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후반 유럽에 만연했던 국민주의 음악이 아닌, 미술사조 인상주의와 같은 이름의 ‘인상파 음악’이 대두한다. 드뷔시가 바로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상파 음악으로 근대음악과 현대음악의 가교 역할을 담당한 음악계의 혁명가로 평가받는다. 드뷔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11살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했고, 12살 때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으며, 17살 때는 악보 초견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22살(1884년)에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을 수상한 것은 프랑스 음악천재의 계보를 잇는 드뷔시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드뷔시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전통음악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는 이 음악에서 매우 특별한 영감을 받았는데, 바로 이때 만든 작품이 ‘달빛(Clair de Lune, 1890)’이다. 달빛은 한자로 월광(月光)인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구별하고자 드뷔시의 작품을 보통 ‘달빛’이라 부른다. 달빛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 곡이다. 우리는 트란 안 훙 감독의 프랑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를 수놓고 있는 드뷔시의 달빛 멜로디를 아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1894년 드뷔시는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é, 1842-1898)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은 10분 길이의 교향시로, 나무의 신이 향락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화음의 사용으로 인상주의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작품은 서양 음악사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드뷔시는 오페라에도 손을 댄다.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로 1902년 오페라를 발표한다. 오페라는 희극처럼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중세에 있었다는 상상의 나라를 무대로, 남편의 동생을 사랑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렸다. 바그너의 비극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드뷔시가 원숙기에 접어들어 만든 교향시 ‘바다’(1905)는 그가 어렸을 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지중해에 연한 도시 칸(Cannes)에 머물 때의 경험이 밑바탕된 작품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가능한 모든 색채를 음악에 도입한 본격적인 인상파 음악이다. 초판 악보에 실린 일본의 유명작가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우키요에 작품 ‘파도’로 작품에 대한 ‘인상’을 강조했다. 드뷔시는 말년에 행복하지 못했다. 타고난 바람기로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고, 낭비벽으로 재산을 탕진했다. 딸은 부모에 앞서 죽었고, 얼마 안 가 드뷔시 역시 직장암에 걸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져 갔지만, 필사적으로 창작활동에 매달렸다. 결국 드뷔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56세(1918년)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그의 작품번호 두문자는 독특하게도 ‘L’이다. 프랑스의 음악학자인 르쉬르(François Lesure)가 드뷔시의 작품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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