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파란색 실루엣만 남았다. 단순화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많은 소중한 요소들이 거세된 느낌이다. 빨강과 파랑, 그 사이의 하양으로 표현된 태극(太極)의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눠지기 전의 원시 상태, 그 세상 만물의 혼돈스럽지만 강인한 생명력이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비장하고 암울하냐고? 대한항공이 이번에 새롭게 공개한 로고에 대한 괜히 딴지를 놓고 있는 중이다. 흔히 로고(Logo)라고 하면 기업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간단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한 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의 애플 로고를 떠올려 보시라. 텍스트나 심벌, 그리고 색상의 조합으로 구성된 로고는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차별화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로고가 주로 시각적 요소에 집중을 한다면 CI(Corporate Identity)는 기업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한다. 다시 말하자면 기업의 철학, 비전, 문화 등의 본질을 모두 포괄한다. 가령 아웃도어(등산 등 격렬한 액티비티 중심의)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환경 보호를 기업의 제1 철학으로 삼고 있다. 옷을 많이 팔아서 그 이윤의 일부를 자연보호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자연보호를 하려는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독특한 철학으로 유명하다. 올해로 창립 56주년이 되었고 한국의 상공을 양분해 왔던 아시아나항공도 인수했겠다, 대한항공은 공개 행사를 통해 새로운 CI를 선보였다. 당연히 기업 전체 브랜딩의 핵심 전략이고 41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자리일 테니 감개무량했던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은 속내를 드러냈다.   “새 CI가 2027년 통합 출범을 목표로 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하나로 만드는 구심점이 되길 희망한다” 자, 그럼 기업의 정체성이자 철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타이포그래픽의 변화다. 하늘색 비행기 몸통을 채웠던 KOREAN AIR라는 글자에서 영어 O자리에 선명했던 태극마크가 빠졌다.   그걸 왜 뺐지? 하고 의아해하기도 전에 한 번 더 놀란다. AIR마저 빠지고 KOREAN만 덜렁 남았으니까.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의 항공사이기도 하지만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다. 설마 항공사만 대표하는 걸로는 만족을 못 하겠다는 의지인지, 왜 형용사(Korean)만 남겨 두고 뒤에 수식받는 중요한 명사(Air)는 빼버렸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커다란 비행기 옆면에 KOREAN이라고만 쓰여 있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한국?”, “한국인?” 헷갈린다. 비행기는 비행기일 뿐, 한국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 차라리 태극마크 하나만 달랑 그려놓는 것보다 효과는 적을 듯하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태극마크의 변화다. 여태 한결 같이 국내·외로 사랑을 받아온 태극마크 그 테두리를 파란색(대한항공에서 개발한 다크블루라는 색깔) 리본으로 둘러놓은 느낌으로 단순화시켜 놓았다. 역시 많은 논란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로고 디자인한 사람 구속시켜야 한다”, “적어도 태극마크는 건들면 안 됨” 등의 댓글이 득달같이 달렸다.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5성급 최고 항공사로 평가받는 등 브랜드의 강력한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한항공이, 왜 이런 파격을 주도했을까?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파란색 리본이 한국 비행기를 충실히 대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글로벌 항공업계가 미니멀리즘(사물을 가장 단순하게 최소한으로 표현하려는 예술 사조) 디자인으로 가는 추세라지만, 기교를 절제하거나 소박하고 단순한 표현 방식의 추구는 외려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기업 차원에서 결정한 일에 어쭙잖게 딴죽을 거는 이유는 대한항공이 기업 아이덴티티(CI)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비빔밥을 고려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비빔밥은 대한항공이 제공하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메뉴다. 알록달록 채소와 흰쌀밥, 고기와 그 위에 살포시 얹은 달걀과 진하고 빨간 고추장의 조화는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종합한 대한항공의 일등 철학이기 때문이다. 한 그릇의 비빔밥으로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었던 대한항공이기에 괜한 투정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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