석 등 42인의 경주작가가 참여했다. 오프닝은 20일 토요일 3시.
공고번호 : 경북-경주-2024-00258 4월 8일 경주시 천북면 천북로 8-6 부근에서 발견 곰 같은 외모에 흰색 털들이 포인트인 애교덩어리 믹스견 / 남아 / 1차 접종 중성화x / 3개월 / 0.96kg 입양문의 054)760-2883 ※반려동물이 실시간 입양됐을 수 있으니 확인 전화바랍니다.
경주문화원에서 경주의 소중한 향토민요를 보급하고 전승하기 위해 ‘경주민요 배움터’ 강좌를 새롭게 개설한다. 이 강좌는 경주 지역의 민요를 널리 알리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됐다. 강좌는 경주문화원에서 2017년 발행된 ‘경주민요’에 수록된 곡들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하반기 수업 종강 후, 11월 문화학교 종합 발표회에서 특별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경주민요 배움터’ 강좌는 포항 흥해 농요 보존회 박현미 회장을 강사로 초청해 상반기 및 하반기 각 12주 과정으로 경주문화원 강당에서 진행된다. 박현미 강사는 “포항 흥해 농요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경상도 지역인 경주 민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 두 지역의 민요가 주 발음과 시김새에서 유사함을 발견했다”면서 “우리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장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트로트 같은 대중음악에 더 익숙하고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고 보존해야 할 우리 민요가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길바라며, 젓가락 장단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경주민요를 좋아하고 대중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고장의 민요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것을 넘어,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활동”이라면서 “경주민요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민요의 음악적 특성과 무형문화재 가치를 식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조철제 원장은 “경주문화원은 1992년부터 ‘경주시 향토민요 경창대회’를 개최해왔으나, 참가 연령층의 고령화와 경주 지역 민요보다 다른 지역 민요의 참가 비중이 높아지는 등의 문제로 인해 향토민요의 전승과 보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이에 따라 경주의 향토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전승하기 위해 ‘경주민요 배움터’ 강좌를 신규로 개설하게 됐다. 경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향토민요를 배우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자세한 정보 및 강좌 신청은 경주문화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최근 신라를 대표하는 소장품 5종을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구성된 전시품 안내서,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5권을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는 경주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한 경주박물관의 대표 전시품 10개 중 천마총 금관, 황금 보검, 토우 장식 항아리, 얼굴 무늬 수막새, 그리고 황룡사 치미 등 다섯 가지 전시품을 우선 소개한다. 국립박물관의 전·현직 큐레이터와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해 박물관만의 특별한 전시 해설을 제공하고, 연구자의 관점에서 소장품을 바라보는 경험과 관람객이 전시품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이 책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기획된 만큼,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면서 “박물관 방문객 누구나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쉽고 유익하게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민호 시인이 최근 매월당 김시습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현대어로 옮기고, 주석과 해설을 덧붙인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이번 출간은 한문 원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매월당 김시습의 한학적 깊이를 현대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금오신화’는 매월당 김시습(1432~1493)의 작품으로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문의 띄어쓰기가 없는 특성과 복잡한 문장 구조로 인해 현대어 번역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정 시인은 번역 과정에서 어려운 한자와 한문 문장을 쉽고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정민호 시인은 “이 책이 한국 고전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매월당 김시습의 작품을 현대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